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촛불, '정직한 반항' 또 '희망의 근거'"
  [인터뷰] <녹색평론> 100호 펴낸 김종철 발행인
 
  2008-05-19 오전 10:21:59
 
   

 
 

  지난 13일 발행된 2008년 5·6월호로 <녹색평론>이 100호를 기록했다. 17년 전 1991년 11월 말 창간호를 낸 이래 두 달에 한 번씩,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 겸 편집인은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는 게 우리 스스로도 약간 믿어지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종철 발행인은 <녹색평론>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를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한 지금 그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프레시안>은 김종철 발행인을 지난 15일 오후 서울 필운동의 <녹색평론> 자료실에서 만나 여전히 희망의 근거를 찾는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청계천 촛불에서 '희망'을 보았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겸 편집인. ⓒ프레시안

  김종철 발행인은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청계천을 찾아 촛불을 든다. <녹색평론>은 어느 잡지보다도 빨리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관련 기사 : "한미 FTA, 경제 성장, 민주주의") 그는 촛불 집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촛불 집회에 자주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10대가 주도한 이번 촛불 집회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대들이 주도한 이번 촛불 집회를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이번 촛불 집회의 의미는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성찰돼야 하겠지만, 즉흥적으로 몇 가지 생각이 든다. 나는 10대의 문화를 정말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 세대일 테니까, 자연히 이른바 '조·중·동'이라 불리는 수구 언론에 의해서 정신적 오염이 덜 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사실 기성세대는 조·중·동의 관점을 비판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조·중·동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래서 사회변혁에 대해서 대개 무력감을 느끼고 체념에 빠져 있다. <경향신문>, <한겨레>와 같은 매체가 조·중·동에 대한 '대안' 언론이 되지 못하고 '대항' 언론에 머물고 있는 현상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촛불 집회를 주도한 10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조·중·동의 틀에 갇히지 않은 탓에 진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파악을 하고, 거기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지금 10대는 '거짓'과 '불의'에 대항해서 아주 정직한 '반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바로 이런 정직한 반항이야말로 4·19 혁명, 5·18 항쟁 등의 원동력 아니었나?
  
  촛불 집회를 보면서 아, 한국 사회에 아직도 진실에 대한 감각을 가진 세대가 살아 있구나, 이런 기운이 모여서 새로운 희망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청계천의 촛불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자본, 성장 따위로 위기 극복할 수 없다"
  
  '희망'을 말하는 김종철 발행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와 <녹색평론>은 지난 17년간 절망과 싸워왔다. 당장 <녹색평론>이 시작한 이유야말로 절망이 주는 압박 탓이었다. 그는 창간사에서 현실을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는 전면적인 위기" "묵시록적 상황"이라고 쓰며 대응을 촉구했었다.
  
  - 지난 17년간 계속 오늘날 여러 가지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찾아 왔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는 위기들은 본질적으로 더 많은 자본, 성장 따위로 해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본과 국가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녹색평론>은 지난 17년간 줄곧 우리의 삶이 경제 성장과 산업주의 개발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고발하고, 그리고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희망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탐색해 왔다.
  
  다행히도 많지는 않지만 이런 <녹색평론>의 시각에 적지 않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온 탓에 지난 17년을 버틸 수 있었다. <녹색평론>을 꼬박꼬박 챙겨 읽는 6000여 명의 농민, 노동자, 주부, 종교인, 시민운동·주민운동 활동가들과 이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전국의 '<녹색평론> 독자 모임'이야말로 이 잡지를 내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다."
  
  격월로 펴내는 <녹색평론>은 매번 1만 부를 찍는다. 그 중 6000부 정도가 정기 구독(5000부), 서점 판매(1000부) 등으로 소화되고, 나머지는 도서관 등에 기증된다. 인문·사회과학 책이 초판 2000부를 팔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녹색평론>의 이런 성적은 놀랄 만한 일이다.
  
