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다녀왔다. 지리산 아래땅. 산청.  

어제 밤은 울렁거리는 위장처럼 바람이 창문을 때렸다. 남자 다섯 명이 중산리 매표소 근처에서 잤다. 시골 노인들이 '차로 한 5분쯤 가면 된다'는 길이었는데 검은색 커튼을 펼쳐놓은 듯 한 산길에서 거의 30분 가까이 걸렸다. 한 낮에 핸드폰 중계로 알게된 wbc경기 결과를 저녁 뉴스로 봤다. sbs 뉴스에서 한 번 보고 mbc에서 또 봤다. 반복되는 뉴스였는데 야구 뉴스만 1시간 10분 가량을 본셈이다. 중계 그림도 거의 비슷하고, 아이템 구성도 거의 비슷하고, 그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도 거의 비슷했지만 마치 대마를 놓친 바둑기사가 복기 하고 다시 복기 하듯이 뉴스를 봤다. 사실 그 시간에 다섯명의 남자가 그 외에 할 마땅한 일도 없었다. 다들 놀음과는 거리가 멀고 술도 약간 정도만 하는 스타일들이어서 맥주 몇 병 사놓고 태어나서 TV 처음 보는 사람들 마냥 화면에 눈을 꼽다가 잠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청년 노숙자들에 대한 PD수첩의 나레이션을 들으며 잠들었다.

새벽 3시에 잠을 깼다. 바람소리때문은 아니다. 한 사람의 숨이 넘어가지 않을까 싶어서다. 동숙한 친구 중에 막내는 아주 아주 심하게 코를 골았다. 숙소가 마치 공사장이 된 듯 했다. 그 친구 말고도 5.1채널로 분산해서 코를 골았다.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나는 왼쪽 귀로 흘러들어가서 오른 쪽 귀로 흘러나오는 코고는 소리들을 취합하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다른 친구 하나가 막내에게 태클을 걸었다.  막내는 옷을 주섬 주섬 챙기더니 밖으로 나갔다. 이 추운 봄날 새벽에 도대체 어딜가려구...라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지리산의 찬 공기를 받고 있을, 우리를 태우고 온 승합차에 들어가겠거니 생각했다. 아침에 안 사실이지만 그 시간에 깨어 있던 사람은 나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다. 모두들 잡고 싶지 않았다고 시레기국에 아침 밥을 넘기며 웃었다.  

나 역시 지리산 토벌대가 다녀간 듯 코를 골던 친구가 나가고 나서야 나는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나도 코를 곤다. ㅋㅋㅋ)

사실 출장 오기 전날 아내와 티격거리고 나왔다. 아이에게는 '응 엄마와 아빠가 생각이 좀달라서'라고 이야기했지만, 똘똘한 예찬이는 이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고 '얼음땡'이 되어버렸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격앙된 목소리가 오고 가니까 아이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아이 앞에서는 소리 지르지 말자고 하면서도 아내와 나는 매번 그말을 지키지는 못한다. 

"나는 그냥 들어가서 누워" 라고 해버리고 어찌 할 바를 몰라하는 예찬이를 오라고 해서 앉고 달래주었다. (이건 내가 하지 않았으면 아내가 했을 것이다.) 아이는 의자에 앉은 내게 폭파묻혀서 마음을 달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안심시켜주었지만 놀란 가슴이 쉽게 가라앉기야 하겠는가? 아이를 앉고 최소한 '아이 앞에서' 라는 원칙에 대해서는 반성했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원망이 풀리지는 않았다. 

 나는 회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회사 사람들이랑 어울렁 더울렁 말도 안되는 이야기하고 시간 때우는 것보다는 내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사회생활이 어쩌니,승진이 어쩌니, 이런 말들은 내 귀구멍 10리 밖에서도 먹히지 않는 말이다. 나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배철수 음악캠프와 이루마의 세상의 모든 음악 1부를 재핑하면서 퇴근길에 오른다. 7시정도에는 집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말'은 많으나 '소통'이 없는 회사사람들과는 한 달에 한 두번 회식자리나 참가한다. 부산에 절친한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게 내가 한달에 술자리 하는 총횟수일 때가 많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어떤 젊은 여자동료는 나를 보고 '아메리칸스타일'이라고 했다. 나는 구대륙이 좋은데 라며 '유러피안스타일'로 바꾸어 달라고 농을 했다. 개인적이고,사생활을 중요시 여기고,가정을 중심에 놓는 태도를 약간은 부산 처녀가 비꼰것이다.  

