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블루스'는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음악 장르로서의 '블루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무도회장에서 땀을 식힐 때 나오는 무드음악 '블루스'이다. 사실 후자는 음악적으로 보자면 무차별 초월장르다. '도라지 위스키' 가 무언지 궁금하게 만드는 '낭만에 대하여'가 될 수도, 봄밤 고양이의 앞발짓 같은 색소폰 소리로 기억에 남을 '부주의한 속삭임'이 될 수도 있다. 선곡은 그 때 그 때 나이트클럽의 DJ의 기분이나 무도회장 사장님의 취향에 맞춰 결정될 것이다. 또는 고객들의 분위기에 맞춰 그들을 매끄럽게 돌 수 있게 하는,그래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하얀 면사포로 살짝 가리울 수 있는 기능성 음악이 바로 무도회장 '블루스'의 특징이다.  

앞서 말한 장르로서의 '블루스'가 고향에서 팔려온 흑인 노예들의 애환과 욕망을 대변한다면 후자는 압축된 한국형 자본주의의 서민적인 욕망 배출구인셈이다. 검붉은 색 조명과 휘휘 도는 네온들-마치 따라자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의 상징인양- 속에 있는 초라한 개인은 그저 아랫도리의 욕망에 집중하기 위해 느린템포에 발을 얹고 슬로우 슬로우 퀵퀵을 돈다. '아...당신은 못말리는 땡벌 땡벌!' 

전후 흑인들의 블루스를 이야기 할 때 'maxwell street' 를 뺀다면 중국집 메뉴에서 '자장면'을 발견하지 못한 당혹감정도로 낯선 것이다. 왼쪽에 있는 로버트 나이트호크의 파스텔톤 자켓 하단에도 그 거리의 이름이 발견된다. Live on Maxwell Street 1964. 로버트 나이트호크라는 블루스 뮤지션이 1964년 시카고의 맥스웰가에서 라이브로 녹음한 음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maxwell street는 뭐하던 곳인가?  다행히 유투브에 좋은 동영상이 있다.  

 

그렇다. 맥스웰가는 시카고에 있는 주말시장이다.'선데이 마켓' 이라고 하나? 하여간 우리말로는 '장터'라고 한다. 맥스웰 장터에는 우리 시골 장터처럼 온갖것들이 다 나와있었다. 물건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말이다. 유명한 블루스연주자들은 이 거리에서 즉석 연주를 들려준다. 이 곳은 나름대로 경쟁의 장이기도 했다. 관객들은 당연히 훨씬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는 사람들 앞에서 몸을 흔들었을테니까 말이다. 자유로운 '소통의 장'이자 '경쟁의 장'이다. 실제로 시카고의 음악비즈니스계 사람들은 이 곳에서 실력있는 뮤지션들을 픽업해서 전국구로 만들었다.  

영화 <캐딜락 레코드>의 주인공인 레오나드 체스(에드리안 브로디 역)가 만든 레코드사인 '체스 레코드'는 당대 시카고 블루스의 역사를 만들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맥스웰 스트리트와 관련을 맺었다. 최소한 그들이 체스레이블에 얹히기 전까지는-물론 그 이후에도- 거의 모두 맥스웰 스트리트를 밟아보았다고 해도 지나친 상상은 아닐 것이다. 체스레코드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또 시카고 블루스의 상징처럼 불리우는 '무디 워터스'(영화 포스터에서는 아래에 있는 제프리 라이트이다. 왼쪽 상단에 있는 여인네는 체스의 여왕이라고 불리워졌던 'At last'의 에타제임스이다. 이 영화에서는 노래잘하고 예쁜 비욘세가 이 역을 맡았다.) 이다.  

시카고 블루스는 전후 1940년대 중후반부터 자리를 잡았던 블루스 스타일 중 하나이다. 블루스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도시이고 시절이었다. 왜냐하면 이 때 부터 흔히 'urban blues'라고 하는 것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듣는 BB KING의 '소프트 블루스'-무디 워터스 '하드블루스'에 비하면- 나 6,7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랑받는 에릭 클립튼 류의 블루스락등이 이때부터 블루스계에 자리잡게 된다. 그 전 까지는 쉽게 말하면 통기타나 소규모의 장치로 블루스를 연주했다. 에릭 클립튼이 트리뷰트 음반을 내기도 했던 로버트 존슨 시대다. 전후 미시시피 델타지역에 있던 흑인들은 일자리를 위해 강을 타고 시카고에 도착한다. 시카고 블루스의 이행기라고 할수 있는 시기에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는 빅 빌브룬지와 팀파레드이다.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있고 또 돈이 있는 곳에 대중 음악도 있다. 이때 부터 뛰어난 뮤지션들이 시카고에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과거 단출했던 블루스에 전기 장치를 대폭 도입한다. 드럼과 베이스, 하모니카(이건 통기타시대때 부터 블루스의 상징이다.) 등이 그들의 음악에 가세하고 이것은 현재에도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로버트 나이트호크의 이 음반은 1964년에 맥스웰가에서 녹음된 것이다. 이미 그 때는 흑인 정통파 블루스맨들은 힘을 잃고 가라앉고 있는 시점이었다. 영국의 젊은 락커들이 블루스에 심취했으며 또한 댄스리듬이 가미된 리듬 앤 블루스가 블루스를 대체하고 있었다. 그나마 시카고 블루스에서 조금 멜로디 라인이 풍부했도 유연했던 BB KING은 백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맥스웰가의 라이브 녹음에서 나이트 호크는 전설의 슬라이드 기타를 들려준다. 흔히 '보틀넥'이라고 하는 방식인데, 오른손 잡이의 경우 왼손가락에 금속으로된 손가락 연통을 하나 씌우고 지판위를 오르내리는 거다. 락 팬들로부터 또한 블루스 팬들로 부터 가장 사랑받는 기타리스트 중에 한 명인 '올맨 브라더스 밴드' 의 듀언 올맨이 바로 슬라이드 기타로 젊은 시절 에릭 크립튼을 매료시켰다. 프로젝트 그룹으로 끝나고만 '데릭 앤더 도미노즈'에서 '레일라'가 바로 그 둘의 만남이 음악 역사에 남긴 선물이다. (듀언 올맨은 아깝게 그 앨범 이후 몇 년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나이트 호크는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듀언 올맨의 한참 선배쯤 되는 사람이다. 이 양반은 동가숙서가식하는 블루스맨의 영혼을 그대로 따랐는지 평생 제대로된 자신의 음반 한 장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에 만날 수 있는 음반은 사후 정리된 음반들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것이 가장 블루스다운 방식이기도 하다.   