  "농민이 천대 받는 사회, 미래 없다"
  
▲<땅의 옹호>(김종철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프레시안

  녹색평론사는 <녹색평론> 100호에 맞춰 몇 권의 단행본을 펴냈다. 그 중 김종철 발행인이 펴낸 책 두 권 중 한 권의 제목은 <땅의 옹호>이다. 김 발행인과 <녹색평론>은 송기호 변호사의 말을 빌리자면 "징그럽게" 농업, 농촌, 소농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렇게 "땅을 옹호"해온 <녹색평론>을 놓고 많은 이들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다.
  
  - <녹색평론>은 한국의 매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소농의 중요성을 말하는 잡지다.
  
  "이번에 책 두 권을 내면서 지난 쓴 글을 정리해보니 정말 '징그럽게' 농업, 농촌, 소농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더라. 글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내 글을 처음 보는 사람을 생각해서 중요한 대목을 계속 강조하다보니, 결국은 비슷한 주장이 계속 반복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 결과 <녹색평론>은 끊임없이 농업, 농촌, 소농을 강조하는 유일한 잡지가 되었다.
  
  이렇게 농업, 농촌, 소농을 강조하는 걸 놓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농업, 농촌, 소농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녹색평론>의 문제의식을 잘 설명해주는 불교 게송(偈頌) 중에 '空界循環濟有情(공계순환제유정)'이라는 게 있다. '세상은 순환을 통해서 모든 생명을 구제한다.'
  
  이 세상의 질서는 근본적으로 순환을 통해서 유지된다. 예를 들어 땅으로부터 먹을거리를 얻은 생물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가서 지력을 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땅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솟고…. 모든 생명은 바로 이런 순환 속에서 살아왔다. 자본주의 근대 문명은 바로 이걸 깨뜨렸다.
  
  파국 직전의 위기 상황도 그 근본을 따져보면 바로 이 순환을 깨뜨린 데 있다. 그런데 정작 많은 이들은 자본, 성장, 과학기술을 통해서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임시방편으로 파국을 지연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그 중 대다수는 오히려 위기를 가속화한다.
  
  결국은 다시 순환할 수 있는 구조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게 옮다. 그런데 이렇게 방향 전환을 하자고 하면 결국 농업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순환적인 패턴으로 이루어지는 삶이란 농사 중심의 생활 방식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이러한 농사는 지금과 같은 대규모 기계와 화학물질을 투입하는 공업화된 농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소농 중심의 유기적 농사라야 한다.
  
  그런데 소농이 왜 중요하냐 하면 소농이야말로 땅의 성질을 잘 알고, 땅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지혜와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농의 이러난 지혜와 능력은 모두 오래된 농촌 공동체에서 나온다. 좋은 농사는 이처럼 공동체에 뿌리를 둔 농민들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는 어떤가? 지금처럼 농민이 사회에서 열등한 존재로 소외받고, 천대받는 사회가 없다. 이렇게 농민이 천대받는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다. 농민이 제일 존경 받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한국은 정반대다. 쿠바는 농민 소득이 대학교수 월급의 3배라고 하는데, 바로 그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다."
  
  - 기업농 중심의 산업화된 농업을 대안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소농이 바탕이 된 농촌 공동체가 부재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미국이 잘 보여주고 있다. 다국적 농업 회사가 장악한 미국의 농업은 화학비료, 농약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농업은 지속 불가능하다. 그 땅은 언젠가는 지력을 잃고 사막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전체 표토 중 4분의 1이 유실되었다. 전 세계가 미국을 좇아가면 결국 사막화하고 만다.
  