출장 전날 일이다. 나는 그 날도 제때 퇴근을 했다. 집에 도착했는데 아내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식으로 짜증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러려니 하고 아이와 노는 동안 아내는 식사를 준비했다. 예찬이는 그 동안 엄마와 아빠를 오고가며 부쩍 늘어난 반항아 기질을 보여주었다. 요즘 하는 말들의 80&는 '싫어. 하지 않을거야'이다. 일상적으로 매번 하는 이닦기,옷갈아 입기,밥먹기 등에도 한 참이 걸린다. 아내는 그날 결국 아이에게 짜증을 확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슬쩍 화가 나기 시작했다. 밥먹는 동안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아이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를 쫓아가서 또 찝적거리고....영 심란했다. 개수대에는 설겆이거리가 작은 산만큼 쌓여있었다. 결국 아내에게 '내가 설겆이할께' 라면서 그냥 들어가 누워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이미 나 역시 평온한 상태에서 한 말은 아니었다. 설겆이를 하는데..이게 또 끝이 없더라...생각해보니 어제도 내가 산더미 같은 설겆이를 했다. 그리고 대충 좀 쉬자는데도 아내에 끌려 온 집안을 걸레질하고,또 빨래더미들 널고...갑자기 설겆이 하다고 화가 확 나버렸다. '나도 회사에서 하루 종일 일했다구....땡하고 집에 들어와서 아이하고 놀고...또 설겆이 하고....아이 잘 때까지 또 놀고...."  '...씨...나는 언제 쉬냐구" "도대체 내가 뭘? 내가 집안 일을 안하나, 맨날 술먹고 늦게 들어오길 하나. 아...왜? 난 언제 쉬어.' 결국 설겆이 하면서 입 밖으로 '씨...' '어휴....제길' 하는 소리가 계속 나왔다. 한참 듣던 아내는 결국 방에서 "누가 그거 하래? 그냥 쉬어. 혼자 책보고 음악 듣고 놀아. 누가 뭐래?" 이렇게 나온거다. 나는 억울했다. 난 그날 들어와서 단 5분 동안도 아무일도 하지않고 있었던 적이 없다.  "내가 언제 책보고 음악듣는다고 그랬냐? "그리고 내가 언제 책보고 음악들었냐? " 결국 엄마 방에 왔다 갔다 하던 아이에게 "예찬이 너, 엄마한테 들어가미자.엄마 쉬셔야 된다잖아. 너 들어가지 말라구 했지" 이러쿵 저러쿵....

결국 이러다가 대개 부부들이 그렇듯이 확전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은 사실 아내의 일과 남편의 일이 따로 있다고 확실히 구분해 놓는 상황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의외로 그런 부부들도 꽤많다. 선배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한다고 늘상 입에 달고 다닌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건  여자들 역시 스스로 그런 역할 구도를 마지 못해서든,어떤형태로든 받아들인다. 그건 '아내의 일'이라는 것을 '아내'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적 특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부산의 남자들이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하다고 알려진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속성은 남자들에게만 한정되지도 않는다.이런 분위기에서 신혼 초에 아내가 다녔던 몇 몇 학원들의 모임에서  아내가'부러운 사람이거나 이상한 외지인' 취급을 받았던 것도 굳이 별난 경험은 아니다. 내가 '아메리칸스타일'로 불리운 것 처럼.  

이렇게 말하면 다들 자기 경험에 비추어 ' 넌 정말 많이 하는거야.'(그래 나도 안다) 당신 아내가 너무 많이 요구하는 거야'(나도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라고 한다. 대개그런 경우에 여자들은 '우리 남편은...꼼짝을 안해요. 그거에 비하면..' 이런 예를 든다. 결국 이건  아무런 유의미한 값을 얻을 수 없는 예이다. 나는 가끔 비겁하게 내가 싫어하는 동네 아저씨들을 예로 들며 나의 도움에 만족하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면 아내는 '자기가 욕하던 이 동네아저씨들의 가부장적 방식에 비교하고 싶니?' 라고 한방에 내가 든 예의 취약지점을 파고 든다.   

 나는 내가 집안 일과 육아에 적극적이고 상대적으로 많이 한다고 생각하고, 아내는 '그럼 나는? ' '그건 기본아니야' 라고 생각한다. 어쨋거나 출장 가기 전날 성질 부린 건 내가 잘못한 것 같다. 물론 그날 바로 풀기는 했지만...여러모르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도 있었을 텐데...괜히 '욱'한건 내 잘못이다. 부부 사이에 '욱'해가지고 풀리는 건 하나도 없는데....그렇다고 모든 문제들이 대화와 타협으로 원만히 잘 풀리는 것만도 아니다. 참나...어렵네. 이제 곧 둘째가 나오면 육체적으로 더 힘들테고 이런 문제들은 반복적으로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발생할 수도 있는데... 시댁에서 애기 다 봐주고 툭하면 친정엄마가 도와주고 하는 상황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 힘들어...내가 결혼하면 이럴 줄 알았다니까...알고도 그러니 그게 인생이고, 아래 바닥없는게 뻔한데도 빠지는 게 운명인거지.. 인생 니 따위가 그렇지 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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