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고, 나에게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강요하지 말라."

                                                                                                  - 미셀 푸코-

<내가 누구인지 말할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라는 소설이 있었다. 내용도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리틀 이문열'이 될 뻔한 이인화가 작가였다는 것은 기억난다.

주체 문제에 있어서 나는 '탈자아론'적 입장에 있다. 김중혁이 그의 소설 뒷머리에 자기를 구성하는 문화 상품과 지식 상품들을 나열하고 그것이 모인 것이 '나'이다. 라고 했을 때 기계론적 합성이 웃기기는 했지만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맥락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분열된 자아에 그다지 큰 불만이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통일된 자아' 라는 상을 만들려고 너무 애를 쓰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철학계에서 심난하게 만들었던 '상대주의'를 '총체성의 철학'으로 돌파하려는 지젝이나 바디우같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이 간다.

어떤 분이 내게 '맑스-레닌주의' 나 '트로츠키주의' 아닌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 덕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되었다. 생각해보니 또 그런 요소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분의 입장에서는 '노동자' 문제와 '계급'문제를 이야기하고 구좌파의 책을 최근 주로 손을 대고 있어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요즘 흐르는 물의 흐름 중 일부분이다. 봄의 물 맛이 다르고 가을 물맛이 다르다.

나는 '촛불집회' 초기 부터 '생태주의적 가치'로 집회에 참가했다. 즉 소고기의 식품안정성을 넘어 '공장제 사육제도'와 그의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자본주의적 소비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이야기했다. 물론 집회에서 구호는 똑같을 수 밖에 없다.

삶의 방식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변화는 요원하다.즉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전면적 회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에 의탁해 있다면 아무리 안전성 검사를 높이더라도 쇠고기의 문제는-또는 그와 유사한 방식의 문제는-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의 검역시스템이란 것은 그만큼 불충분하다. 언젠가 읽었던 글 중에서 '핵'의 안정성에 대한 글이 이에 대한 비유가 될 듯 하다. '핵은 기본적으로 무오류성에 바탕을 두고 추진된다' 는 대목이었다. 핵 시설을 설치할 때 한수원이주민들에게 절대 안전하다고 이야기하지 10000만분의 1이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과 기계가 하는 일에 절대 안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기본적 한계를 망각한 '핵의 무오류주의'적 발상은 엄청난 모순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생태주의'를 주장하지만 '생태근본주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것이 정치적 담론과 직접 결합되지 않는다면 그저 도덕주의 운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기본적으로 '생태운동'을 위해 시골로 들어가는 분들의 개인적 선택을 존중한다. 그들이 하나의 거점이 되고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분들의 글이나 기사를 보면서 힘도 얻고 반성도 한다. 그렇지만 다수가 공생을 위한 대안적 방식을 찾기 위해서는 거대한 정치담론의 영역에서 벗어나서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생태주의적 실천을 함과 동시에 나는 또한 현실정치의 사회인으로서 그에 적합한 의무를 다해야한다. 나는 이것에 약간 의무감을 갖는다. 이유는 내가 잘먹고 잘살고 대학나와서 지금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는 나의 재능도 있었짐나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답답한 마음에 "아....C8 왜들 이렇게 뭘 모르고,무식하지..진짜 힘빠지네." 라고 했을 때 아내는 "자기가 얻었던 기회를 모든 사람들이 다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 라고 말했다. 열받았던 마음을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나는 아내를 안아주었다. 그런 열받음은 순간 순간드는데 그 때 마다 나는 아내의 저 말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나는 생태주의와 좌파가 '자본주의'라는 공동의 대상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한다. 하나가 삶의 태도와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또다른 하나는 역사와 제도의 측면에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계속 미루어지고 있는 <자연과 타협하기>가 그런 고민에서 나온 책으로 알고 있다.

