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아버지 1937~1974
조동환.조해준 지음 / 새만화책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은 가끔 거울을 볼 때 묘한 이물감이 든다. 거울 속에 '내'가 아닌 중년으로 향하고 있는 '전-중년'의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때마다 아랫배를 슬쩍 쓸어본다. 익숙해져 가는 부피감과 무게감.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물체가 담고 있는 가속도에 부딪힌 듯 가슴이 뻑뻑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봐도 여전히 '그' 가 낯설다. 아무래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늙은 것 같다. 혼자서 거울 속에 비친 사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많이 늙었구나. 흐흐" 미용실에 앉아 있는 30분이 귀찮아서 계속 기르고 있는 머리칼은 이제 은빛이 제법 많이 보인다. 지저분하게 구렛나루쪽으로 내려온 흰머리칼들을 빙빙 돌려본다. 아내는 빨리 안씻고 뭐하냐고 지청구다.  

그래 "씻어야지. 그리고 또 출근하고.."  어푸 어푸 어푸.... 

소년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버지가 들어선다. 아무리 스스로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현실의 감각적 경험은 내게 '아버지'의 이름을 더 요구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된다는 건 좋은 일이면서도  슬픈, 모순적인 일이다. 내 머리칼이 하얗게 변하는 것 만큼 아이는 새로운 세계의 언어를 하나씩 배운다. 이제 아이와 함께 '대화'라는 것을 제법 길게 할 수 있다. 내가 요즘 제일 궁금한 것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어울려 생활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매일 저녁 퇴근하면 가장 먼저 아이에게 "오늘 어린이 집에서 뭐하고 놀았어?" 하고 묻는다. 아이는 가끔 길게 설명해줄 때도 있고 아닐때도 있다. 이미 아이의 세계에는 내가 침범하지 못하는 그의 세계가 생긴 거다.  

아이가 생겨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 시간들을 연역적으로 재구성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사진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온전한 기억에 남아 있는 최초의 시간은 내다섯살 즈음이다. 수동펌프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달셋집에서 아버지와 엄마와 살던 시간. 동생을 낳으러 엄마가 병원에 가고 할머니와 기다렸던 때가 아주 희미하게 기억난다. 그 이전의 시간은 내 기억 속에는 없다. 그건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시간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나는 아이가 처음 걸었을 때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말 못하는 아이가 심하게 아팠을 때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사는 모습도 사람도 다르지만 세대를 넘나들며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 나는 아이를 통해서 내 잊혀진 시간의 조각을 채워넣는다. 그 때마다 나는 왠지 내 삶이 어떤 형태로든 완전성을 갖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생각은 이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삶까지 이어진다. 그 분들이 20대였을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어떤 고민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을까? 

<놀라운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들' 의 지난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아버지인 조동환 선생이 막내 아들인 화가 조해준의 도움을 받아 복원한 지난 시간의 이야기이다.(사회학자 조희연교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일제 시대 징용간 아버지를 따라 북해도에 간 이야기, 그 곳에서 학교 생활, 아버지의 죽음, 부산에서 주경야독 하던 시절의 이야기, 교직 생활시의 에피소드, 그 외에 시골에서 살면서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더 이야기들이 한 컷의 만화 속에 꾸며진다. 그림 한 컷은 가끔 민화가 되기도 하고 사진이 되기도 한다. 투시도법을 이용하여 설계도가 될 때도 있고 영화의 스토리보드 그림판이 되기도 한다. 이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겪었던 삶의 한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이 직면했던 역사의 소용돌이와 그것을 뚫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된다. 일단 그들에 비해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저 고비들에서 쓰러지지 않고 살아내었는가 하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그 시절을 통과했다고 모두 영웅이고 훈장을 받아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개인을 뒤흔들어 놓고도 남는 광풍을 견디어 내었다는 것에 작은 경의를 표하는것이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그들이 역사의 마도로스를 자임하면서 이리 저리로 키를 옮겨대던 권력자들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거대한 흐름을 피하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서 가족의 안위와 생의 희망을 위해 주체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런 민초들의 모습은 결코 '나라 이 꼴로 만든 노인네들의 회고담'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조동환 선생의 이야기에서 나는 북해도 시절과 부산 시절 이야기가 마음을 끈다. 전자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고 후자는 청년시절의 기억이다. 아무래도 북해도 시절은 우리 역사의 아픔에 대한 선험적 정보들을 가지고 있기 대문에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아이 엄마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몇 날 며칠을 기차를 타고 또 배로 갈아타고 그러면서 아버지를 찾아 북해도까지 간다. 지금처럼 편안한 여행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온가족이 함께 산다는 희망을 안고 그 탄광마을까지 도착하는 여정은 요즘 같으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다큐멘터리 주제가 될 법도 하다. 탄광마을에 도착한 아들은 마을 공동목욕탕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목욕을 한다. 그 따뜻한 온기를 70이 넘은 아들은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해도에서 돌아가시고 만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골을 안고 아들은 다시 그 먼길을 돌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런 이야기를 현재에 살고 우리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어디 드라마같은 곳에서 나오는 이야기 아니던가... 한 사람의 삶을 뒤적이면 사실 그 안에는 TV속 드라마보다 더 많은 드라마들이 숨어 있다. 부산 시절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것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지명이 수시로 나오기 때문이다. 조동환 선생은 내가 한 때 자취를 했던 부산 교대(아마 위치는 좀 옮겨진 듯 하다) 미술과를 나오셨다. 밤에 미군 부대 하역일을 도왔기 때문에 초량 근처의 산복도로쯤에 산 것 같다. 조동환선생의 기억에 의하면 거기서 전철을 타고 동래까지 오고 갔단다. 지금은 도심으로 변한 곳이지만 그 때는 온통 산이고 논이었을 것이다. 부산 시절 조동환 선생의 고생기를 보면 어른들이 '우리 때 어떻게 공부했는지 아니' 라는 말이 그냥 빈말은 아니다. 지금 아이들은 교육에 대한 필요성보다는 '사교육 과잉'의 왜곡된 교육열에 바짝 타들어가고 있지만 말이다.이런 사교육 시스템에 좀 혁명적으로 바뀌어서 현재의 아이들이 "우리 땐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아?' 라고 그 후세들에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놀라운 아버지>를 보고 나면 누구나 자신의 가족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내 아버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자주 해주시는 편이었다. 내가 첫사랑에 질질거리고 있을 때 동네 놀이터에서 아버지의 첫사랑 실패 경험을 이야기 해주시기도 했다. 가정형편상 -아마 그 아주머니는 좀 사는 집이었나 보다- 연애질은 사치라고 생각한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끊었나 보다. 물론 마음은 아팠겠지만 일단 가족들과의 생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당신의 작은 이야기들이 꽤 있다. 내가 아쉬운 것은 이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매번 마음만 정리해야지 정리해야지 하면서 귀찮음을 핑계로 늘 다음을 외친다. 올해 아버지는 고희다. 더 늦기 전에 그 분의 삶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하고 기록에 남기고 싶다. 아들로서 그 정도는 해드리고 싶다. 나도 궁금하다 어떤 이야기들이 더 나올지...그래서 <놀라운 아버지> 아닌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잘 모르는 것이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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