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황홀 - 보이는 것의 매혹, 그 탄생과 변주
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눈의 황홀>에 자극 받아서 두 편의 영화를 봤다.그리고 LP 한 장의 기억을 떠올렸다.

첫번째 영화는 <브이 포 벤데타>이다. 영화에는 독재자의 상징이 등장한다. 검은 바탕에 붉은 '로렌의 십자가'.크리스마스 씰에 있는 전봇대 같은 십자가라 생각하면 된다. 책의 저자 마쓰다 유키마사는 영화 속의 이 상징이 나치의 그것만큼 강렬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유는 나치의 하겐크로이츠는 나선형의 운동감을 고양하고 있고 있는 데 반해 영화 속에서는 그런 이미지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치에게 중요한 것은 '상승을 향한 운동감' 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미지보다는 메시지의 현재성때문에 마음에 남는다. 특히 주인공 V의 대사( V는  종종  세익스피어의 대사들도 매력적으로 인용한다.<멕베드>,<십이야> 등) 들이다.

"가장 큰 잘못은 정부이고 댓가를 치룰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것은 여러분입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두려웠던 거죠. 전쟁,테러, 질병....수 많은 문제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여러분의 이성과 상식을 마비시켰죠....공평함, 정의, 자유가 단순한 단어가 아니며 관점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요."  

V가 앵무새 국영방송국을 점령하여 방송한 내용이다. 

또 하나의 영화는 개봉 중인 작품이었다. 타셈 싱의 <더 폴>이다. 나는 이 영화의 예고를 보고 과거에 본 영화를 떠올렸다. 제니퍼 로페즈가 나왔던 <더 쉘>이다. 미장센과 영상미학에 유사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 알아봤더니 같은 감독의 작품이었다. 속길 잘하는 눈이지만 늘 그런 것 만은 아닌 듯 하다. <더 폴>의 스토리는 별 볼일 없다. 영화는 정말 색의 즐거움에 봉사하는 작품이다. 색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 만큼 난감하다. 특히 타셈 싱의 영화의 색은 원초적인 색의 충돌을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영화는 별로 일지 모르지만 그 색을 보기 위해서 컴퓨터나 DVD로 봐서 곤란한 영화다.

 마쓰다 유키마사의 <눈의 황홀>은 백과사전 같은 황홀함을 준다. 책의 디자인 부터가 범상치 않다. 책의 옆면 (책의 배)를 48미리정도 펼쳤을 때 좌우로 나타나는 인물이 다르다. 서점에서 봤을 때부터 눈길을 사로 잡았다. 책의 배라는 단어도 사실 처음 알았을 뿐 만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책 중에서 책의 배에 그림을 집어 넣은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물론 어린 시절 교과서나 참고서에는 이름도 써놓고는 했다.그걸 아직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 <눈의 황홀>이라는 것은 출판사가 정한 제목인데 원제목은 <기원의 이야기, 디자인의 시선>이다. 일본어 제목이 책의 내용에 비중을 둔 것이라면 우리의 책제목은 책의 이미지에 더 높은 비중을 둔 것이다. 작가가 디자이너 출신이고 이 책에서 우리는 '이미지의 기원과 변화' 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제목도 나쁘지 않다. 

책은 우리가 흔히들 '상징'이나 '표시' 또는 '디자인 패턴' 등으로 알고 있는 시각적인 결과물들의 역사를 계보적으로 쫓아가 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런 '시각물'들은 자연발생적인 것도 있고, 문화적인 것들도 있다. 저자는 이런 시각 이미지들이 다른 이미지가 더해짐으로써 팽창하기도 하고 의미가 역전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몽상'이라는 개념으로 말하려고 한다. 여기서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개념인 '오브제'나 '레디 메이드'같은 것들도 '몽상'의 이름으로 설명된다.

앞서 말했듯이 <눈의 황홀>은 백과사전같은 느낌을 준다. 이 말은 다양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주제와 정보들이 눈을 어지럽히기도 한다는 말이다. 책은 '쌍'이라는 관념, '속도와 시각의 변화', '직선과 사각형의 탄생', '반전하는 이미지들', '섞는다는 행위',' 가둔다는 것' '오브제' 등 시각문화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종횡무진 펼친다.

