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잡지다. 다 알다시피 한국의 티나로사우르스 삼성과 맞짱 뜬 유인원들이 만든 시사 잡지다. <시사in>의 정기구독 권유를 '회사에서 볼 수 있다'는 핑계로 끊고 났을 때 미안함이 들었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시사in>을 회사 자료실에서 봤다. 원래 모든 잡지를 꼼꼼히 읽지 않는다. 어떤 이들이 재미있다고, 속 시원하다고 말하는 진중권이나 우석훈의 글들도 주마간산으로 읽는다. 그렇기 때문에 특집 <강남좌파> 역시 요지만 파악하는 수준으로 대충 읽었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다. 그런데 이미 포털의 국어 사전에도 나와 있는 말이었다.

강남좌파: 몸은 상류층이지만, 생각은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사람을 이르는 말.

<시사in>은 강남에서 촛불을 들고, 한겨레와 경향을 보고, 이명박에 반대하고,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잡지는 진보신당의 강남 10% 지지율을 상당히 주목했다.)....정치행동적인 측면에서 그런 것을 '강남좌파'의 몇 가지 예로 들었다.

사실 나는 가끔 '로또'를 꿈꾼다. 그런데 '로또'가 당첨되면 이걸 하고, 저걸 하고...이러다가 항상 2부로 이어지는 질문이 그거다. "내가 로또 당첨되어 부자대열-요즘 로또로는 부자대접 못받는다지만-에 낀 다면 내가 말하는 범좌파로 남을 수가 있을까?  멋진 외제차를 타면서 좌파서적을 읽어도 스스로 어색하지 않을까? " (^^; 어색해도 되니까 로또 한 번만 되보자. 석 달에 한 번쯤은 사는데 5천원 맞기가 왜 이리도 힘든지.)

하여간 내 꿈의 2부 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강남좌파'라는 부류인것 같다.

먼저 <시사in>의 섹시한 소재를 찾아 헤메는 하이에나 근성(모든 언론이 갖고 있는 카인의 DNA다)과 오도방정이 이 닦고 가글 못한것 처럼 씁슬하다. 기본적으로 <시사in>은 '계급'에 대해 '동일한 속성을 갖고 있는 부류'라는 전통적인 분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하다. '강남 좌파'의 반대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반대말은 '울산 우파','창원 우파' 쯤 될 것이다.(두 지역은 노동자들의 구성비율이 높은 곳이다.) '강남 좌파'가 특이한 현상처럼 보이는 것은, 이 지역에서 '노동자 계급이 어떻게 한나라당을 찍을 수 있지' 하는 질문과 같은 지평의 것이다. 결국 풀리지 않는 미적분 앞에서 발만 동동구르다 보면 남는 건 성질 뿐이다. '어떻게...노동자가...어떻게...농민이...어떻게...20%가...' 결국 나오는 것은 계급성을 잃어버린 정치적 행태에 대한 '분노작열'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게 '계급은 동일하지 않다.'(진부한 명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나라당에 투효하는 것' 과 '강남 좌파가 진보신당'에 투표하는 것이 분노하거나 칭송할 만큼의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착취의 구조와 불의가 은폐되는 것은 비난받아야 한다. 10%가 90%를 이용해먹는 구조에 대해 끊임없이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분노'와 '성토'는 자기정초를 위한 만족일 뿐 '소통'을 위한 첫걸음일 수 없다. 

'강남좌파' 라는 말은 '좌파'라는 단어의 활용면에 있어서 현 정권이 노무현 정권을 규정했더 '잃어버린 10년'의 주체인 '좌파'와 같은 뉘앙스를 갖는다. 즉 현 정권을 기준으로 그 왼쪽에 있으면 '좌파'고 아니면 '우파'가 된다. '강남좌파' 라는 말 역시 역시 현재의 무식한 정권에 반대 기치를 드는 세력을 뭉뚱그리고 있다.  '안티MB'로 '좌파'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자의적이며 이분법적이고, 앞서 말한 것 처럼 MB적이다. (좌파를 무슨 순혈엘리트집단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내가 싫어하는 두 단어가 동시에 들어가 있다. 단지 수구세력에 반대하기에 '좌파'라고 붙이는 것의 몰상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그걸 MB가 하는데  그대로 따라하다니...미워하며 닮는가.)