나는 스스로 '범좌파'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어떤 사상이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또 어떤 사상이든 자기 수용적 태도를 갖는다. 그것이 정규교육으로 학습받지 않은 수많은 메노키오들의 방식이다. 나는 그것을 아쉽게는 생각하지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이 있다면 그는 내게 다른 영역에서 그에 상응할 만한 것을 주었을테고 그런 역할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 받은 질문은 나에게 '범좌파'에서 '최종심급'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게 만들었다. 사실 '최종심급'이란 것 자체가 있을 만큼 대단한 내공을 쌓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찾을 만한 것도 없다. 그렇지만 그 '최종심급'이란 단어를 안다는 이유때문에 그 단어가 나를 공격하게 된 것이다. 알튀세르는 '현실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 차원'에서 '최종심급'을 이야기했다. 그는 '중층결정'의 과정 속에서도 그 '최종심급'으로 -앞의 전제를 단 채-'경제'를 말했다고 알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은 동물이다' 라는 것이다. 그게 알튀세르가 수용한 '최종심급'이다. 인간이 동물인지 모두 알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경제'도 아마 그에게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것처럼 말이다. 

윤건차의 <현대 한국사상의 흐름>을 다분히 도식적이긴 하지만 20세기 말의 한국 지식인의 지형도를 그린다. 스펙트럼은 구좌파 부터 시민사회론자들의 역사를 아우른다. 물론 민족문제와 관련해서 보수적 민족주의자나 수구 보수주의자들을 이야기하지만 큰 장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2000년대 주목받은  자율주의같은 흐름은 빠져있다. 윤수종이나 조정환같은 사람들이 들어갈 것이다. 이 책의 증보판이 나온다면 '수유'같은 곳에서 활약하는 소장학자들의 이름도 거기에 등재될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학자들 역시 한가지 흐름을 갖고 있지는 않다. 물론 초지일관인 사람들도 있으나 대게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해서 이념적 차이, 사회를 분석하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나무 가지처럼 나뉘어진다. 한때는 같은 흐름이었다가 또 사상적으로,인간적으로도 갈라선 유명한 사람들도 있다.

나같은 아마추어 '범좌파'가  그다지 필요치도 않는 '최종심급'으로 윤건차의 도식을 살펴보면 나는 신좌파적 마르크스주의자  (여기에는 강내희 등의 문화연구그룸이 있다,그리고 이진경의 코뮌주의도 있다. 이 스펙트럼도 무지하게 넓다.) 좌파적 시민사회론자 (김동춘,조희연,임영일 등) 이 있는데 대략 저 둘 사이 어디가 아닐까 싶다.

특히 윤건차는 김동춘,조희연에 대해 재미있는 설명을 했는데...기억에 의존해서 쓰면 대략 이런 것이다.

김동춘과 조희연의 경우는 좌파 시민사회론자로 구분하지만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전통을 토대로 삼는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한 '노동자'와 '계급'의 토대가 없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 촛점을 맞춘 연구 작업들도 이루어왔다. 그러면서 이들은 구좌파가 비판하는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특히 임영일(나는 임영일의 책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은 그람시적인 시민사회론자이면서 노동계급이 시민계급으로 전화해 나가는 데에 대해 노동계급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작업을 한다. 특히 그가 있는 -창원인 듯 하다- 곳이 한국에서 산업의 중심적이 곳이어서 그는 실제 연구와 현장 활동에서 활약을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범좌파'라는 스스로의 자기 규정을 마음에 들어한다. 어떨 때는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구좌파식의 '개량주의'지적이 옳아보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노동자'들이 체제포섭되어 아무런 실제적 동력이 될 수 없다고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이론이든 현실을 압도할 수 없고,또한 회색적이며,모든 이론은 중첩되어 이해할 수 밖에 없다는 내 편견에 때문이다. 그리고 또하나가 있다.'모든 이론은 현실과 별 상관없다.' 라는 '반이론적 정서'에 절대 동의하지 못한다는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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