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도서'란 말을 가끔 썼는데 갑자기 그 말이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는 미녀에게 시선을 1과 2/3초 더 준다는 건가?  아니면 '저기요..사채 필요하시면 이리로 전화주세요.'라고 명함을 건넨다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저기 아래 새로 생긴 좋은 모텔이 있는데 함께 DVD나 보러갈까요.'라는 건지...도대체 내게 '관심도서'란게 뭘까? 스스로 생각해봤다. 부정적인 뉘앙스로는 정말 말 그래도 '관심만'이다. 그렇다면 내 관심망에 안걸리는 종목은 몇 개나 있을 성 싶기도 하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찾아보니 관심영역보다 비관심 영역이 훨씬 많다. 배드민턴, 훌라, 폭탄주, 스타 크래프트, 사교댄스, 골드미스 다이어리, 프로야구-어린시절 난 매우강력한 OB팬이었는데, 각종 처세술 책들, 프랑스어 교재... 등등등  

하여간 그동안 '관심만' 갖고 잊어버린 책도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그 귀찮은 '관심' 때문에 쌓여가는 책들의 원성을 듣고 있긴 하다. 책장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게 책은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구매속도를 조절했다. 그런데 진실은 거역할 수 없다. '구매'는 '독서'보다 훨씬 쉽고 빠른 일이다.언젠가 읽겠지 해서 읽는 책도 있지만 최근에는 2년이상 대기발령시켜 놓은 육군 병장같은 책도 있다. 엘리어트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이 그렇다. 책을 찾으려고 무던 애를 쓰다 우연히 대학가 서점에서 한 권 찾았는데 찾는 기쁨을 기억하며 여전히 모셔져 있다. 하여간 이런류의 병목이 늘어가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나는 예전에 연애비용을 아껴가며 음반을 사던 기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때는 레코드 샵에서 5장 정도를 쥐고 결국 한 장만 남겨 놓고 다시 꼽던 시절이다. 요즘은 돈 좀 있다고 5장을 다 산다. 물론 처음부터 쥐는 양이 늘긴 하지만. 규모가 커졌다고 감동이 두 배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예전에는 그 한 장의 음반을 CD레이저가 CD표면에 홈을 낼만큼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집으로 모셔오는 음반의 양이 늘어나다 보니 어떤 음반들은 1-2번 듣고 1년내내 손을 대지 않는 것도 수두룩하다. 내 음반량은 진짜 음반 매니아들 수준에 비하면 턱도 없지만 하루 한 장씩 듣는다면 5년 이상은 족히 걸릴거다. 최근 CD 시대의 종말증후로 '염가박스'세트가 나온다. 나도 그냥 흘려 보내질 못하는데, 사실 다 듣지 못한다. 책도 그도 그렇게 되면 곤란한데.... 

만화작가 줄스 파이퍼의 작품집이다. 이 바닥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인 듯 하다. 그림이 낯에 익다. 그런데 처음 소개된다고 한다. 과문해서 뭔가 착각하고 있는 듯 

선임하사는 책상에 고개를 파묻은 채 먼로를 바라보지조차 않았습니다
그럴 만도 했지요. 선임하사는 늘 바쁜 사람이니까요.
“저기요… 저는 이제 겨우 네 살이라구요.”
선임하사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마치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뿐이라는 듯이, 먼로를 바라보지도 않고 빠르게 말했습니다.
“군대는 네 살짜리 어린이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병사는 자신이 네 살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당장 의무대로 가서 군의관의 검진을 받도록 하라!
                                                                  P62,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 중에서 

나는 통계적인 이유(?)로 군대를 좀 짧게 갔다왔다. 서울 북쪽 구파발 인근에 많은 방위 부대 출신이다. 사단 본부대 영선반이라고 매일 작업만 하는 방위였다. 공병대는 장비 써서 작업하고 영선반은 그냥 몸땡이로 작업한다.  난 내가 '방위'인게 좋다.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나는 군대 가기전에도 군대가 싫었고 군대가서도 싫었으며 군대를 나와서도 싫다." 그런데 대부분 나말고도 대부분 그런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는 해병대네' '나는 특전사 출신이거든' 이런 말을 자랑삼아 한다. '젊어 고생의 마초화' 가 이루어진다. 군복이나 제복입던 자신의 모습 외에 별로 아름다울게 없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빨간 모자를 쓰고 길에서 교통정리한다. 자동차에 군대에 뜨는 별마크를 달고 말이다. 수많은 개인의 분화된 정체성 중 '예비역' 정체성으로 영원히 군대와 함께 하고픈 가련한 사람들이다.  

