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 한길컬처북스 23
바트 무어-길버트 지음, 이경원 옮김 / 한길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베르너 헤어조그의 영화 <위대한 피츠카랄도>를 기억하는가? 피츠제랄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보다는 조금 덜 유명하지만 그래도 관뚜겅 열기전에 봐야할 '세계 100대 영화' 같은 강박적인 목조르기를 요구하는 목록에 가끔 들기도 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오페라매니아인 피츠카랄도가 자신의 근거지인- 제국주의 사업현장이다- 아마존 강가에 오페라 하우스를 짓고자 한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무모함마저 번뜩이게 보이는 금발의 백인은 증기선을 타고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러 간다. 하지만 가는 길에 난관에 부딪힌다. 폭포와 물살이 세서 도저히 원하는 목적까지 뱃길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무모한 예술광은 드디어 사람들이 꿈에서나 상상하던 일을 실행한다. 배를 타고 산을 넘는 것이다. 실제 촬영도 증기선을 끌어서 산을 넘는 장면을 찍는다.마치 다큐멘터리인양 말이다. 영화 호사가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킨 건 실제로 인력을 동원하여 배를 산으로 넘긴 헤어조그의 광기어린 스펙터클이다. 이발소 그림같은 CG가 난무하는 <반지의 제왕>류의 스펙터클과는 완전히 종류가 다르다. 실제로 이 장면은 아마존의 야성과 날 것으로서의 광기가 결합을 하여 눈을 뗄수 없게 한다. 대형 화면에서 봤다면 영화의 줄거리나 해석을 떠나 이 장면이 주는 스텍터클과 살아 있는 장면을 만든 뒷이야기가 주는 아우라로 인해 순간적으로 해석적 감각이 교란되는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위대한 피츠카랄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원주민과 피츠카랄도의 첫 대면장면이었다. 서구와 비서구의 시선이 교차하는 긴장을 상당히 멋지게 영상화해내었다. 아마존강의 고요한 흐름과 간헐적으로 울어대는 이름모를 이국의 새들. 그리고 그 어딘가에 숨어 있는 눈동자들. 이런 긴장에 이물감을 던져 넣는 것이 축음기를 통해 나오는 오페라다. 서로 다른 문명이 서로를 맞대고 숲의 리듬과 오페라의 멜로디를 따라  이렇게 치열하게 만나는 장면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바둑 고수들의 대국처럼 서로 한 점의 포석만을 해놓고 장고를 하는 것 같았다. 오페라는 이 영화를 끌어가는 모티브이자 피츠카랄도의 의지이고 또 문명의 상징이다. 그리고 또한 피스카랄도의 실패의 증거이며 끝까지 잃지 않으려는 서구 인본주의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흔히들 영화<쇼생크탈출>의 교도소 오페라씬을 영화 속 최고의 오페라 씬이라고 추천한다. 그렇지만 내게 -그 해석의 정치학을 떠나서- 최고의 오페라씬은 아직까지는 <위대한 피츠카랄도>의 고물 배 위의 오페라씬이다. 실패했지만 시거를 하나 물고 뱃전에서 오페라를 듣는 클라우스 킨스키의 미소는 잊혀지지 않는다.그리고 그의 당당함에 영화의 지배적 의미가 부여될 때 이 영화의 정치성은 '위대한 인간의 휴머니즘'이라는 식민담론이 백인을 미화해내는 정치적 전형을 따라가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인간 승리'라는 유혹적인 반정치의 방식으로 정치의 문제를 반어적으로 각성시키는 셈이다.  

