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모름지기 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과 같으니,글짓는 사람은 의당 처녀처럼 부끄러워할 줄 알아 자신을 잘 감추어야 한다." 

"아아! 혹 누군가 '널리 남아게 구함으로써 자신을 밝히고 빛낼지어다!' 라는 말로 나를 책망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이 비록 통절하고 신랄한 풍자라 하더라도 나는 내 두려워하는 바를 더욱 깊게 할 것이며 내 감추는 바를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이다. 또 누군가 '다만 스스로 즐거워할 뿐이요 남과 더불어 한가지로 즐거워하지는 말지어다!' 라는 말로 나를 책망하는 이가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변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 이미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 

 연암그룹의 일원이었던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의 선집에 나오는 글이다. 그의 문장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와 처녀의 마음'이 이 글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마음은 어떤 것인가? 둘의 공통점은 '순수함'이다. 어떤 효용적 가치보다는 글을 대할 때 갖는 아이와 갖은 천진함, 처녀와 같은 부끄러운 마음이 요체이다.   

순수한 마음이 발현된 '있는 그대로의 마음'과 진실한 감정이 표출된 '참된 마음' 

이덕무의 전집이 '청장관전서'이다. '청장'이 그의 호였기 때문이다. '청장'은 '푸른 백로'를 말한다. 한 평생 가난을 벗을 삼았던 그였기에 필요한 것만 먹고 더 탐하지 않는 '청장'이 꽤나 어울린다.  

문장의 입장에서 우리는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의 대중적 글쓰기는 환영할 만한 일이고, 나 역시 그에 큰 위로와 도움을 받지만 또 그만큼 '보는 마음'과 '쓰는 마음' 을 요구하기도 한다. 솔직히 내 개인적으로 이 두 부분에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보는 마음'에서 나는 책과 모니터를 통해 읽는 글사이의 집중도를 비교하면 강 하나가 놓여있다 할 정도다. '쓰는 마음'도 그렇다. 그저 속풀이 한다치고 마구 쓴 글도 무척 많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인터넷 글쓰기의 한가지 장점이기도 하다. 동네 슈퍼가는 마음으로 편하게 움직여도 되는...그리고 나는 이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글쓰기가 대중화되고,누구나 시민기자가 되고,누구나 평론가가 되고,누구나 사진가가 되고...분명히 좋은 현상이다...하지만 그럴 수록 그 모든 이들이 이덕무의 문장론의 요체도 더불어 깊어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은 서울에 간다. 하루 휴가를 냈다. 굵은 비를 가르며 섬에서 소리를 지르려고 말이다.  

아침부터 왠 타박인가 싶어 내가 좋아하는 이덕무의 '가장 큰 즐거움'이란 글을 올린다. 

 "마음에 맞는 계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일, 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지극히 드문 법, 평생토록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