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의 경제사상
J.R.스탠필드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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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 경관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다수의 사건이-사람들은 이것을 보편적이라고 합니다- 실상은 명확한 역사사 변화의 소산이라는 점을 밝히는 일입니다."  ......미셀 푸코 <자가의 테크놀로지>중에서 

화제가 되었던 TV 광고 카피가 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웃고 넘기자니 실업자 100만 시대에 사는 직장인으로 입맛이 쓰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에서 전가의 보도로 쓰이는 말이 '구조조정' 아니던가? 정규직의 미래는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의 미래는 노숙자가 아니던가?  모두들 공포와 안도의 이중주 속에서 쩔뚝거리며 살고 있다. 20세기 초, 시장자유주의가 초래할 사회시스템의 붕괴를  경고했던 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쓸쓸한 말을 건넬까 궁금하다.   

신자유주의가 시대의 진리인양 행세하고 있을 때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이론적 방어로 장하준의 '제도주의'가 관심을 끌었다. <사다리걷어차기>,<나쁜 사마리아인>등을 통해 장하준은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지는 '신자유주의'에 반격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는 일종의 조합주의적 대안을 이야기했다. (장하준의 분석과 조합주의 대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에 대한 비판은 생략하더라도 최소한 그의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은- 새로운 것이 많지는 않지만-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에 희색을 돌게했다. 그는 시장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세계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실제로는 보호주의 속에서 성장을 해 놓고 현재의 이해를 위해 '사다리를 걷어차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자본주의의 역사적 성장과정을 예로 들면서 '시장 자본주의'는 영원 불변의 가치가 아닌 역사적이며 상대적이며 또한 말처럼 '진정한 자유방임'인적이 없었음을 지적한다. 장하준의 제도주의적 문제제기 덕분에 국내에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이다. 그는 시장 자본주의를 인류사적 발전의 도정 위에 올려놓고 그 허구성을 날카롭게 분석한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거대한 변환>도 이런 바람을 타고 오랜만에 국내 재출간을 앞두고 있다. 

칼 폴라니의 개념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배태성(embeddness)'이다.  embed라는 말은 주로 수동형으로 쓰이는 단어인데 '어디 어디에 파묻다' 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가지 질문이 생긴다. '무엇을 어디에 파묻느냐?' 는 주체와 대상의 문제다. 폴라니는 자본주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경제' 는 사회 시스템의 한가지 구성요소임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랬듯이 '경제'는 '사회' 속에 파묻혀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경제'를 독자적인 것으로 이탈시켜놓은 전통적인 경제학의 형식주의와 시장방임주의자들을 비난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장 신화와 그들의 자본주의는 사회 전체의 가치와 존립기반을 붕괴시킨다. 폴라니의 '배태성'을 그대로 전용하면 하면 그들의 자본주의는 편협하고 몰역사적이며,자민족중심적인 즉 이탈된(disembedded) 것이다. 이제 앞서 말한 몹쓸 TV 광고 카피를 폴라니와 연결시켜 보자. 폴라니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재-배태성' (Reimbeddeness)은 이런 말이다.'  

'집 나간 경제, 너도 개고생 그만하고, 남들 개고생도 그만 시키고 이제 사회의 품으로 돌아와라'

그렇다면 사회의 우선성을 요구한 칼 폴라니의 경제 사상에 영향을 준 것들은 무엇일까?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꼽을 수 있다. 폴라니는 <초기 제국에서의 교역과 시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인간생활의 물질적 조직을 깊이 꿰뚫어 본 사람은 없었다. 그는 사회 속에서 경제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의 문제를 폭넓게 제기하였던 것이다. 