바트무어 길버트의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를 이야기 하기 전에 글머리가 너무 무거워졌다. 언젠가 '피츠카랄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했는데 떡본김에 제사지내는 심정이 되었다. 이 책은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전반적인 입문서로서 상당히 잘씌여졌다.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평이해서였는지, 역자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돋보여서인지  이런 류의 번역서에서 종종 발견되는 소화불량은 거의 없었다. 이 책이 특히 돋보이는 것은 입문서로서 가져야 할 서술의 방법과 접근태도가 일목요연하다는 것이다. <탈식민주의 저향에서 유희로>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론에 해당하는 부문에서는 '탈식민주의 이론'의 전반적 경향을 일러둔다. 탈식민주의에 대한 현재적 비평-즉  텍스트화된 자족적 비평과 학문적 정체-를 소개하고 이런 비판의 정당성과 반론의 근거를 이야기한다. 먼저 저자는 현재 '탈식민주의 이론'을 둘러싼 비판적 논의를 이해하기 '탈식민주의 비평'과 '탈식민주의 이론'을 방법론적으로 구분한다. 이 책에서는 후자쪽에 중심을 두고 이후 주요 작업이 이루어진다. 본론에는 '탈식민주의 이론'의 '성삼위'라고 말해도 무방할 세 명의 주인공들의 이론이 소개된다.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이다.(올해 번역 예정된 책 중에 호미 바바의 <민족과 서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책에서는 먼저 각 사상가들의 이론이 출발하게 된 계기와 방법론, 그리고 그들 이론의 변천사를 정리한다. 이 세사람은 모두 탈식민주의 이론가로 칭송받지만 '탈식민주의'에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사이드가 '서구/비서구'의 이항대립적 구도를 명확히 전거로 삼고 있다면 스피박은 '하위계층'과 '페미니즘' 문제에 호비바바는 '양가성'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보니 서로 비판하며 충돌할 수 있는 대목들이 나온다. 저자는 그런 문제들을 그 때 그 때 상호비교를 통해서 설명한다. 즉 차이를 통해서 그들 이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좀 더 명쾌하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이 세 명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나면 결론 부문에서 저자는 '탈식민주의 비평'과 '탈식민주의 이론'과의 변증법적 화해를 도모한다. 기본적으로 이 둘 사이의 단절보다는 연속성을 인정하면서 다양성과 차이성의 발현을 해소되지 않는 방식으로 결합시키기를 요구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대위법적인 화해' 그 중에서도 '무조협주곡'의 화해라는 것에 저자가 긍정적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저자는 먼저 현재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항간의 비판으로 식민성 논의에 '고급 이론'의 도입을 통해 '텍스트적 혁명' 즉 지적 유희단계로 나아가는 경향성에 대해 언급한다. 이런 차원에서 탈식민주의 이론의 시작점 또는 분기점으로 보는 것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다. 이 책의 선구적 업적은 사이드의 옹호자나 비판자들 마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오리엔탈리즘>을 기점으로 해서-그래서 저자 입장에서는 이 책을 분기점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탈식민주의 비평' 과 '탈식민주의 이론'으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탈식민주의 이론'에 전거가 되기도 하고 또 탈식민주의 이론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되기도 하는 '탈식민주의 비평'은 무엇인가? 시간적으로 보자면 물론 <오리엔탈리즘>이전에 존재했던 강력한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비평전통이다. 이 책은 주로 아프리카 탈식민주의자들을 이야기한다. 물론 다양성과 차이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책 후반부에 일종의 모델로서 카리브해 비평모델을 설명하기는 한다.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탈식민주의 비평가는 알제리의 파농이다. 그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은 '탈식민주의 비평'의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으며 또 '탈식민주의이론'이 역사성과 물질성을 수혜받을 수 있는 전거로 자주 제시되곤 한다.  

이 책에서는 '탈식민주의 삼총사'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세가지 비평의 잣대가 자주 동원된다. 먼저 탈식민주의 자체 내의 상호비평, 두 번째는 탈식민주의 비평가들의 작업, 마지막으로는 마르크스주의 비평이다. 아마드의 <이론 안에서>는 이 책 전반에 걸쳐서 여러번 거론된다. 물론 이 세가지는 다시 합종연횡의 방식으로 각각의 이론들의 비판과 반비판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내부 비판과 외부자극이 가능한 것은 궁극적을 '탈식민주의론' 자체가 다루어야 하는 대상이 정치,경제, 문화, 민족, 인종, 역사,정체성, 주체,  등등에 걸쳐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방법론적 접근에 있어서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이 전거로 삼는 이론들의 혼재성도 문제가 된다. 사이드는 푸코와 그람시를 혼합하려고 한다. 스피박은 데리다와 마르크스를 넘나든다. 바바는 푸코와 라캉이 서로 덧붙여진다. 저자는 여기에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이 스스로 끊임없이 또는 모순적인방식으로 자신들의 이론을 수정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이드의 경우는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와 제국주의>사이에서도 차이가 생긴다. 결정론적인 푸코를 받아들였던 사이드는 후기에 가면서 저항의 문제와 저항 주체의 긍정성에 대해 훨씬 우호적으로 나아간다.