  이런 농업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건 바로 자살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유일한 출구는 소농이 바탕이 된 농촌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이 다 농민이 될 수 없다. 또 대도시 사람들이 모두 귀농을 할 수도 없다. 다만 이런 농업, 농촌, 소농이 근간이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그런 방향으로 돌리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구조적으로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농업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건 잘못된 전략이라는 지적도 있다. 농업을 육성할 게 아니라, 실력 좋은 '곡물 딜러'를 키워야 한다는 얘기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그렇다. 지금 정부나 주류 엘리트는 가능하면 농업을 폐기하자는 쪽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금 25%까지 떨어진 식량 자급률이 20%, 10% 이렇게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은 케케묵은 20세기적 방식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전 세계 선진국은 지금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 한국의 농업 자급률이 가장 낮다. 전 세계 선진국은 기본적으로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 국가 유지가 가능하리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녹색평론>의 주장은 바로 이 자급률을 조금이라도 높여보자는 얘기다.
  
  농업을 폐기하자는 생각은 결국 집단 자살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선 식량 자급률이 적어도 40~50%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그렇게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농촌을 사람이 살 만한 환경으로 변화시키자.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노력을 해보자, 바로 이런 얘기다.
  
  잘못 된 길을 한참 온 마당에 지금 당장 순환 사회로 갈 수 없다. 대신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길을 찾고자, 순환 사회로 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녹색평론>의 주장을 '비현실적'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현실적'인 것인지 한 번 묻고 싶다."
  
  "현실과 괴리된 지식인, 관념적 논쟁으로 시간 허비"
  
▲ ⓒ프레시안

  <녹색평론>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식인을 대상으로 펴낸 잡지다. 그러나 정작 지식사회에서 이 잡지는 17년 내내 변방에 머물렀다. 바로 그 지식인들이 이 잡지 앞에 "현실과 괴리된", 이런 수식어를 붙였다. 그러나 정작 창간 때부터 이 잡지와 함께해온 오랜 독자들은 "<녹색평론>이 현실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불평하곤 한다.
  
  - 앞에서도 나왔지만 <녹색평론>을 놓고 많은 지식인은 "현실과 괴리된" "뜬구름 잡는 소리"를 17년째 반복한다고 힐난하곤 한다.
  
  "그렇게 얘기하는 이들치고 <녹색평론>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본 이들이 있을까? <녹색평론>을 읽어봤다면 그런 얘기를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의 쇠고기 문제도 그렇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문제를 <녹색평론>처럼 일관된 관점으로 집요하게 다뤄온 잡지가 어디 있나?
  
  지난 17년간 <녹색평론>이 다뤄온 문제들, 지구 온난화가 야기하는 기후 변화, 광우병·조류독감(AI·Avian Influenza)처럼 먹을거리 산업화가 촉발한 전 지구적 전염병 사태, 황우석 사태로 확인된 현대 과학기술의 위기, 한미 FTA로 대표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은 지금 모든 매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를 <녹색평론>만큼 꾸준히 다뤄온 잡지가 또 있는가? 그간 <녹색평론>이 다소 "현실과 괴리돼" 보였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한국 지식사회의 나태함을 증명하는 것인지 모른다. 정작 심각한 문제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관념적 논쟁만 해온 게 바로 한국의 지식사회 아닌가?"
  
  "학술진흥재단 체제, 한국 민주주의에 큰 해약"
  
  김종철 발행인과 <녹색평론>은 대학사회, 지식사회의 위기를 오래 전부터 경고해 왔다. 김 발행인 자신이 지난 2004년 오랫동안 몸담았던 대학을 자진해서 떠나며 '교수' 칭호를 버렸다. 대학 사회가 '지식인'이 아니라, 현실의 삶과 무관한 '기능인'만 조장하는 공간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지식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평소 한국의 지식사회, 대학사회를 비롯한 지식인의 위기를 언급해왔다.
  
  "지식인이 제 역할을 해야 그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민중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의 의사결정이 지식인과 그에 의존하는 정치인, 관료, 권력 엘리트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지 않나? 그런 점에서 나는 여전히 <녹색평론>의 중요한 역할은 그런 지식인에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본다."
  