폴라니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사회의 시장경제를 통해서 경제에 대한 사회의 우월성과 경제의 '형식주의'에 반하는 '실체주의'의 전거를 확보한다. 모든 그리스 철학의 핵심 과제는 '공동체의 안위'로 귀결된다. 폴라니가 관심을 가진 것은 정보의 평등과 합리적 의사결정이라는 허구적 상황하에서 수요=공급의 일치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경제행위가 제도화되는 방식,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가 사회,정치,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폴라니가 '얼치기 시장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한 것은 단지 그것이 경제 행위 한가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탱하고 있는 사고방식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시장신화와 이기적 개인이라는 근대적 개념들은 한 사회의 시스템 자체를 붕괴 시킬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그런 면에서 형식주의자들과 달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시장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외에 폴라니는 마르크스와 오웬에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그는 오웬이 제기한 '자본주의적 경향성이 갖는 항구적 악의 산출'이라는 문제를 문화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여 수용한다.  폴라니는 마르크스에게도 영향을 받았지만  일정정도 선을 긋는다. 문제는 마르크스의 '경제 결정주의'-정확히 말해서는 폴라니의 시대에 마르크스주의의 주류였던 '제 2 인터내셔널의 경제주의-에 반감때문이다. 폴라니의 방법론이 가진 인류학적 상대주의와 다원적인 경제사관은 마르크스의 '총체성'과 이론적으로도 어느 정도 배치될 수 밖에 없다.  

폴라니는 세칭 말하는 아담 스미스부터 시작되는 수요-공급의 주류경제학에 대항해 '인류학과 비교경제사'를 학문적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그는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이기적 인간관'에 제동을 걸면서 고대 사회의 경제 연구를 통해 '호혜성','재분배','증여' 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폴라니의 경제인류학의 연구의 사례들을 여기서 모두 설명하기란 힘들다.결론적으로 역사적 과정을 통해 그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자본주의적 인간'과 '자본주의적 사회'의 출현은 인류 역사에서 근자의 일이며 또한 일반적인 형태도 본성적인 태도도 아니었음을-폴라니는 자민족주의적 경제라고 말한다- 증명한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줄곧 외치는 '자본주의=이윤동기=이기적 인간본성'이라는 식의 도식 역시 고대 사회의 경제 연구를 통해 의심받는다. 고대의 어떤 사회에서도 '경제'를 우위에 둔 사회는 없었으며 '공동체'의 안위를 파괴하는 '이기적 개인'이나 제도를 방치한 사회도 없다.  

만약 사회의 실체인 인간과 자연,뿐만 아니라 이를 조직화한 기업이 파괴적인 악마의 맷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면...어떤 사회라도 무지막지한 허구적 시스템의 결과 앞에서 잠시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폴라니는 <거대한 변환>에서 이런 전통 사회의 흐름이 단절되는 19세기의 사회경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이 책의 저자인 스탠필드는 폴라니와 달리 17세기론을 주장한다.) 그는 19세기 자본주의 경제의 제도적 특징을 '세력균형','금본위제','자유국가','자기조정적 시장경제' 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라는 것이다. 이 말은 시장이 알아서 합리적으로 결정해준다는 시장자유주의자들의 금과옥조이자 신화이다. 폴라니는 결코 시장경제가 인간조건의 자연적 또는 자연발생적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자기조정적 시장이라는 것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였으며 이것이 점차 정책에 영향을 미쳐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만들게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결국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설계' 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그에 따르면 다수의 시장만 가지고 시장경제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아담 스미스 이전에도 시장은 많았고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것을 '시장경제'라고 하지는 않는다. 폴라니는 시장경제 발생의 '인간설계'의 중요한 요소로 '국가의 개입'을 들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장자유주의자들은 '국가'를 적대시하며 '최소국가'를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국가의 제도적 지원의 혜택을 누린다. '이현령 비현령 상인윤리'다.   

시장경제가 이렇게 형성되었으면 교환이라는 것이 핵심요소로 나서야한다. 자본주의적 교환은 '상품'이 없으며 불가능하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폴라니의 유명한 개념인 '허구적 상품'이 시장에 당당히 나서는 것이다. 폴라니는 '노동, 토지, 화폐' 를 허구의 상품이라고 말한다. 

노동, 토지와 화폐는 본래 상품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노동은 생활 그 자체와 함께 하고 따라서 그 성질상 판매하기 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며..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이다. 토지는 인간에 의해 생산되지 않는 자연의 다른 이름이다. 실질적 화폐는 결코 생산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은행이나 국가재정의 메커니즘을 통해 존재하게 되는 구매력의 표시일 뿐이다. ... 노동, 토지, 화폐에 상품이라는 말을 붙인 것 자체가 완전히 허구적이다. 

