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정명훈 사건'에 관심이 간다. 어젯밤 기사를 봤다.먼저 내가 음악가로서 '정명훈'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밝힌다. 음악 시장에서 정명훈은 유명한 지휘자들 다수 중에 한 명이고 그들과 비교해서 더 탁월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가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 유럽음악계에서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포디움을 장악할만한 인지도를 확보하진 못했다. 유럽 음악계의 보수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보수적 음악팬이나 음반 관계자들은 또한 실력면에서도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이름난 지휘자나 오케스트라라 할지라도 허튼 공연 한 방이면 공연 후 야유나 각종 미디어의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언젠가 정명훈도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되길 바라기는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춘추전국시대의 제후와 책사들만큼이나 뛰어난 음악가들 사이에서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를 제외하고 '정명훈' 을 애써 찾아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결국 그 정도 선에서 따뜻한 시선 정도를 보내줄 수 있을 뿐이다.   

카잘스는 스스로 음악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노동자라고 말했다. 그는 클래식이 귀족층의 음악이었지만 꼭 그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신념이 있었다. 카탈루냐 지방에서 음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나 동네 악사들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를 꾸린 적도 있다. 그에게 음악은 상성부만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곳에서 움직여서 온전한 대위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는 반파시스트주의자였고 프랑코정권에 끝까지 저항했다. 프랑코 정권 역시 그가 눈엣가시였지만 이미 이뤄놓은 명성때문에 함부로 처리하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서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그의 음악과 마음은 늘 고향땅인 카탈루냐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제 이런 생각을 가진 음악가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더우기 클래식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체계가 고비용구조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클래식음악가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 환경아래에서 성장한다. 정치적으로 둔감한 것이 오히려 그들이 하는 예술에 더 깊이 복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음악가뿐만이 아니다. 음악가가 전문가의 영역으로 들어서면서 음악이라는 본질이 추구하는 통합적인 철학가치는 잊혀진다. 역사적으로는 전문가-부르주아지의 결합이 만들어낸 타협이다. 국내 음악가들은 주어진 악보을 완벽하게 연주해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걸 잘해내면 오케스트라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거나 운이 좋으면 어느 대학의 음악교수 간판을 단다. 그것이 그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정치적'이거나 '더 철학적'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들이 머리에 이고 있는 '고전 음악'이라는 것은 분명히 '미학'의 대상이지만 그 아우라의 커튼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일뿐 '음악'과 '음악가'는 분명히 다른 존재이다. 즉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이 달은 아니다. 대개 사람들이 분노할 때는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이 마치 스스로 달의 사제인양 행세할 때다. 그럴 때는 겉으로 우아한 척 슬쩍 미소를 지어주고 속으로 '병신 분화구 밑창 떨어지는 꼴갑을 떨고 있네'라고 하면 된다. 베토벤의 위대함과 바흐의 화성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음대 교수가 부산 인디고 서원에서 독서토론하는 고등학생보다 더 진지한 사회,정치적 질문을 던지고 살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주 슬픈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사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구체적 실천을 보여주는 진정한 예술가들은 대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목수정의 글을 읽었다. 그가 직접 경험한 분노의 진폭이 많이 느껴진다. 그러나 결코 충격적이지는 않다. 그녀는 왜 그렇게 충격적이었을까? 첫번째는 앞서 말한 착각때문이다.  

 "3월 20일,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러 샤틀레 극장에 갔다.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그 콘서트는 완벽하게 우리를 고무시켰다. 나와, 함께 간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당원은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정신이 맑지 않을 수 없고, 정의와 진리를 담지 않을 수 없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런 단순한 착각이 어디있단 말인가? 똘방똘방한 사람들마저 예술의 마술에 걸리면 순간적인 이성이 마비되는 가 보다. 저건 착각이다. 카라얀은 나치에 줄을 댓고 푸르트뱅글러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은 아름답지 않았을까? 히틀러는 베토벤과 바그너의 열혈매니아였다. 베토벤의 위대한 음악을 감상할 능력을 갖추었기때문에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을까? 

목수정은 프랑스 공공노조도 흔쾌히,오페라단원들도 흔쾌히 해주는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당연하다. 그들이야 말로 같이 비맞는 처지의 평단원들이다. 결국 '노동자에게 국가는 없다'는 거대한 이름으로 연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명훈은 그렇지 않다. 그는 프리랜서 지휘자이고 오케스트라 내에서 음악적 권한은 있겠으나 오케스트라의 주인은 아니다. 진짜 오케스트라의 주인들인 음악가들이 당연히 한국에서 설움받는 같은 노동자이자 이름 잃은 주인들에게 친화성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목수정은 프랑스 공연노조와 정명훈을 비교하면서 낯선 이방인도 지지해주는데 '같은 한국인 지휘자가 어떻게'를 비교 배치한다. 그런데 진보의 연대기준에 '국적'과 '혈연'이 중심이 된 적이 있었는가? '국제적 연대'의 가치를  모를 이 없는 목수정은 감정적으로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더욱'이라는 '국가적 연대'의 끈에 스스로 옮아든다.   