  - 오늘날 이런 지식인의 위기를 가속화하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문제는 지식인이 풀뿌리 사회, 민중과 유리된 채 정부, 기업, 대학에 고용된 기능인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상업주의로부터 지식인을 보호하는 보루로서 미약하게나마 기능했던 대학이 기업에 예속되거나, 아예 대학 자체가 기업이 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더 심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나는 학술진흥재단 체제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정말 큰 해악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대학교수의 처지를 들여다보면, 임용·재임용, 승진뿐만 아니라 교수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학술진흥재단이 실적으로 인정하는 논문을 쓰는 일 이외에는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대학교수들은 현실을 성찰하고 사회적 발언을 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 <녹색평론>과 같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시간 낭비'로 규정되는 상황이니, 자발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적 토론 공간에 기꺼이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상황이 점점 심화되다 보면 이제 대학과 사회의 연결 고리는 완전히 끊어지고, 대다수 대학교수는 단순한 고급 월급쟁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감수성'"
  
▲<녹색평론선집 2>(김종철 엮음, 녹색평론사 펴냄) ⓒ프레시안

  이런 사정 탓일까? <녹색평론> 목차에서 대학교수의 이름은 늘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인문·사회 영역 잡지 중 시민단체·주민단체 활동가, 농민, 노동자, 그리고 주부 등이 목차에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렇게 현실 문제에 직접 관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많이 싣다보니 "초창기와 비교했을 때 감동이 덜 하다"는 비판도 있다.
  
  - 지난 2006~7년 한미 FTA 문제를 <녹색평론>이 집요하게 다룰 때, 일부 독자로부터 항의를 더러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녹색평론>을 처음 창간하고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화의 광풍이 몰아쳤다. 한미 FTA도 그 연장선상 중의 하나일 텐데…. 그러다보니 <녹색평론> 초창기의 좀 낭만적인 분위기가 많이 사라진 점이 있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생태 영성이라든지, 자연 현상의 신비로움이든지, 종교적인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녹색평론>의 오랜 독자 중에는 그런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차라리 그런 쪽으로 갔으면 지금보다 장사는 잘 됐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은 그런 얘기가 우리의 다급한 현실에서는 너무 한가로운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늘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녹색평론>이 좀 더 현실 문제에 개입하면서도, 여느 시사 잡지와는 다른 근본적이고 감동이 있는 접근을 하는 게 필요할 텐데…, 그런 걸 어떻게 보완할지가 요즘의 고민 중 하나다. 다시 생각해 보면 <녹색평론>을 최초로 접하는 독자도 많이 있을 텐데, 그런 독자에게 초기 독자가 느꼈던 그런 감동을 주는 글을 발굴해서 싣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녹색평론>이 초기 짧은 시간에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위기의 본질을 전한 전략 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가끔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을 전공한 이들의 접근 방법에 나 자신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들도 위기의 징후를 포착한 것 같기는 한데, 정작 그 위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구체적인 실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때마다 현실을 파악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감수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럼 점에서도 앞으로 객관적인 논리와 분석으로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탐구하면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글을 <녹색평론>을 통해 많이 소개하고 싶다. 100호를 내면서, 양과 질 면에서 앞으로 <녹색평론>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이런 부분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녹색평론>의 첫 1년간 실린 글 중에서 말 그대로 '정수'를 뽑아서 펴낸 책이 바로 <녹색평론 선집 1>이다. 이 <녹색평론 선집 1>은 15년 전 발간되었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녹색평론 선집 1>이 '삶의 전환점'이 됐다는 이들의 고백을 염두에 두면 '감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적당한 성장, 불가능하다"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은 올해 초 발행된 <창작과비평> 2008년 봄호(통권139호)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실명으로 거론하는 글을 기고했다('민주주의, 성장사회, 농적 순환사회'). 그 잡지의 청탁으로 이뤄진 그 글은 지식인 사이에서 적잖은 화제가 되었다. 백 교수는 곧 발행될 <창작과비평> 2008년 여름호(통권140호)에 반론을 실을 예정이다.
  