물론 폴라니는 이 세가지 요소가 상품처럼 교환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 스탠필드의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자.  

폴라니의 핵심은 시장경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허구성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시장경제의 허구적 또는 신비화된 기초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신비적 성격으로 나타난다.허구적 전제를 기초로 세워진 시장경제의 모양은 사회조직의 현실적 개념이 아니다. 이는 철저하게 유토피아적 개념인 것이다.  

폴라니의 견해를 정리하면 시장자유주의 경제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실체이긴 하지만 이질적인 녀석이다. 또한 그 출발부터 시작해서 유지양상조차 허구적이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이 녀석을 그냥 두었을 경우 사회는 총체적 파국상태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폴라니를 비관주의자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지막에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있다. 미셀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폴라니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인간사회는 자기 파괴적인 메커니즘을 무디게 하는 대항적 방어운동이 없었더라면 멸망했을 것이다. 

폴라니는 '자기조정적 시장'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반동적인 움직임'이 늘 상존한다는 것을 말했다. 자기조정적 시장이 인간본성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기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자연발생적이라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폴라니는 국가의 개임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제단계-심지어 제국주의나 민족주의,법인기업들-마저도 그런 방어적 반응의 주체가 되곤 한다고 말한다. 폴라나의 이러한 생각은 '조합주의 복지국가'나 '혼합경제'에 반영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좌파 집산주의로 오해받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속류 맑스주의 목적주의적 결정론과 반자유주의에 반대했다. 그와 함께  폴라니는 방어적 반응이 시장경제의 보완물로 작동시키는 '협애한 개입주의'에도 선을 긋는다. 그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 해체를 요구하지만 결코 이것이 시장의 소멸을 예고하지는 않았다. 시장메커니즘은 어쨋든 도구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가 붕괴되는 자리에 두가지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것은 관리된 경제를 운영하는 두 가지 사회적 실체로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이다. 폴라니는 이탈된 경제를 복원하여 '관리된 경제'로 돌아섰을 때의 문제를 '자유'의 훼손으로보는 '편협한 자유론'을 공격한다. 

자유주의자에게 자유의 개념은 단지 자유기업의 옹호로 전락하였다.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은 무책임의 경제학을 대표하는 것이다.  

J.M 클라크는 '통제의 경제학은 무책임의 경제학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라는 말로 나쁜 자유에 대항하는 소중한 자유의 의미를 되짚어내었다. 폴라니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보다 풍부한 자유를 제공해야 할 임무에 성실하는 한 권력이나 계획화가 인간에게 등을 돌리고 인간이 그 덕분에 구축하고 있는 자유를 파괴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복합사회에 있어서 자유의 의미이다. 

<칼 폴라니의 경제사상>은 폴라니의 경제사상의 출발과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폴라니의 저서들을 중심으로 주된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지만 조금 더 가시성 높은 설명을 위해서 폴라니 이후 연구자들과 경제인류학자들의 저서들 중 유사한 대목들을 인용한다. 또한 역자의 보론에서는 제도주의학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베블렌과 폴라니를 비교하여 제도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경제인류학을 통해 유사한 접근을 시도한 폴라니를 동류항으로 묶고 있다.또한 간략하게나마 베블렌 이후의 제도주의 지류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폴라니의 한계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그의 방법론이 '고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 계보적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형성과정의 허구성을 지적해 낸 부분은 인정하지만 역사적 존재로 등장한 자본주의 이후의 문제에 대해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 또는 문헌적 접근을 중심으로 한 결과 결국 실제적 생산-노동의 관계성 속에서 작용-반작용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 또한 자연스러운 반작용 형성과정을 형식적으로 설명하며 동력 형성의 주체 문제는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 국가와 자본을 둘러싼 담론에서 국가의 선험적 중립성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자본주의 외에 대안이 없다', '시장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이다'는 식으로 고개를 박고 있는 사람들에게 폴라니는 충분한 해독제 역할은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관적이게도 '종교적 신념'은 때로는 맹목적이어서 잘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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