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얼음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 겹 또 한 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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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플루가 약간 걱정되었다.하지만 아침 9시에 버스에 올랐다. 서울에 있었다.그리고 조금 전 밤 11시. 오랜만에 멀리 도시의 불빛들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며 부산에 도착했다. 긴 하루였지만 한동안 못보던 풍경들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어서 위로가 되었다. 

위성TV로 롯데 자이언츠의 가르시아가 만루홈런을 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야구중계에 그다지 큰 미련이 없는 관계로 평소 볼 일이 없었는데 그것도 새로왔다. 롯데는 8연승이란다.   

 박남준 시인은 악양에 산다. 

수 년전에 혼자 여행을 다니다 그저 이름이 멋있어서 들렀던 곳이 악양이다. 중고차가 길을 잘못 들어 헤메이기도 했다. 다시금 악양을 찾을 일이 있다면 박남준 시인을 뵙고 싶다.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아비됨'의 의미를 다시금 새긴다. 결국 녹아내리게 될 얼음이 되는 것이다. '겁 많은 물고기들을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 따뜻한 얼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거창하게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을 위해' 라는 진부한 표현에 자기감화 받는 일을 삼가하는 편이다. 그 말 자체의 울림과 결과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왠지 자기의 행위를 무슨 대단한 일인양 치켜세우는 그 소박함 속에 담긴 자기위안이 내 스타일-나는 단지 스타일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는 것 뿐이다.  

시인의 마음은 그런 '아비됨'의 마음에서 더 보편적인 사랑으로 나아간다.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거기서 부터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이 문장은 내게 '오래되었으나 삭지 않아 눈에 밟히는 것들'이 된다. 시인은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라는 시에서 그렇게 말한다. 

저 구절 중에서 가장 패이는 부분은 '껴안고' 이다. 나는 나름 업무상 이런 저런 부류의 인간들을 많이 만나는편이다. '기름진 것들'도 가끔 있다만 '쫓기고 내몰린 것들'에 늘 마음이 간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자주 붉어진 눈사위를 동료들에게 숨기려고 딴짓을 하는 체한다. 즉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조금은 알고 또 -조작되었을지도 모르지만-타고난 공감능력으로 인해 '눈물'은 그것보다  조금 더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껴안고' 라는 말은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 작은 조각뼈같다. 내가 정말 '껴안고' 눈물지어본 적이 있었을까?  너는 정녕 '껴안고' 울었는가? 너는 진실로 '껴안고' 울고 있는가?   

'껴안고 운다'의 그 무거움에 대해서 무릎을 꺽으며 깊이 생각한다. 거기가 내 바닥이다. 

 다들 '껴안고' 잘 우는데 나는 아직 내 바닥에 질척거리고 있다. 내 '뼈아픈 후회'는 그거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이며 그저 '죽은 귀에 모래알을 넣어준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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