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미성숙이 나를 왜 매혹하는가, 그것은 순수하고 젊고 금지된 요정의 아름다움이 주는 명쾌함 때문이라기보다 많은 것이 약속되지만 거의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틈새를 무한한 완전성들이 메꾸어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가질 수 없는 분홍 잿빛의 위대함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p 359-360)  

나보코프, 흐흐흐, 당신은 정말 웃긴 사람이야. 내가 만약 단 한 단어로 당신을 타임캡슐 속에 봉인해야 한다면 나는 당신을 그런 기억으로 담아 둘 것 같다. 물론 웃긴다는 말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 재미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나 원 별것도 아닌게' 하는 식의 싸늘한 미소일 수도 있어. 하지만 당신이 만드는 그것은 이항적인 구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그래서 마치 3월 봄바람과도 같아. 3월의 봄바람을 아나? 그것은 따뜻한가?  그렇다면 차가운가? .아니.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아. 그냥 3월의 봄바람만큼의 웃음이지. 당신이 만드는 웃음은 어느 초등학교 교실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해. 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가 잔뜩 쓰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지. 한 아이가 자신있게 손을 들어, 그런데  소년은 순간적으로 어떤 의심이 들었나봐. 그 의심은 올라가려던 팔을 무의식적으로 잡아당기지.그래서 엄마가 새로 준 점퍼의 팔굽있는 부분이 제대로 펴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접히지. 당신이 그래. 나는 그 어쩡쩡한 점퍼의 주름과 양눈가에 자신감과 의혹 사이를 진자운동하는 아이의 눈망울을 보듯 당신이 만든 웃음을 바라본다. 당신의 문장안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웃음이 담겨있어. 미학적이게 웃긴다고 하면 그건 분명 당신의 문장을 두고 하는 말일게야. 물론 당신이 만든 험버트도 아주 흥겹지. 사랑에 조바심난 노친네, 롤리타의 젊은친구들까지 견제하느라 얼마나 애간장이 타겠어. 그리고 또 미성년자 약취유인범과도 변별점을 찾으며 롤리타와 그걸 하려고 하니 얼마나 애써야했겠어. 흐흐흐(아.. 늑대같은 웃음은 아니야? 나는 미성숙한  여자애들은 좋아하지 않아.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말이야..) 

어쨋거나 당신이 웃긴건 사실이고,이건 당신을 저평가하는 말은 결코 아니야.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뒤늦게 당신을 만났지만 당신에게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어. 지난 해에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기뻐한,당신이 이국의 언어로 쓴 첫번째 소설 <어느 망명작가의 참인생>과 당신의 자서전인 <말하라 기억이여>도 한달음에 읽고 싶어졌어. 물론 조금 시간은 필요할 거야. 오뉴월에 바람난 개처럼 이것 저것 들추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그렇지. 내 이런 습성도 좀 고쳐질만도 한데 나이가 들어도 결코 바뀌지가 않는다. 하지만 내일 모레까지 논문을 내야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주말까지 맡은부분의 발제를 해야하는 것도 아니니 뭐가 어떻겠어?  봄바람의 향기가 더 짙어질때 당신을 다시 펴보던 코 끝에 입김이 어는 시절에 당신을 다시 집어들던...아무도 개의치 않을텐데. 흐흐. 나는 가끔 책을 읽을때 가장 '자유'로와져서 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 당신이 글을 쓸 때 그랬을 것 처럼 말이지. 

당신의 소설은 묘한 아이러니에 처해졌어. 당신은 '예술은 예술일 뿐'인 사람이잖아. 그런데 당신의 명성을 알린 책<롤리타>는 이제 미디어적인 용어가 되어 버렸어. 어린이 성범죄와 관련된 기사에는 그래서 가끔 당신의 이름이 오르기도 해. 부고기사들 사이에서 오타난 상주의 이름을 보는 것 같지. 흐흐흐. 당신의 <롤리타>는 말이지. 대중들 사이에서 '도덕주의' 법정에 소환된 피고의 모습이었나봐. 물론 초기에 비평들에서 역시 이 부분은 문제가 되었다더군. 당신의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그 때도 수입이 되니 마니, 어디까지가 삭제되었니 무삭제판이니 하는 말이 있었다니까. 물론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긴 하지. 사실 강한 주제잖아. 그리고 또 당신의 표현수위도 말이지. 어린 의붓딸에 빠진 홀아비 '험버트 험버트' - 당신은 그를 여러형태로 불러, 나는 그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를 때가 가장 좋아-의 사랑과 관능, 그리고 절제와 욕망 사이의 팽팽한 긴장들을 도대체 어느 누가 당신처렴 표현할 수 있겠어. 당신의 문장 한 줄 한 줄을 큰 소리로 읽고 싶을 정도야. 만약 사랑의 대상이 반인륜적이라는 부분을 제체놓고 본다면 당신은 최고의 연애술사야. 선수란 말이지. 거기에 선수들의 허당짓들까지도 짐짓 아닌척 하면서 슬슬 풀어내는 것까지 더하면 당신은 진짜 프로야. 거기에 보는 이들을 좀 가지고 놀기도 하지. 마치 장날의 약장수가 사설을 풀면서 쪼르르 앉아 있는 아이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 처럼 말이지. 인정해야겠군. 나야 말로 당신이란 약장사에 정신줄 놓고 따라가다 해지는 줄 몰랐던 그 꼬맹이라고 말이지.  

