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나는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란 말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왠지 그 시간이 블랙홀처럼 많은 기억들과 시간들을 흡입해버릴 것 같아서... 장마철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저기 먼 하늘에서 불길한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는 구름...그리고 그 아래 도시....또 소음들이 묻히게 될 비의 침묵들...하여간 '장마가 시작될 무렵' 이란 말은- 시기적으로 2009년의 장마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내가 요맘때 사는 책에 많이 써놓았던 글이다. 

장마...조금은 서늘한 곳에 앉아서 하릴 없는 비를 보며 하루 종일 음악이나 듣고 싶다. 시인 김갑수가 자기 작업실을 만들고 '줄라이홀'이라고 이름지었다던데...내게도 그런 동굴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예전에 일 때문에 가본적이 있는 언양의 한 한옥집이 생각난다. 마을 제일 높은 곳에 한옥을 한채 지어놓고 초가집,황토집 짓는 일에 전력을 다하시는 분의 집이었다. 그 집 대청 마루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산 빛이 오늘 장맛비에는 어떤 빛깔을 띨까? 

조용히 음악이나 듣고 싶은 날이다.  

오늘 낮에 예찬이는 갑자기 병원으로 실려가고- 잘 놀다가 졸리다고 하더니 열이 39.5 가까이 올랐단다. 점심 시간에 회사에서 총알 같이 병원에 갔더니 이미 치료받고 나왔더라. 어린이집 원장에 안겨 있는데, 런닝과 팬티만 입고 커다란 수건을 둘러쓰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알아보는 듯 한 눈빛을 보내더니만 이내 픽쓰러져 눈을 감고 잔다. 

아이를 집에 내려놓고 잠든 모습을 보고 다시 회사로 왔다.  아내는 최근에 둘째 재원이에게 신경쓰느라 예찬이에 못해준 것이 더 미안해서 자는 아이를 보고 눈물을 훌쩍인다. 

낮에 전화를 걸었더니...자는 모습이 그래도 아까 보다는 좀 편안해 보인다고 하니 안심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지루하고 힘든 밤이 될 것같다.  

...장마철이다. 

슈베르트를 듣는다. 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D960. 얼마전에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를 들으며 비오는 날 출근했었다. 이 연주는 알프레드 브렌델이다. ECM에서 나온 아파나시예프의 연주-단 한곡만 수록된 것이 안타깝지만-도 상당히 훌륭하다.  

 

...책이 있다. 장마철에 읽어도 좋을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국내 아티스트는 상당히 한정적이다. 과거에는 그래도 꽤 있었는데 점점 줄어든다. 젊은 아티스트들 중에서 한번에 관심을 끌었던 친구가 '루시드 폴'이다. 이미 오래되었는데 영화<버스정류장>에 나온 그의 음악을 듣고 그를 기억했다. 그의 음반은 이후 상당히 오랜 시간 뒤에야 나왔다. 

어제는 퇴근하면서 루시드 폴의 2007년 음반을 들었다. 최근에 그와 마종기 시인이 함께 나눈 편지글이 책으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퇴계,고봉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런 만남은 참 매혹적이다. 내겐 그런 편지를 나눌 사람이 있는가? S형....^^ 그가 황사에 떠밀려 다시 한국으로 오지 않았으면 북경-부산간의 편지가 좀 더 오래 이어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요즘은 그냥 전화로 한다. 

그냥 팬레터라도 좀 쓰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무언가 이야기가 될 것 같은...내가 무언가 그를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하여간 마종기도 조윤석도 좋겠다. 그런 친구가 있는 건 삶이 풍요로와 질 수 있는 여러 조건들 중에 하나다.  

루시드 폴- 사람이었네 

장마철에 끈끈한데 무슨 판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나는 판소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의 음악기행 중 최근 놀고 있는 마당이 국악이다. 주로 기악곡 중심으로 즉 산조들도 많이 듣지만 가장 긴 시선을 꼽고 있는 장르는 판소리다. 너무 훌륭한 음악이다. 판소리 음반이 비록 절판된게 많긴 하지만 아마 하나 둘 사모을게 뻔하다. 곧 부산에 있는 국립국악원 부산지사 자료실 방문도 한번 해봐야겠다. 내가 요즘 가장 즐겨듣는 음반은 판소리계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명반, <빅터판 춘향가>이다. 정정렬, 임방울, 이화중선, 박녹주, 김소희가 노래한다.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듣는 이 절대 고수들의 향연이란....이런 글을 보고 또 쾡하고 한마디 건네기좋아하는 자들을 미리 생각해 내가 하고 싶은 말 중 하나가 있는데, 그건 이미 진회숙이 <나비야 청산가자>에서  다 말했다.(서로 대면대면한다는 유명한 진씨 가문의 장녀다) 

"나는 '우리것은 소중한 것이여'의 맹목적 내셔널리즘이나 '우리소리 우습게 보지마라'식의 피해의식 혹은 사라져가는 옛것에 대한 인류학적 관심은 우리 음악에 접근하는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회숙이 생각할 때 '우리 음악은 그것 자체로 귀중한 예술적 가치'가 있고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국악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가 더하고 뺄말이 없다.  

임방울-쑥대머리(판소리 춘향가 중 옥중 대목에 나오는 장면이다. 임방울은 일제시대 최고인기 가객이었으며 이곡은 그의 대표적 레퍼토리다. '임방울=쑥대머리'로 기억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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