블루스는 장터의 음악이다. 최대한 많이 현대식으로 바꾸어도 클럽의 음악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따라하고 야유하고 흥을 넣어가면서 연주하고 듣는게 바로 블루스 음악이다. 블루스의 모태가 그런 노동요의 기원에서 나왔기때문이다. 나이트 호크의 음반은 그런 면에서 정말 '살아 있는 블루스'를 들려준다. 음반 자켓 처럼 저렇게 거리 한 구석에 죽치고 앉아서 연주를 하고 그냥 오고가는 장터손님들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듣는거다. 그리고  한마디씩 후렴구를 따라하고 박수를 치고 ..우우우 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그의 대표곡인  Cheating and lying blues에서 부터 나이트호크는 살짝 살짝 불을 지피는 노련한 슬라이드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다가 첫 간주 후반부 부터 리듬감이 풍부한 슬라이드의 묘미를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더 진화된 블루스 락에서 듣는 슬라이드 기타보다는 어쿠스틱한 느낌이 강하다. 로버트 나이트호크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사이의 이행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3번째 곡인 the time has come는 처음부터 구경거리보러 온 잔칫군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장 라이브라고 녹음의 정밀도는 그다지 높지 않고 보컬이 특정 데시벨 부분에서 약간씩 깨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느린 템포로 유장하게 노래를 하던 로버트 나이크호크는 중반부에서 공격적인 리프와 애드립으로 묘한 대조를 이루어낸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반복되는 느림으로 돌아온다. 흔히 말하는 12바 블루스의 전형적인 패턴으로 말이다. honey hush는 홍키통키한 리듬이다. 이쯤 되면 거리의 관객들은 이미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한 코드의 단순한 멜로디..그리고 반복. 템포는 알듯 말듯 조금씩 빨라져간다. 그리고 선창-후창....곡의 템포는 다시 느려지며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앞의 곡과 뒤의 곡으로 넘어가는 것에 아무런 어색함이 없다. 마치 케이크를 양쪽으로 나누어 놓은 듯 보인다. 나는 가끔 이럴 때 트로트를 떠올린다. 블루스와 트로트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코드 진행이 좀 한정적이다. 그렇다보니 유사한 느낌을 주는 곡들이 많다. 왜 있지 않는가...'밤비 내리는 명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짠짜라 짜라짜라 짜라 짠짠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가끔 트로트를 혼자 웅얼거리다 보면 A라는 곡에서 시작했는데 C로 끝난다. 5번째곡 I need your love so에서는 거리의 자존심을 세워줄 만한 멋진 슬라이드 기타 후주를 들을 수 있다. 이 음반의 12번째 곡은 객원 보컬리스트가 참여한다. 마치 팔세토 창법의 블루스를 듣는 듯 옹골차게 깍아 지르는 보컬의 주인공은 JB 르누아르이다.  마틴 스콜세지 기획한 '블루스' 시리즈에서 빔 벤더슨 감독이 < SOUL OF THE MAN>에서 위대한 블루스 맨으로 추모한  3명의 블루스 맨으로 등장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르느와르의 보컬에 맞서서 나이트 호크의 기타 소리 다른 곡에서 보다 더 날카로와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모니카 연주. 이 셋의 어울임이 가히 최강이다. 마지막곡은 그냥 그림을 그려보는게 더 좋을 듯 싶다. 연주곡이다. 살짝 눈을 감는다. 장터 사람들이 음악 속에서 덩실 덩실 제각가의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음악은 가끔 아편을 필요로 하기도 하는데 또 스스로 아편이 되기도 한다. 이 음반 마지막에는 13분 가량의 인터뷰가 있다. 그가 살짝 살짝 연주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철지난 라디오방송을 듣는 듯 반갑다.

유투브에 로버트 나이트호크의 동영상이 있어서 아주 반갑게 올린다.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장면인 듯하다.

 

 영화<블루스 브라더스>에는 맥스웰거리를 추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존 리 후커가 그 당시를 추억하는 듯 boom boom boom을 부르는 바로 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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