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의 잘생긴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각본도 쓰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 <11번째 시간>이다.

이 영화는 과거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기존의 영화와 장르도 주제의식도 다르다. 한마디로 하면 '환경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는 중간 중간에 <그것이 알고 싶다>의 문성근처럼 등장해서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간다. 러닝타임은 100분에 조금 못 비친다. 기억에 의하면 너댓번 정도 디카프리오의 얼굴을 본 듯 하다.  

영화는 환경운동가, 과학자,(스티브 호킹도 나온다), 저술가, 정치가(고르바초프와 전 CIA국장 제임스 울시도 나온다)  등 등이 나와  주제와 과련된 인터뷰를 한다. 주로 지구환경과 관련된 생태학적주제들을 구들장에 앉아서 새끼 꼬듯 엮어간다.

이 영화 이전에 나왔던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 보다 <11번째 시간>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애써 비교하자면 <불편한 진실>은 진보적인 주류 환경론과 현실주의의 접합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면 <11번째 시간>은 생태학적인 인식전환에 더 큰 비중을 둔다. 현재 도래하고 있는 환경 위기(온난화,숲의 파괴, 해양오염등) 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생태계의 모순 사이에서 생긴 '증후' 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두 영화다. "지금 당장 구체적 행동에 들어가자" 라는 액션플랜을 제시한다.  그 액션플랜들은 의지만 있고 그것이 정치적 각성을 통해 습관화된다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공정무역 상품 사용하기, 불필요한 소비 줄이기, 자전거 타기, 재활용 철저히 하기..

<11번째 시간>은 인류의 진화에서 부터 이야기를 끌어간다. 인간이라는 열등한 존재가 생물계에서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지능'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지능에 바탕을 둔 산업혁명,석유의존형 시스템과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점 부터 본격적으로 말을 꺼낸다.

이런 말도 나온다. "사람들은 환경이,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지구나 환경은 멸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류가 멸망할 거구요. 그 이후 다시 지구는 더 빨리 살아날 겁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가 "인류와 바이러스"를 비교한 말이 문득 떠오르지 않는가? 


영화 <11번째 시간>은 지구 온난화, 숲의 파괴, 토양의 파괴, 해수의 오염, 다양한 생물종의 감소 등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것은 생태학의 근본적 질문과도 같다. 영화 <11번째 시간>은 모든 자연을 소재로만 파악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양식" 에 대해 문제를 삼는다.

영화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라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 생태계는 더 큰 상위 시스템이고 경제는 하부 시스템이다. 인류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하부 시스템을 급속도로 확장시켜왔다. 그렇게 되면서 생태계라는 더 상위 시스템의 공간을 줄어들었다."

" 아이들은 하루에 4시간 이상씩 TV에 노출되어있다. 사람들은 하루에 수 천개의 광고에 노출되었고 수 천개의 브랜드를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집 밖의 수 십개의 동식물들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 현재 경영 대학원을 나온 CEO들은 하나 같이 성장을 외친다. 경제 성장이 최대의 가치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수단을 목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목적은 삶의 질이다. 잘못된 성장은 삶의 질을 망쳐놓는다. 그것을 되찾아야한다."

영화<11번째 시간>은 구체적으로 악화일로를 걷는 환경문제와 인간의 삶을 연결한다. 그 바탕에서는 생태주의적 사고 전환을 요구한다. 결론에서 영화는 이런 움직임들이 '전근대'로의 회귀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한다. 일상에서 작은 변화들과 함께 '이성의 힘'으로 새로운 대안적 세계를 실현하자고 주장한다. 그것은 재생 에너지와 순환가능한 자원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세계 디자인을 말한다. 

이 영화는 생태계와 인간을 대립구도로 만들어서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출발점은 인간의 이성과 선의지에 대한 믿음이다.이미 세상에는 자발적으로 모인 생태그룹들과 모임들이 늘어나고 있다. 

영화는 "인간은 아는 만큼 행동한다"는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끝난다.

생태주의적 가치와 환경문제에 대해 알고 싶은데 책 보기가 귀찮다면 이 영화<11번째 시간>이 도움이 될 듯하다.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았고 DVD로는 나와있다.

( 부산에 계신 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학생들과 함께 보려는데  이 DVD를 도저히 못구하겠다고 하신다면 기꺼이 빌려드릴 생각이 있다. 먼저 구해보시구....^^; ) (우체국이나 택배가 빌리는 것보다 더 비싸니까.. )

..근데 왜 갑자기 영화<11번째 시간> 이야기를 꺼냈을까?...^^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몰라도 되는데...그건 이것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현재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지 운동방식이다. ^^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들은 거의 참여했다. 고은을 비롯해서 무려 시인 203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대운하에 반대하면 안하겠다"라고 어제 기자회견에서 했단다.

단순한게 아주 좋다.^^

그럼 이제 '국민이 반대'하면 된다.

얼마나 쉬운가.^^

 그 XX 탄핵가자..실제로 그렇게 가지도 못하면서 레토닉은 거리에서만으로 충분하다. 광우병 대책회의도 '그건 슬로건'이다라고 슬쩍 꼬리를 내렷다.(처음부터 그런 것 아니었겠나? )

이명박에 반대하는 것도 어디서 출발하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적 앞에서 반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적이 사라진 이후까지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부터 적을 무너뜨릴 현실적 정세나 의지도 그닥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어쨋거나 우리는 그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 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즉 구체적 투쟁은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그 투쟁이 출발하는 출발점과 방향성에 대한 보편적이고 이론적인 성찰이 부족하면 그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론적이고 전망적인 것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아고라의 논객들이 아니어도 ,대학에 있지 않아도 일반 대중이 모두 그런 '지식인'이 될 수 있는 정보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번 촛불집회에도 공과 실이 있을 것이다. 아직 끝은 알 수 없지만...촛불집회가 남긴 공 중에 하나라면 분명히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위를 하는 것,파업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이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촛불을 들며 가졌던 연대감과 의식들은 이제 더 깊은 문제까지 이어지질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물론 거기에는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근본적 가치에 대한 이해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애정을 무장하고 갔으면 한다. 

한국 시의 절창이라고 할만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정희성 시인의 글을 시집에서 그래도 옮겨온다.



장마가 시작되었다.옥타비오 파스의 <돌과 꽃 사이에서>가 맴돈다..

돌과 꽃 사이에, 인간.
우리를 죽음으로 데려가는 탄생,
우리를 탄생으로 데려가는 죽음.

인간,
돌 위로 줄기차게 내리는 비
화염 사이로 흐르는 강
폭풍우를 이겨내는 꽃
번갯불의 섬광을 닮은 새.
노동과 열매 사이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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