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기운이 있는지 팔다리가 아프다. 푹 잠들었으면 좋으련만 요즘은 새벽에 깨면 몇 시간동안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오늘도 칭얼 거리는 아이 소리에 깨었다. 다시 잠을 시도하려고 뒤척거리다 결국 포기했다. 나와서 시간을 보니 새벽 2시 30분... 목도 조금 부었고 몸살기운도 여전하다. 잠을 자야하는데... 

낮에 회사는 자발적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외딴 곳으로의 파견을 지원하라고 독려했다. 자발적인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강요하면서...그 말을 옮긴 이들이 부장,차장하는 좋을 때는 다들 좋았던 '우리가 남이가 하던' 선배들이다. 사람들은 늘상 그럴싸한 말로 자신의 이기를 덮으며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해서라도 일신의 안위와 권력자의 하회같은 은혜만을 기대한다.  

파견지는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못갈 것도 없다. 그런데 그곳에 혼자 상주해야 한다. 다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선택을 하든 명령에 의해서 가든 곤란하긴 매한가지다. 더 큰 고민은 가서 하는 일이 기존의 업무와 완전히 다른 일이다. 회의 시간에 다들 땅만 바라봤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자발적으로 나오지 않으면....아니 꼭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경우라면 몇 년간 기러기를 할 수 밖에 없다. 나같은 경우라면 함께 이사를 가는 방법... 그렇다고 회사에서는 별다른 지원도 없다. 전세금 대출같은 것은 턱도 없을 것이다. 영역을 넓히기 위해 그냥 맨땅에 사무실 하나 만드는 것 뿐이니. 따로 추가 경비가 나오지도 않는다. 혼자 갈 경우 두 집 살림하는 셈이다 보니 비용도 아마 더 들겠지...밥을 해먹던가 아님 사먹어야 할 텐데. 

와이프는 대략 2년 정도 이후에는 거기서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나 역시 작은 동네에서 사는 것에는 불만이 없다. 어차피 고향도 없는 인간이니 여기 저기 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게 문제는 '상이한 업무영역'이다. 현재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중이다. 내년 6월이 되면 둘째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아이의 태명은 '보리' 다. 우리가 좋아하는 도서출판 '보리'이기도 하고, 쌀보리의 '보리'이기도 하고, 부처의 '보리'이기도 하고....그냥 예뻐서 그걸로 하기로 했다. 뭐  내심 딸이길 원했는데 또 아들이다. 락 밴드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내가 요즘 제일 걱정스러운 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뒤뚱거리다가 암살당하는 것이거나 우물쭈물하다가 늙어버리는 것이다. 최근의 몇 가지 징후들은 내게 신중함을 요구하고 있다. 

요즘 <햄릿>을 여러 방식을 통해 읽고 있다.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닌데도 그래서 한장을 읽는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햄릿> 1막 3장에서 햄릿의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라고 딸을 훈계하는 폴로니어스의 말이 있다.  

When the blood burns, how prodigal the soul/ Lends the tongue vows.These blazes,daughter, / Giving more light than heat, extinct in both, / Even in their promise, as it ia a-making,/ You must not take for fire.   

피가 끓을 때면 영혼이 얼마나 방탕하게/ 혓바닥에다 맹세들을 빌려 주는지, 이런 불꽃들은 말이다./ 딸아/ 열보다 빛을 더 내는지라, 빛도 열도 꺼진단다./ 심지어 약속을 하고 있는 바로 그 마당에도,/ 그걸 불로 착각해서는 안 되지. 

딸을 훈계하는 아버지의 평범한 말인데 나는 이 말을 정치적인 의미로 읽는다. 수많은 슬로건과 맹세들과 서명들... 모두 '혓바닥'의 맹세는 아닐까 스스로도 조심스럽다. 내가 그런 것은 아닌지 늘 반문한다. 다들 시뮬라르크된 싸움을 즐기고 거기서 만족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멀리 있는 적에게 싸움을 거는 것과 가까이에 들어와 있는 그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은 어떤 것이 어려운 일일까?  다들 멀리 있는 적에 욕지거리를 하면서 내 옆에 들어와 있는 그의 망령과의 싸움에서는 고개를 돌리는 것은 아닐까?  멀리 있는 적을 아무리 막되먹은 '쥐'취급해도 사실 내게 아무런 해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난 단 한번도 그를 '쥐'라고 부른 적이 없다. 그가 '쥐'가 아니어서가 아니다. 그를 '쥐'라고 말하면서 내가 묻어버리려는 것은 무엇이지 하는 인식이 나를 찌르기 때문이다. 

혓바닥의 맹세를 불로 착각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늘상 대충 대충 <한겨레21>을 보는데....이 두 장의 사진이 내게는 기억에 남는다. 


  

△ 11월14일 이랜드 노조원들의 마지막 투쟁문화제가 열린 서울 상암동 홈플러스(전 홈에버) 월드컵점 앞에서 한 여성 조합원이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의 아들 강민군을 껴안으며 반가워하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김경욱 위원장과 노조간부들은 복직되지 못했다. 김경욱 위원장은 아들이 발달장애 증상을 보여서 병원과 현장을 왔다갔다하면서 시위를 이끌었다고 한다....  


 

12월19일 오전 11시, 서울 은평구 구산초등학교 앞. 정상용(42) 선생님은 굳게 닫힌 교문 앞에 섰다. 바람이 찼다. 교문은 정씨가 학교 가는 것을 가로막는 쇠창살 같았다. 교문 너머에는 6학년 8반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하고 있었다. 사흘 전까지 정씨가 가르치던 반 아이들이다.  

....나는 어제 이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리고 ..몇 번이나  머리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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