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은 내게 큰 어른은 아니다. 나는 그분이 과거에 훌륭한 역할을 많이 하셨다는 것을 안다. 특히 종교 외에는 다른 사회적 자율 공간이 없을 때 그분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명동성당을 마지막 피난처로 피에 굶주린 인간 사냥꾼들을 피해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그들을 맞고 지켜주던 분이 바로 그분이다. 87년 당시 화면에 나오는 명동성당 농성자들의 모습은 이제 잊을 수 없는 영상의 자리를 차지한다.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상징적 공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추기경과 교구 신부님들 덕분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부터 성당질을 한 바람구두가 귀끄트머리 잡혀서 중부서나  남대문 경찰서에서 머리통 맞지 않은 것도 다 그분들 때문이다. 

그런 분이 이제 그의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종교인에게도 명복이란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만 적절한 말이 안떠오르니 '명복을 빕니다.'라고 쓴다. 

 선한 노인 한 분이 이제 그의 주인에게 돌아간 것이다.  

내가 그 분을 큰 어른이라 생각치 않는 것은 내가 특별히 종교적 애착이 강하지 않기도 하고, 내게 또 다른 큰 어른들이 있을 수도 있어서 왠지 그런 분들께 배신때리는 것 같고 그래서다. 물론 어른이 한 분일 필요도 없고 많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내가 존경하는 분들에 비해 그 분은 너무 비세속적으로 고결한 삶을 사신 것 같아서 약간 질투도 나고 그렇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투정같지만 사실 그렇다.  하기야 그 분의 전체적 삶이 존경받을 만한 것이라면 몇 가지 불만 정도야 그리 중요한 것이겠는가.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고 뭐 그렇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년의 행보들은 사실 큰 어른으로서 나의 기대에 딱 맞아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분이 별볼일 없는 노인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조중동은 그 큰 어른의 말을 교묘하게 절합하여 철딱서니 없는 좌파 아이들을 훈계하는데 자주 이용했다. 물론 나도 안다. 조중동이 나쁜 놈들이고 그 넘들의 주구장창한 방식이란거. (내가 왜 모르겠는가? 나 그래도 신방과 나온 놈이야. 김혜수 버전이다.) 물론 어여쁜 건 하나 있다. 조중동으로 모든 문제를 다 밀어버리면 되는 방식. 김수환 추기경의 말년의 문제들은 일부 욜라 싸가지 없는 좌파들에게서는 '노인네 드디어 .." 뒷말은 차마 안하겠다. 나는 윗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말하는 왕싸가지는 아니다. 내 버전은 이정도였다. "이제 그만 원로와의 인터뷰같은 것들은 좀 쉬시는게 어떨까?" 정도다. 내게는 그 분이 유도심문이나 적당한 미끼에 걸려서 불필요한 말들의 홍수속에 스스로 들어가시는 것 같았다. 원하는 이 없는 지청구를 남발하시는 것보다는 허명인 원로 자리를 내놓으시고  조용히 자연인으로 계시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늘 아쉬웠다. 

 이제 그런 아쉬움마저 뒤로 하고 그를 돌보시는 분께로 갔다. 이제 그의 주인께 가까이 가서 핍박받는 이들의 한숨, 고개 숙인자들의 눈물, 내몰린 자들의 분노, 갈 곳 없는 이들의 좌절을 잘 이야기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이 곳을 위해 더 많은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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