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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의 직업은 온 세상
“나도 한때 철거민인 적이 있어서 아는데 철거민과 비정규직의 입장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2009년 2월12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만찬)
“나도 창업했던 소상공인(출신)이다. 선배로서 얘기하자면 무엇보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2009년 4월9일 소상공인 교육생과 만남)
“내가 어린 시절 노점상을 해봐서 여러분 처지 잘 안다.”(2008년 12월23일 서민 초청 연찬)
“학생 때 나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고통을 겪었던 민주화 1세대이다.”(2008년 6월11일 중소기업성공전략회의)
“나도 체육인이다. 15년간 수영연맹 회장을 했고 세계체육연맹 집행위원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다.”(2008년 8월26일 베이징 올림픽 선수단 초청 오찬)
“나도 기업인 출신으로서 아세안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한 적이 있다.”(2009년 5월31일 한·아세안 최고경영자 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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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자뻑 심리에 대한 <시사인>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2년전 어떤 회사 사장의 평소 발언이 생각났다. 나는 당시 그걸 '선무당론' 이라고 불렀다. 당시 쟁점은 고유 직종에 대한 전문성의 문제였는데,권력을 가진 이 회사의 이 양반은 '툭'하면 '멀티플레이어론'을 내세우며 이것이 '시대정신'이고 '개혁'이라고 외쳤다. 정확히 여기저기 자기들의 임의에 의해 노동력을 편재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 저것 동시에 다 잘할 수 있으면 좋지만 또 그만큼 경박단소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힘을 가진 자가 '아니란다'. 자기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서 다 알고 있다고...지금 이명박이 하는 말과 똑같은 거다. 오죽하면 어떤 특정 부서를 들어 그 쪽에 있는 사람들도 내가 젊은시절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몇 달 그런 부서에서 이것 저것 다해봤기 때문에 날 속일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게 '선무당 사람잡는 일이다.'
MB이고 그 회사 CEO이고 모두 '선무당'이고 자기 같은 선무당을 세상에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쁘다.
하지만 나는 또 질문한다. '반면교사'의 질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은가? '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요트 타고 바다 낚시 서너번 해보고 나서 '바다'에 대해서 '마스터' 한 것이다. 피곤한 일이다. 이런 일들은 내 자신에게도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내 부족한 눈에도 내 주변에서 여러번 목격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알 수 없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20여년전 쯤에 내가 잠시 외국에 나갔을때, 50줄의 은발의 외국인 선생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영어로 다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모든게 더 확실해보였는데....참 이상한 것이 말이지요...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세상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고 말이다.
나는 그 말 뜻을 당시 이해하진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의 협소함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esc 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는 마음의 저장공간조차 궁벽해할 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언젠가 그 질문을 꺼내 보려고 꼭꼭 쟁여두었다. 지금까지 그 대화가 오고갔던 장면이 그대로 기억나는 것이 내 증거다.
모른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도 죄가 아니다. 알려는 그 길 위에서 죽게될 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안타까울 것도 뒤에 남겨진 것들에 찜찜할 것도 없다.
Amore fati
오히려 길을 걸었다고, 꽃을 키웠다고, 바다를 항해 했다고,바람을 느꼇다고... '안다'라는 '자만심'속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길 위에 주저 앉아 버린 옹이'가 되는 것이다. 모르는 자들보다 아는 자들이 '근본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역사적 경험으로 훨씬 높으며, 20세기 초반의 비판철학은 그런 정치적,인식적'전체주의'와의 전장에서 시작되었다.
공자는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라고 했다.
모른다.그러므로 나는 길 위에서 죽을 것이다. Amore fa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