그런 차원에서 '강남좌파'라는 말에는 자의적인 이분법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도 한정된 틀 안에서이다.  '강남좌파' 는 자신의 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이들에게 '인류는 희생양의 역사위에 서있다' 라는 말을 꺼낸다는 것은 이해받지 못할 말일뿐이다. (물론 그런 원죄의식이 좋은 것 만은 아니다. )그들에게 '부'의 결과는 '천부인권'처럼 자신들에게 입혀져 있다. 그들이 어떤 수단을 통해서 돈을 벌든 그것은 그들의 관심이 아니다. 부동산 거품으로 돈을 벌든, 정실 자본주의를 따라 돈을 벌든, 사교육을 통해 돈을 벌든..그것은 지금 이 대목에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결국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것만을 '도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능력' 만을 말하지, 그 '능력'이 어떤 시스템에 의해서 '좋은 능력'으로 간택되는지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권력,지식의 결합이 있다. 최근 침뜸 논쟁을 불러일으킨 노구의 침술가가 있다. <시사IN>도 그 기사를 다루었다. 현재 한의사가 돈 잘버는 직업으로, 수능 고득점자들의 전공으로 선택되는 것은 과연 '한의학'이 그것 자체로 '뛰어난 능력'의 무엇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것은 선택과 배제라는 권력 관계에 의해 배분된 것이다. 침구사들은 근대한의학의 이름으로 배제되었다. 그들이 배제되지 않았다면 한의사들의 벌이는 지금보다 떨어졌을 것이다. 그럼 입학 수능 점수도 조금 낮아졌을 게다.(물론 강남좌파나 한의학도가 이런 시스템의 배분에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 차원이 있다는 점에 대해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강남좌파'는 자신들의 '부'에 그런 '권력과 자본'의 우생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는다.    

'강남좌파'는 일종의 '유사 진보'의 형식을 갖는다. '반MB 정서'에 부하뇌동만 하지 않는다면 사실 그들은 '보수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보수주의'를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의 구태의연한 보수정권'외엔 보지 못했다. 그들은 '토니적인 보수주의'이며 그것은 오히려 전통적인 의미의 '보수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그들이 특히 강조하는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인데 바로 그 점이 '보수주의 도덕관'의 핵심이다.

"'강남좌파'라면 한 해 4번 가던 해외여행을 타인들을 고려해서 2번으로 줄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해외 나가서 쇼핑하느라 돈 쓰는 것 보다 국내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훨씬 좋다. 이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다.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블로거 중 어떤 이는 이것을 두고 '떳떳한 부자로 살겠다는 강남인들의 의지'라고 표현했다. 진보인사들이 가장 치를 떨만한 영국의 신자유주의 대모 '마거릿 대처'를 생각해보자. 그녀가 최종적으로 목표했던 이데올로기적 지점이 바로 그것이 었다. ' 부는 좋은 것이다. 부자가 당당하게..' 그러기 위해서 대처는 '시장외엔 대안이 없다' 와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가자' 라는 구호를 내건 것이다. 앞에 슬로건은 말 그래도 '자유시장주의' 이며 뒤의 슬로건은 '도덕주의'와 '애국주의'를 상징한다.

이번 주 <시사IN>의 '고뇌하는 보수 우파'에서 대담자로 나선 중앙대 모 교수의 인터뷰가 사실 '강남좌파' 와 이데올로기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본다. 그 교수는 보수파 내에서 '안티 이명박'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촛불시위'에 대한 정부의 몰아잡기식 대응에 반대했다. 교과서 논쟁에 있어서도 비교적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 이 사람은 '좌파'인가? 그렇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 이것만 해도 '좌파' 취급을 받는다는게 얼마나 '좌파'가 빈약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남'이라고 모두 부자만 사는 것도 아니다. 강남에는 모두 '로데오' 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진보신당이 강남에서 10%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표가 '강남좌파'에서 나왔는지 강남의 빈자들에게서 나왔는지 비밀투표 상황에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시사IN>은 당당하게 '강남좌파 날자 진보신당 뜬다' 라는 식으로 쓰고 있다.

어쨋거나 '세상 어느 곳에나 부처도 있고 악마도 있다.' 는 어느 선승의 하이쿠처럼 강남이든 강북이든 여러 계급과 여러 정치적 의견들이 모여있다. 물론 그 안에는 지역적 편향성등이 존재한다. 강남에서 '노블리스오블리지'에 대해 생각하고 '건전한 보수주의'가 되려는 시도까지 나무랄 수는 없다. 안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그러나 그곳에는 '생산'은 없고 '소비'만 있다.(이 의미는 이중적이다.)  1억을 한 달 판공비로 소비하듯 '좌파'가 그렇게 소비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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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링 2008-10-0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재열 기자의 블로그에도 강남좌파보다 강남진보가 더 적확한 표현이라고 밝히셨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