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또한 시장지향의 정신을 거부하였다. 개인이 자신의 효용함수만 책임지면 된다는 논법은 사회의 실재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문화에서 그렇게도 중요하다는 온갖 종류의 선택 역시 의심스러운 것이다. 선택이라고 해봤자 진실로 중요한 선택은 결여된 채 단지 삶을 은폐하는 광란적인 골라뽑기만이 난무할 뿐이다. 이것들은 오히려 삶의 방식보다는 삶에 대한 열망의 부재, 즉 '쉼없는 발걸음이 끝없는 뒷걸음으로 나타나게 된 형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비마르크스주의자의 말이다. 좌파가 아니어도 당연히 시장일방주의는 거부할 수 있고 거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의 문제는 사상 시장에서 한 줌에도 미치치 않는 스펜서류의 '사회진화론'을 믿으며 스스로 당당하고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온갖 점잖은 말과 성찰의 노력도 궁극적으로 '사회진화론'의 세련된 포장을 위해서라면 악어의 눈물과 다르지 않다.  '사회진화론'을 가지고 '현실적 접근'과  '합리적 사고' 그리고 '건강한 자본주의'의 수호자인양 행세하는 것은 애초부터 글러먹은 것이다.  

 나의 '관용관'은 '불관용'을 포함하는 관용관이다.  만약 '관용'이 그런 '앙똘레랑스'를 포함하지 않는 무책임하게 상대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말이라면 나는 스스로 '불관용주의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기준을 '적대'라고 말했다. 실제 '휴머니즘'이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휴머니즘'을 말하며, 우리는 모두 하나인 척, 인류는 모두 동포인 척한다. 그리고 왜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고 나누고 하느냐는 것이다. 모두 평화롭게 살길을 찾지 않고 나누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말많으면 빨갱이라는 결론까지 간다. 그런데 평화주의자를 사칭하는 '사이비 휴머니즘'이 은폐하고 있는 것은 대략 1분 미만만 생각해보면 그 말 뜻을 알 수 있다.   

내게 '불관용'의 대상 중 하나는 '사회진화론자'이다. 사회적으로 나는 어떤 성찰과 어떤 수사학을 구사하더라도 세칭 '사회진화론'을 신봉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불관용'할 것이다. 물론 내가 그들을 사회에서 척결할 수는 없고 더 나은 사회가 오더라도 그들이 결단코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그들의 미사어구에 일일이 대꾸할 생각도 없으며, 그들과는 '적대적'이라고 선언할 수 있다. 뭘 공부하든 좋다. 뭘 성찰한든 좋다. 그 결과가 '사회진화론'을 검증받고, 세련되게 포장하고픈 것이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인류와 역사, 그리고 지구를 위해 도움이 된다. 부디 제발 가만히 있어라. 불관용할테다...삐뚤어질테다.      

"인간 존재의 정상적인 상태는 남을 앞지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려놓은 삶의 이상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앞다퉈 나가기 위해 밟아 뭉개고, 밀치고, 팔꿈치로 치고, 서로의 발뒷꿈치를 밟는 것이 사회생활의 존재양식이며 바람직한 인간의 운명은 아니다. 이는 산업이 진보할 즈음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불쾌한 징후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 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왜 다른 사람이 필요하는 것보다 이미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부귀의 상징 외에는 아무런 쾌락도 주지 못하는 소비거리를 갑절로 늘리는 일로 추앙받아야 하는지.." 

 .... ....고전파 경제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자유론>의 존 스튜어트 밀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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