특히 저자는 '근대의 시각'의 기원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근대의 시각'은 또한 현재 우리들의 시각문화의 기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철도 문화에 대해 저자가 여러번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연원에서 이다. 이 책에는 빅토르 위고의 편지가 인용된다. 위고가 기차 차장을 통해 본 것을 묘사한 장면이다. "밭 언저리에 핀 꽃은 이미 꽃이 아니라 색채의 반점, 아니 오히려 빨갛고 하얀 띠일 뿐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근대적 '추상'의 한 예로 발견한다. 이 근대적 추상의 극단에서 저자는 유명한 밀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인용한다. 저자의 시각은 기술문명의 발전과 함께 달라지는 시각의 철학에 주목한다. 다시 한번 철도를 이야기 하자. 철도는 자연에 없는 직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철도의 속도는 추상을 만들어 낸다. 속도는 폭력을 동반한다. 속도는 '자기를 잃는 것'이라는 폴 바릴리오의 말을 통해 저자는 시각 문화의 변화와 함께 근대성의 문제를 넌지시 독자에게 던진다. 바릴리오는 "파시즘이 전체주의였던 것은 철두철미하게 속도 체제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빠른 속도에 의탁할 수 밖에 없는 속도의 시대는 사실 모든 것을 추상화 해버린 시대인 셈이다.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민들레를 구경하기 위해 야구공 찾기를 포기한 아마추어 선수' 다. 속도의 추상에서 민들레 꽃 잎 하나 하나에 시선을 두기 위해서 우리는 근대의 '속도 강박'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렇다. 걸으면 우리는 다른 것을 본다.또 멈추면 우리는 다른 것을 본다. 그것은 '볼 견'을 넘어서 '볼 관'이 되는 것이다. '응시'가 되는 것인 셈이다. 

이 책 <눈의 황홀>은 마치 오래된 창고에 쌓아둔 물건을 뒤적이는 즐거움을 준다. 언제 거기 있었는지 모르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는 기쁨 같은 것 말이다. 저자의 시각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인문학적 사고의 든든함은 지적인 포만감 같은 것을 준다. (배부른 자의 불만처럼 나는 이 '포만감'에서 오히려 일종의 '결핍감'을 느낀다.) 서양의 수직문화와 대비되는 일본의 수평문화, 원근법과 일신론이야기, 메르카토르도법과 중국의 우주관, 스트라이프의 변천사, 앙상블라주와 섞는 것의 역사, 책의 글자체를 둘러싼 논쟁들, 변형을 뜻하는 '데모르메'이야기...무궁무진하다. 미술사에서 한 번쯤 접해본 내용들일 수 있지만 다채로움으로 인해 충분히 그 약점을 상쇄한다.

포만감 속에 약간 부족한 탄닌이 끝까지 아쉽기 하다. 하지만 책의 기획, 참신한 디자인, 잘 배치된 사진, 동서양 문화의 비교, 흥미를 끌만한 시각 정보의 역사들을 생각해보면 'Well-made book' 이다.  책에 대한 자긍심과 고집으로 한 해 한 권씩만 만들어 낸다는 저자 일인 출판사의 철학 역시 후광효과를 발휘한다.  

 이제 <눈의 황홀>이 건넨 문제의 LP에 대해 마지막으로 말할 때이다. 이 책에는 레드 제플린의 앨범 <프레즌스>에 나오는 오브제를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이 오브제는 나를 잠깐 미치게 했다. 내가 레드 제플린의 앨범을 사모으기 시작한 것은 고1때 쯤이었다. 비록 오래된 일이지만 나는 그 앨범에서 오벨리스크풍의 네모난 기둥을 본 적이 없다.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창고 속에 봉해져 있는 박스를 뜯어서 확인해야 하나?  결국 그런 번잡한 과정을 실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약간은 비겁하며서도 설득력 있는 가설로 이런 불편함을 잠시 미봉해 두었다. 옛날에 라이센스 음반을 낼 때는 앨범 자켓이 공륜에 의해서 수정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오지 오스본의 2집<diary of mad man>음반 LP에는 원래 있는 피흘리는 오스본이 없다. 레드 제플린의 5집 음반<house of the holly>만 해도 아이들이 옷벗고 신전을 기어가는 사진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런 미봉책은 사실 만족스럽지 못하다.

"내 기억이 맞아서 만약 검은 기둥이 앨범에 없었다면 도대체 왜 그걸 지웠을까?". 다시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 그 앨범 자켓이 그 기둥이 있었던가"

눈은 믿음직 하지 못한 동료이며 기억은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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