또한 방법론적으로도 앞의 저서가 서구작가들의 텍스트 분석을 통한 오리엔탈리즘의 입증이었다면 후기 작업에서는 비서구작가의 작품에 더 높은 관심을 보여서 그 상화연관성을 두텁게 한다. 물론 저자는 정치와 문화의 불가분성이나 일체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책의 일관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잊지 않는다. 스피박은 '하위계층'의 재현을 두고 왔다 갔다 한다. 스스로도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밝힌 스피박이니 오죽하겠는가. 스피박은 사이드에 비해 애초부터 식민담론보다 저항담론에 더 비중을 둔다.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으로 결국 다시 '서구/비서구'의 동질화 반복과정을 택한 것에 비해 사이드가 덜 관심을 둔 이질성과 여성주체 문제를 화두로 꺼내든다. 그녀는 인도라는 상황하에서 '서발턴'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서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제목만으로도 전통적 질문을 구성해낼 문제에 달려든다. 스피박은 초기에는 하위계층을 완전한 타자로 설명했으나 후기에는 개입을 통하 발화가능성에 기대기도 한다. 또한 발화자로서 스피박 자신의 위치에 대해 인정하면서 탈식민주의 논의 자체가 반복하게 될 또 다른 형태의 폭력에 대해 경계한다. 스피박은 기본적으로 이질성과 차이를 중요시 여기면서도 '전략적 본질론'이라는 개념을 통해 신식민지적 상황의 해방을 위한 연대의 길을 열어놓는다. 호미 바바는 '혼종성'과 '양가성'이란 개념을 통해서 식민주의 권력의 일방적 관계에 다른 선을 하나 긋는다. 바바는 '모방'이란 것이 일종의 저항의 형태로 반복된다고 말하며 모든 문화의 혼종화 과정에 대해 강조한다. 이것은 파농이 과거에 지적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즉 식민권력자는 결코 전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며 대항 권력으로부터 늘 불안해하며 또 스스로도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식민 권력의 문제를 조금 더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하며 또한 극단적인 패배주의적 심리상태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바바의 이런 생각은 물론 식민관계의 물리적 권력의 힘을 간과한다는 지적과 함께 식민권력에 대한 작용과 피지배자에 대한 작용을 동일한 결과로 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사이드, 스피박, 바바의 이론과 그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들을 정리하는데만도 꽤나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그런 담론 투쟁이 담고 있는 의미까지 되짚어서 둘아본다면 그 두배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방법론적으로 저자가 이 담론 투쟁들을 구획하고 있는 방식들을 따라가는 것이 어쩌면 편의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몇가지 대립적인 개념들이다. 제국주의/ 신식민주의, 정체성/혼종성, 보편성/특수성, 통일성/이질성, 물질성/비물질성, 경험주의/담론주의. 이 책에 나오는 탈식민주의 논의와 그에 대한 비판은 사실 이런 커다란 개념들의 밑바탕하에서 이것들을 배합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담론'이 물질성과 경험주의에 강조를 두고 있다고 본다면 탈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런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각론으로 봐도 이와 유사하다. 사이드가 개별 식민국가의 다양한 양상에 대해 보편적인 이론의 문제를 제기한다면 바바나 스피박같은 이들은 탈식민주의 내에서도 차이성에 더 큰 애정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강조는 가끔 또다른 형태의 본질론으로 환원되는 이론적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하위주체'를 강조하며 이론적 구획을 시도하다보면 특정하게 양식화된 하위주체가 발현되고 마는 본질화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만다는 것이다. 바바에게도 그런 문제가 누차 발생한다.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의도하지 않았던 특화와 의도하지 않았던 묵살이 발생하게 된다.  

'보편/특수'에 대한 최근의 추세는 물론 절충과 연대이다. 쉽게 말해서 계급과 소수자의 연대같은 이런 나이브한 개념들 말이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비판가들 중에는 이런 인본주의적인 나이브함을 환상을 심어주는 행위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어떤 형태로 연대할 것인지에 대한 지도도 없으면서 헛된 망상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결론에서는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절충론적 해법과 문화적 혼종성, 다양성, 역사적 차이의 인정과 또한 연대를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탈식민주의의 다양한 논의에 대해 구하의 입을 통해 긍정적으로 묘사한다.일종의 탈식민주의 버전 인도판 '백화제방 백가쟁명'에 대한 긍정성이다.   

" 이러한 문제틀을 탐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백 송이의 꽃이 만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잡초가 자라나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 한가지 사족을 얹자면 이 책의 저자는 문학 전공자이다. 사이드부터 해서 대개의 탈식민주의이론가들이 문학을 텍스트로 탈식민주의를 분석하고 있다. 입문서가 가진 계열성의 특징을 따라간 것이기도 했겠지만 아무래도 문학의 비중이 높다. 이 책에서 사이드에 대한 '제국주의 담론'측 비판자로 자주 등장하는 존 매켄지의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가 보완물이 될 수도 있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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