SF소설계의 무림당주 3인방 중 하나라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The moon is a harsh mistress>이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라고 해놓으니 오히려 낯설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어 제목에 더 익숙하다. 팝이나 재즈에서 이제는 스탠더드로 불리우는 노래다. 국내 CF에도 사용된 적 있었다. 존 바에즈, 린다 론스테드, 팻 메스니, 나윤선, 조수미등.... 이 노래는 이 책 제목에서 나온거다. 

SF소설은 다른 시공간을 통해 당대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로봇'이 '노동자'의 메타포였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은 '대작 SF 소설'이 나오기에 좋은 토양을 가진 셈이다.  
하인라인은 이 소설에서 '혁명'(일종의 레닌적인)을 이야기한다.그것의 의미는 책을 읽고 가늠해봐야한다. 하인라인은 군국주의적 성향의 보수적 작가로 알려져있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와이오밍, 혁명은 대중을 동지로 만든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혁명은 극히 소수의 유능한 사람들만이 실행할 수 있는 과학입니다. 성공 여부는 올바른 조직이 있는가, 무엇보다 제대로 된 의사 소통이 가능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역사적으로 적절한 순간에 실행하는 겁니다.” - 본문 중에서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책 제목이 정말 딱딱하다. 이 책을 본 순간 칼 폴라니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폴라니의 접근 방식이 이러했기때문이다.  무화과나무님은 페이퍼에서 폴라니의 배태성(embeddeness)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가?  폴라니는 사회가 경제를 배태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형식주의경제학(주류경제학)이 시장자본주의와 인간본성을 결합하는 신화론적 해석에 맞서는 해방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폴라니의 주장은 시장중심자본조의는 disembeded 된 것이므로 다시 re-embedded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집나가 개고생하는 경제를 다시 말아넣어야 된다는 말이다.   

폴라니는 집나간 경제를 입증하기 위해 비교경제사와 인류학적 방법론을 채택한다. 폴라니는 '호혜성'이란 것을 이익 중심의 경제적 사고와 대비하고 각 문화에 존재했던 호혜성의 경제를 탐색하여 '경제적 사고'라는 것이 결코 통시적 역사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폴라니는 맑스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는지만-정확히는 제2인터네셔널의 경제주의에- 또한편으로는 맑스와 중첩되는 아이디어들도 발견된다. 이 책은 어느 수준에서 인지 모르겠으나 '맑스와 모스'를 결합한다고 한다. 아래의 주장은 폴라니의 것과 다를바없다.  

사실상 현대적 시장의 근원지인 유럽에서조차 합리적 판단에 따라 만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개인’이나 이들의 이윤 추구를 매개하는 공간인 ‘시장’ 등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개념이라 할 수 있으며, 임금노동제에 기초한 상품시장의 논리 역시 비서구의 ‘원시사회 부족민들’만이 아니라 근대 서구인들 자신의 일반적인 윤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것이었다.  

 <자유론>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딱 어울린다. 언론학부 1학년들이 처음에 배우는 이론 중 하나가 윌버슈람의 <언론의 4이론>이다. 그 중 자유주의 언론관의 토대가 되는 것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다. 그는 이 책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고전적 정의를 내려놓았다. 물론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 사이의 관계는 좀 더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그렇지만 그 복잡성도 '언론자유'의 기본적 가치가 존중되지 못한다면 모래 위의 집과 유사하다. 하버마스의 '공론의 장'이라는 것도 결국 언로가 유형,무형의 장애를 받는 상황에서는 구성자체가 유의미하지 못하다. 

