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1100여일’ 기륭 조합원 권명희씨의 죽음
암투병 숨기고 농성하던 사람
“함께 못해 미안하다”던 사람…
 
 
한겨레 최원형 기자 김도성 피디
 








 

» 암으로 세상을 떠난 기륭전자 비정규직 권명희씨를 추모하며 지난 27일 기륭전자 정문에서 연 노제에서 기륭전자분회의 옛 조합원이 울면서 분향하고 있다. 사진 취재영상팀 김도성 피디
 
“비정규직 차별 없는 세상으로 편히 가소서….”

‘정규직으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000일 넘게 싸워온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다. 비정규직의 차별에 맞섰던 평범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앞에 시민사회 단체들뿐 아니라 누리꾼과 사회 각계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5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권명희(45)씨가 세상을 떠났다. 권씨는 2년 전 위암에 걸린 사실을 안 뒤에도 틈틈이 노조 농성장을 찾아 동료들과 함께 투쟁을 계속했으나 병마만은 끝내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27일 서울 구로구 가산다지털단지 기륭전자 정문 앞에서 기륭전자분회가 권씨를 기리는 작은 노제를 올렸다. 노제에는 이랜드 일반노조 등 장기투쟁을 함께 해온 노동단체와 각종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등에서 나온 100여명이 참여해 권씨의 죽음을 추모했다. 다음 아고라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한 누리꾼 20~30여명도 이날 노제를 찾았다. 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천주교 단체들도 이날 오후 기륭전자 앞에서 권씨를 애도하고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미사를 열었다.




지난 2004년부터 기륭전자에서 파견직 노동자로 일하던 권씨는 회사 쪽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다가 2006년 1월 해고됐다.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해고되고 넉달 뒤인 같은 해 5월. 그는 동료들이 걱정할까봐 발병 사실을 숨기고 외롭게 병마와 싸우면서도, 몸이 조금 나아질 때마다 모자로 야윈 얼굴을 가린 채 농성장에 나타나 동료들과 함께했다. 이달 초 회사 쪽과 집중교섭을 펼치며 ‘복직’ 가능성이 점쳐졌을 때엔 남편한테 “동료들과 함께 다시 일할 수 있다”고 말하며 기뻐했다고 한다.

권씨와 같은 생산라인에서 일했던 김소연 분회장은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발병 사실이 알려지자 ‘(투쟁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의지가 강했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남편인 최동철씨는 “우리도 힘들게 살았지만 아내는 ‘더 힘든 사람도 있다’며 달마다 아동·장애인 단체에 기부를 해왔다”며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작업장에서 매일 밤 늦게까지 힘들게 일했는데, (회사가) 그런 사람을 내쫓다니 어찌 그럴 수 있느냐”며 울먹였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는 9월 초 “조합원 10명에 대해 자회사의 협력사에 1년 기간으로 고용해주겠다”는 회사의 제안을 노조가 거절한 뒤 아직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권씨의 죽음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닌 고용 불안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며 “아무 희망이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다급한 숙제”라고 되새겼다. 김소연 분회장은 “가시는 길이 쓸쓸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많은 분들이 애도의 뜻을 보내주셨다”며 “끝내 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못하고 눈을 감은 권씨의 한을 꼭 풀겠다”며 눈물을 삼켰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취재영상팀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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