 특히 그를 경악케한 것은 정명훈의 촛불에 대한 인식인 듯 하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 충격적인가? 보수신문에 매일 나오는 반응이고, 옆에 있는 직장 동료들의 반응이기도 한 것 아닌가? 정명훈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그가 '촛불' 문제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상당히 빈약하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과연 한국인이 모두 '촛불'에 지지를 보낸 적이 있던가? '촛불'은 정당하고 올바른 일이었으나 '모든' 한국인이 촛불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적 물질성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정명훈이 거기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기대하는 것도 또 그와 함께 촛불에 동의를 기대하는 것도 지나친 의도는 아니었을까? 

또한 정명훈을 찾아가고 서명을 요구하는 방식도 의도의 순수성이 지나쳐서 절차적 정당성의 흠집을 잡힐 만 하다. 이건 문화적,또는 산업적 관례의 차원이기도 해보인다. 갑자기 찾아가서 운동에 서명 받는 방식은 다분히 순순한 한국적 발상이다. 물론 정명훈의 인식수준에서는 제대로된 절차를 따랐어도 서명을 해 줄일이 없었을 듯 하지만 말이다. 정명훈도 나름대로 공인이고 셀러브레이티 아닌가?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부담스러운 판국에 '우르르 싸인해주세요'는 거절의 빌미를 대기에도 아주 좋고 또한 상식적이다.  

  "기왕 온 김에 단 3분이라도 그에게 우리의 육성으로 절박한 현실을 전하고 그의 예술가적 양심에 호소하고 싶었기에, 우린 그에게 전달할 문서를 들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호텔의 한 직원이 우리에게 누구와 약속이 있냐고 묻고, 그렇지 않다면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돈 많은 현대의 귀족들의 충실한 심복 같은 그들은 물리적으로 우리를 쫓아낼 판이었다. 실랑이 끝에 겨우 정명훈에게 남길 메시지와 한글로 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문서를 남기면 호텔측에서 그 문서를 전달하기로 하고, 글을 거의 다 쓸 무렵, 마침 그들의 긴 만찬이 끝이 났다. 정명훈은 우릴 발견하자마자 다가왔다"
 

대충 읽어보면 어떤 의미의 서명인지에 대해  정명훈에게 사전 설명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이 쪽에서는 실랑이 끝에 겨우 사건 메시지와 사건 개요만을 전달했다. 정명훈은 별로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일이었을테고 이제 대충 내용을 파악하고 그의 정치적 입장을 밝힌다. 그 결과는 앞서 말했듯이 그의 '정치적 보수성'과 '인식의 협착성' 정도만 확인한 것 뿐이다.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음악가로, 모국의 정권과 가까이 지내서 손해 볼 것 없는 지휘자로,(사이가 불편해도 딱히 손해볼 건 없을것 같은데...모르지 보험정도로 생각할 수는 있을테니) 그런데 이런 음악가나 전문가들이 정명훈에만 해당할까? 사실 정명훈이라는 개인의 정치적 생각을 읽어본 정도 외엔 그다지 큰 감흥이 없다.그의 부박함에 동의하지도 박수를 보내지도 않는다. 감흥이라면 목수정이 생각보다 상당히 순수하고 열정적이고,또 감상적이라는 정도다. 목수정이 그저 정명훈의 정치적 생각을 파악하는 정도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같다. 그런데 개인적 모욕감까지 겹쳐지다 보니...좀 더 감정적으로 격앙된 된 듯 하다. 

 이런 방식은 진중권의 싸가지 없음에 대해 최근에 다른 팀의 보수적인 부장이 구구절절 해대던 방식과 똑같다. 진중권이 전화를 아주 싸가지 없이 받았단다.."어떻게 전화번호 알았어요. 거기가 뭐하는덴데요...나 바빠요. 뚝...띠띠띠' 전화를 한 당사자는 그나마 그동안 진중권에 우호적인 편이었는데 몹시 불쾌해했다.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해지고 있으니 옆에 있던 부장이라는 양반이 그랬단다. "거 봐...너네들 진보라는 애들이 열광하는 자의 수준이 그정도라니까...기본적으로 인간도 덜 된 것들이잖아"  전화를 건 이는 그 부장도 싫고 진중권도 싫었다.  "아...짜증나.둘다 짜증나.왜 나한테 그러냐구...진짜 인간 무시하네...으윽"

굳이 정명훈에게 뭔가를 얻어야 할 필요는 없는것 아닌가?  

어쨋거나 이 글을 목적은 달성되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노이즈마케팅으로 인해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국립 오페라단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서민적 웃음을 선사하고....이런 이들이 그들이 만드는 '작품' 처럼 한결 같을까? 그것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이런 순진한 생각은 언제쯤 사라질까?  사실 나도 '예술전문가'들 보다 '진짜 예술가'들이 그립다. 그들의 굳이 정치적이고자 하지 않지만 그런 비정치적인 예술의 모험성과 진취성,혁명성이 현실의 맥락에서 공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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