“개성을 파멸시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도, 그것이 신의 의지나 인민의 명령을 강행하는 것이라고 공언된다고 해도, 모두 전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본문 142쪽 

존 스튜어트 밀은 앞서 말한 칼 폴라니기 비판한 고전파 경제학자 제임스 밀의 아들이다. 스튜어트 밀는 어려서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는 자유주의적 공리주의자로 출발해서 후에는 페이비어니즘에 영향을 주었다고 알고 있다.  

 

<큐복음서의 민중신학>이다. 큐복음서란 무엇인가? 

공관복음 중에서 성서학자들의 치밀한 텍스트 분석에 의하면 마가복음이 먼저 성립하였고, 마태와 누가복음은 마가복음과 여타 전승들을 종합하여 편집 기술되었다고 한다. 마태와 누가복음에서 중복되는 부분을 적출하여, 여기서 마가에서 온 것을 제외하면 마태와 누가가 참고로 한 공통의 자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독일어 자료를 뜻하는 크벨레(Quelle)의 첫 글자를 따서 Q자료라 불렀는데 이 Q자료는 예수의 어록으로만 되어있다. 그런데 1945년 도마복음서라는 어록복음서가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되어 그동안 가설적으로만 논의되던 Q자료가 세계 신학계에서 큐복음서라는 사실적 복음서로 인정되게 되었다.

나는 꽤 오래 교회를 다녔고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교회와 절연했다. 물론 내가 교회를 그만둘때는 '예수=교회'라는 도구적 방법을 썼다. 지금 나는 '문화적으로 종교'를 이해하는 입장이다. 나는 사람들이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예수'에게까지 투사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파르마코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뿐만이 아니라 애꿋게도 기독교인들이 만든 역사에 의해 또다른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공자, 석가를 대하듯 예수를 대하면 된다. 종교성이 없어도 그런 스승으로 이해한다면 '예수=교회'라는 식의 비판으로 부터는 탈피할 수 있다. 예수땜에 이 모양 이 꼴이 된거 아니다. 그런면에서 예전에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 예수를 재조명한 방식은 내게 반가왔다. 저자 김명수 교수는 부산 경성대에 있는 걸로 안다. 안병무 선생의 맥을 잇고 있다는 홍보문구가 눈에 띈다.  
  

^^ 사실 내가 가장 읽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충 대충 넘겨보는 책이 육아책이다. 육아책은 엄마 몫이라는 식의 촌스러운 생각은 넘어선지 오래다. 곧 두 남자 아이의 아빠가 될 내게 <남자 아이 심리백과>는 유용해 보인다. 혹시 모른다. 이 책을 보다가 내 안에 살아 있는 어떤 소년을 만나게 될지도.  

예찬이는 요즘 어린이집을 다니고,으젓하고, 섬세하다. 식물과 자동차를 사랑하고, 머리 깍기를 싫어한다. 말은 또래 아이들보다 6개월 이상은 빠른 것 같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예찬이가 던지는 표현들을 재미있어하면서 일기장에 써서 보내주신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재미있고 놀라운 경험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강제로는 뭔가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본적 육아태도가 '대화'이다보니 이제는 대충 그냥 따라왔으면 좋겠는데 하는때도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인내와 체력....그리고 사랑이 필수다. 

 발마스님이 번역한 <마르크스와 해체>가 나왔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출간 이후 전개된 논쟁의 전후과정을 온전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번역ㆍ출간한 책이다. 즉 원래 미국의 문학이론가였던 마이클 스프린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 출간을 기회로 삼아 영미권 및 유럽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데리다 사이의 대화의 장으로서 출간했던 <유령의 모습을 그리기>(Ghostly Demarcations, 1999)라는 책에 실린 글들을 뽑아서 묶은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읽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데리다의 개념들을 조각 조각아는 수준이니 먼저 데리다를 공부하고 볼 생각이다. 발마스님의 번역한 책들 중 유명한 데리다의 <법의 힙>,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 를 지난 주 헌책방에 갔다가 봤다.모두 새 책이나 다를 바 없었다. 지금 당장 밀린 것들과 그 책들 사이에서 무지 고민했다.결국 당장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들었다 놨다만 하다 놓고 왔는데 ...돌아서고 나니 그새 팔려나갔을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그래서 사두게 되면  앞서 말한 병목이 쌓이게 되는거다. 으...둘다 새 책인데 50% 였는데...으으 자꾸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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