물론 당신의 소설에는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의 흥겨움과 구절양장 꼬부랑길을 걷는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야. 당신의 <롤리타>는 말이지...음...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말하자면 험버트만큼이나 지적이지. 소설이 시작하면 당신의 험버트는 이미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죽어있어. 그리고 롤리타- 빌어먹을, 리처드 실러부인이라며...나중에 알았잖아. 당신은 하여간 늘 이런식이지만-도 딴나라사람되어 버린 거지. 당신은 험버트가 남긴 장문의 배심원 증언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최소한 사형은 스스로도 너무 과다하다고 믿는 지적인 구대륙의 이 용열한 백인의 자기변명서말이지. 모르지. 지적이며 상냥하고 예의를 아는 신사였으니 유럽식 자존심으로 진실만을 이야기할지도...당신은 군데 군데 당신이 만든 퍼즐을 풀어갈 조각들을 숨겨놓지. 나는 사실 처음부터 당신이 그런 게임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까치가 날아가며서 떨어뜨린 감처럼 등장하는 험버트와 롤리타 주변 인물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 물론 그렇다고 당신이 떨어뜨려 놓은 모든 흔적들을 다 수렴해서 하나로 꿰지는 못했어. 이게 무슨 범인 밝히는 추리소설도 아니잖아. 흐흐흐  하여간 당신이 복수의 일념으로 퀼티를 만난 것은 잘한 일이야. 당신의 복수장면은 아주 그럴싸했어. 왠지 내게 그 장면을 영화로 만들라면 '뮤지컬' 처럼 해보고 싶더군. 팀버튼 식의 세트나 의상으로 무대설정을 하고 말이지. 조금 시기는 빠르지만 로버트 레드포드의 <위대한 개츠비>같은 분위기로 당신과 롤리타의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퀄티와의 대면장면에서 갑자기 <가위손>이 되버리면 어떻게 될까? 영화는 박살나고 평론가들의 몰매를 맞겠지만 '허...' 하는 바람빠지는 웃음을 만드는데는 공헌을 할꺼야. 험버트와 퀄티의 대결을 역자는 '반사실주의'와 '사실주의'의 대결이라고 해석을 했더라구...당신이 작품 전체를 통해서 소설/반소설 사이의 여러가지 예들을 보여주고 있기때문에 그런 해결의 돌파구로 그 장면을 해석하는 것이 결코 낯설지는 않아. 그래도 당신은 옛날 사람이 되나서 그런지 여전히 실체와의 결별을 선언하지는 않는듯해. 비록 사실주의와의 결별은 선언했겠지만. 요즘 애들은 좀 더 애니메이션적이고 사이버하다구. 당신의 포스트모던한 방식에 영향을 받은 요즘 사람들의 영화는 이미 그런 '자기증명의 과정'조차 불필요하다고 본다구.  

어쨋거나 험버트의 전체주의적 시선만 계속봐서 목이 좀 아프기는해. 왜 그런거 있잖아. 한 쪽 방향으로 목이 돌아가서 뻣뻣해진 거. 시선고정.험버트와 당신의 시선고정이 만든 디스크야.흐흐. 그 시선이 전체주의적이지만 모든 것을 관통시키고 고정시키지 않아서 다행이야. 전지적 주체와  유동성의 주인공이 동인인물이 된다는 것이 흥겹지. 그 사이의 떨림이 재미있었다니까.^^  결국 그런 시선이 결코 압제적일 수 없는 것은 환상이라는 빈공간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설 속에서 험버트는 이런 말을 하지. 

 "내가 미친 듯이 소유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창조해 낸 것이었다. 또 다른 환상적인 롤리타, 아마도 실제보다 더 리얼한 롤리타. 실제의 그녀와 겹치고 둘러싸며 나와 그녀 사이에서 둥둥 떠다니며 의지도 의식도 없는 소녀, 정말 그건 그녀 자신만의 삶이 아니었다."

나는 이 소설의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모두 이 문장과 어떤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선생님, 정말 '소설' 을 잘 쓰신거에요. 정말 '소설'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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