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판단'은 '잘못된 이별'보다 훨씬 아플 수 있다. 

  -이하 진지하게 쓸까 막말로 쓸까 고민중이다-... ... ...  

정치 이야기다. 정치를 싫어하는 사람은 귀를 막아도 된다. 뭐 복잡하게 정치에 얽혀서 그런 개고생(막말로 쓰기로 작정했나보다)을 하려는지 납득이 안가는 사람들은 이 글을 읽지 않아도 된다. 

'잘못된 판단'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올 초 우리회사 노조의 '어리벙벙 전술'이었다. 회사 눈치와 생색내기 사이에서 딴에는 등걸이 정치를 한다고 허둥거리다가 결국은 말년에 벽에 똥칠을 했다. 직원들은 노조를 집값떼어먹으려는 집주인처럼 봤고 완전히는 아니어도 등을 돌렸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집행부가 만들어졌으나 오판으로 인한 상처가 남아있기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돌아왔는지는 다음번 동력을 모으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최근에 동종업계에 노조집행부가 넋나간 전술로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회사에서는 1년 이상 구조조정에 대한 타협을 노조측에 요구해왔다. 회사는 실제로  동료들로부터 원성이 높은 몇 명의 사람을 그 대상자로-물론 이와 병행하여 회사측의 필요에 의한 인사까지 덤으로 포함하는- 사전에 말을 흘렸다. 이데올로기 작업에 들어간거다. 노사 협상 테이블은 일종의 주고 받는 게임으로 진행될 때가 많다. 구조조정이라는 빅카드를 들고 회사는 협상력을 높여갔고 또한 실제로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노조에 지속적으로 강제했다. 1년간의 시달림 속에 노조는 결국 '그렇다면..조합원 총회에서 결판내자.'라고 전술적인 실수를 해버렸다. 즉 '구조조정'에 대한 찬/반여부를 조합원 전체 투표에 붙이겠다는 것이다. 이건 엄청난 오판이다. 내가 자주 이야기했지만 '1번과 2번' 중에 선택하라는 질문에 1번과 2번을 선택하는 것 만이 정치가 아니다. 정치적 인식이란 '내가 왜 1번과 2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하지?'라고 되물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말은 제발 좀 기억해주시길...) '질문을 거부하는' 방식은 또한 유효한 전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회사 노조집행부는 막연한 믿음에 배를 띄우고 말았다. 

노조가 믿었던 건 뭐일까? 오판의 근거말이다. 그건 한마디로 하면 '설마 서로 다들 아는 직원들 끼리 상대의 목을 자르라고 찬성하겠는가.' 라는 선한 의지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다. 일단 투표를 하자고 했으니 취소도 못하고 그나마 그거 하나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구조조정'에 대한 찬성표가 6대 4이상으로 나왔다. 이걸 가지고 '거봐,내가 말했지. 인간은 이기적이라니까'의 사례로 생각한다면 정말 소아적인거다. 회사는 1년간 회사 수익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의 당위성에 대해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담론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회사의 전술이 먹혀들었던 것은 구조조정의 대상자들을 은연중에 띄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게임이론으로 보자면 상대가 불지 안불지 모르는게 아니라 상대의 상태를 안다는 것이다. 투표하는 사람들은 투표장 앞에서 인정주의에 잠시 망설였겠으나 '나는 구조조정 대상자는 아니니까.'라고 생각해 버리기 좋았던 것이다. '일단 몇 명 희생자가 생기면 나는 한 동안 괜찮을거고 월급이나 복지도 괜찮겠지.' 

노조가 투표 결과를 따르겠다고 했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된거다. 구조조정이 절대악은 아니다. 그런데 구조조정이란 말은 늘상 직원해고를 위해 아름답게 꾸며진 말에 지나지 않을때가 많다. 즉 회사는 인력감축이라는 방식말고 다른 어떤 노력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늘 관대하다. 실제로 많은 경영진은 그런 자구노력에 무능하면서 위기의 모든 원인을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쉽고 눈에 띄게 단기적으로 비용절감효과가 있기때문이다. 어차피 한해 두해 수익으로 자기의 자리가 보전되는 월급쟁이 CEO들은 그거면 된다. 주주자본주의의 대리인들은 메뚜기 인생이고 메뚜기 철학자들이다. 인력과 노하우를 잃음으로써 생기는 장기적 손해라든가 직장-노동-삶의 긴밀한 연관성 같은 것들은 그들의 안중에 없다. 당연히 실업자 양산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같은 것들도 그들의 관심 밖이다. 그저 거리의 노숙자과 루저들이 늘어나는 것이 눈에 거슬린 뿐이다. 그러니 그들의 고급승용차의 색유리는 짙어지고, 그들의 거주공간은 외인출입이 금지된 요새가 된다. (뭐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어쨋거나...오판은 상처를 남긴다. 저 일에서 가장 큰 오판은 노조 집행부의 잘못된 선택이다.바보같은 짓이다.  

나는 같은 노조는 아니지만 어쨋든 노동운동을 하는 유사한 조직의 아마추어같은 짓을 비판했다. 개인적으로 아마추어의 자유로움과 순수함을 좋아하지만 아무때나 그런 순수함을 옹호하는 것은 잘못이다. '순수'는 가끔 '무지'와도 연관을 맺는다. 거기에 노조의 '노'자도 모르면서 '노조'='진보'랍시고 옹호만 외치는 이들은 팔푼이들이다. MB와 싸워야 하는 이 시국에 '노조'를 비판하는 짓은 '진보'운동에 흠집내려는 의도 아니냐고 하는 이들은 대개 칠푼이나 육푼이 수준이다. 대개 그런 이들은 자신의 입장이 변하거나, 어떤 상처를 받으면 금새 돌아선다. 마치 어제까진 둘도 없는 친구이다가 어떤 사소한 다툼이후에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이가 되어버리는 중딩 친구들의 관계같다. 차라리 쉽게 사랑을 주지 말고 사랑을 주면 오래 간직해라. 후자의 사랑은 또한 회초리를 품을 줄 아는 사랑이어야 한다.     

진보단체나 노조같은 조직들이 '무결점일 수는 없다. 애초부터 그런 근본주의적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다. 하지만 최대한 신중하여 실수를 줄여가고, 또 실수를 통해 배워가야 하는 것이다. 더 많은 담금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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