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를 상징하는 하나의 한자를 고르라면 나는 '壓' 를 쓰겠다. 힘들을 이겨낼 대항력이 미비하기에 그 압이 더욱 커보인다.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미를 떠나서 내 개인적으로 그렇다. 

이번주에 한 명의 선배가 회사를 그만 둔다.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그 선배는  내 스타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간 간부이기도 하고 이것 저것 마음에 안드는 점이 많다. 가끔은 폭력적이고 한 때는 술먹고 주사도 심했다.그렇지만 나름대로 직업적 순수성과 열정 같은 것은 있는 사람이다. 최소한의 직업적 자존감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덕분에 후배들에게는-여러가지 실책에도 불구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중간 간부로서 회사의 압력을 혼자 받아낸 적도 있다. 나 같은 후배들은 '더 많은 싸움'을 요구했고 또 위에서는 '다른 방향'을 이야기했다. 결국 그는 한 동안 스트레스로 병가를 얻기도 했다. 그는 결코 투사는 아니다.하지만 그에게는 직업적 순수성 같은 것이 조금은 남아있었는데 그것이 그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가 둘이다. 

영화<미쓰 홍당무>를 보면 주인공 양미숙이 고등학교 러시아어 폐강으로 중학교 영어선생으로 밀려나는 장면이 있다. 양미숙은 얼굴 예쁜 라이벌 때문으로 미워한다. 쉽게 말하면 그런거다. 나는 몇 년전에 다른 직종에 가서 일한 적이 있었다. 회사의 명령에 의해서였다. 명령의 합법성 문제를 가지고 노조와 회사 간에 신경전이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셈이다. 향후 직원들 개개인의 거취와 직접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여차 저차 해서 노조가 회사 쪽에 유리한 도장을 찍어주었다. 매일 매일 스트레스 속에서 1년 반을 다른 부서에 가서 말이 안통하는 이들과 살았다. 그나마 당시에는 우르르 몰려가서 좀 나았다. 필요할 때 그 당시 부서장에게 대들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하여간 이틀에 한 번은 크고 작은 대책회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원대 복귀를 하고 1년 반이 지났다. 경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회사는 주객전도가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기존의 업무 인력을 다른 부서로 보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러시아어 선생에서 영어 선생으로 가는 건 양반이다. 이제는. 그래도 선생은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은가. 지금 같으면 그걸 부러워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 선생을 총무과도 보내거나 시설 보수과로 보내는 식이다. 의사를 원무과 직원으로 보내고, 웹디자이너를 영업팀으로 보내는 거다. 그래도 별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요즘 짤리지 않는 것 만도 다행 아닌가? 월급 못 받고 짤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나마 아직 거기까지는 안갔으니 고마운거 아닌가?    

원래 기존의 우리 팀 중에서 최근 2년 사이에 절반 이상이 다른 부서에 나가 있다. 걔중에는 이미 이 바닥은 끝장 났으니 다른 부서에서 살 길을 찾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게 회사에서 원하는 긍정적인 직원상이기도 하니까... 

당장 그런 압력이 내 눈 앞에서도 왔다 갔다 한다. ^^  최근에 술 자리에서 한 선배는- '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으면 여긴 접어라. 여긴 앞으로도 끝이다.'- 라는 말도 했다. 대신 '여기는 이제 꼬박 꼬박 월급 받는 것은 가능할게다. 그것 외에는 없다.'  

사실 직업 윤리로서는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 역시 그만큼 절망의 무게를 느낀거다.^^  나 같이 회사에 밉보인 이들은 어려운 시절이 오면 빠른 순위로 대상에 오른다. 무슨 훈장이나 얻을 수 있는 대단한 싸움을 하고 나가는 것도 아니고...그냥 '경영상의 위기'로라고 미안해 하면 그만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진짜 진지하게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는데...그게 쉽지가 않다. 어제는 떡집에 갔다가 떡만드는 거 가르쳐주는데는 있는지, 기계 설비는 얼마나 드는지, 그런 거 물어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