  - 이번 '녹색평론 통권 100호 기념 좌담'을 읽어보면, 앞으로 <녹색평론>이 새로운 지적 담론을 형성하는 토론에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드려는 의지를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이번에 100호를 내면서 지난 17년간 <녹색평론>을 내면서 좀 소극적이지 않았나, 이런 반성을 많이 했다. 지금 한국의 진보적인 지식계에 몇 개의 지배적 담론이 있지 않나? 그런 담론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녹색평론>의 관점에서 비판할 건 비판하고, 수용할 건 수용하는 그런 적극적인 노력을 앞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 극복 논의'나 최장집 교수의 '정당정치의 복원 논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미 백 교수의 경우에는 마침 <창작과비평>에서 청탁이 와서 한두 가지 비판적 지적을 했다. 백 교수가 반론을 한다니 나도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해야 할 것 같다. 최 교수의 경우에는 그의 글을 기회가 되면 한번 찬찬히 검토하고 싶다. 생각이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면, 앞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 논평을 해볼 생각이다."
  
  - 백낙청 교수의 경우에는 <녹색평론>의 논의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백 교수와 <녹색평론>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경제 성장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 아예 경제 성장 자체를 재고할 것인가, 아니면 '적당한' 성장 정도로 타협할 것인가, 이런 논점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녹색평론>은 창간 때부터 줄곧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가난'을 강조해왔다. 자, 생각해보자, 공생하려면 개인 차원이든 국가 차원이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사람, 또는 한 나라가 특권을 누리자고 나서면 당장은 어느 정도의 성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혼자서는 살 수가 없고, 공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공생을 생각한다면 특권적인 욕망과 권력의 추구는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 성장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배타적인 경쟁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논리로는 공생의 삶을 실현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한계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경제 성장은 명백히 지속 불가능하다. 당장 석유 문명의 지속성을 놓고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은 실정이다. 석유라는 게 언제 고갈되거나 경제성이 없는 것이 될지 불확실한 데다, 기후 변화를 염두에 두면 조만간 심각한 규제를 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럼, 태양 에너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 전제 조건이 바로 '가난'이다.
  
  '가난'이라는 말은 다른 게 아니다. 한계를 알자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능한 한 검소하게 살면서, 대신 인간으로서의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성장 논리를 일단 수긍하게 되면, 이런 식의 공생공락의 가난한 삶을 향유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일단 자본주의 경쟁에 뛰어들자마자 끊임없는 성장의 압박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그 결말은 파국뿐이다."
  
  "이상적인 정당 체제, 한국에서 가능하리라 믿는 근거는 뭔가"
  
▲ ⓒ프레시안

  <녹색평론>은 창간 때부터 지속적으로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전제로 하는 자본의 논리로부터 벗어난 풀뿌리 공동체의 복원을 주장해왔다. 이 풀뿌리 공동체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야말로 <녹색평론>이 추구해온 핵심 가치 중 하나다. 이런 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전제로 하는 정당 정치의 활성화를 염두에 둔 최장집 교수 등의 논의와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 최장집 교수나 정치학계의 논의는 최근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정당 정치의 부재에서 찾는다. 그간 풀뿌리 공동체 중심의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녹색평론>은 이런 논의의 한계를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그 문제에 관해서 내가 조만간 본격적인 글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정당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적 입장이 깔려 있다. 즉 '민주적 자본주의'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기본 틀 속에서 민중의 이해를 반영하는 정당이 집권을 하고, 그런 정부가 제대로 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그런 국가가 가능하다는 발상….
  
  아마도 서유럽의 복지국가를 염두에 둔 발상인 듯싶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현재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들 사이의 관계, 즉 전 세계적인 남북문제를 염두에 둘 때, 과연 서구형 복지국가라는 게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모델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전체 지구의 아주 일부분의 나라에서 아주 제한적인 시기에만 가능한 모델이 아닌가?
  
  대안 체제를 논의할 때는 적어도 과연 이 체제가 세계의 보편적 모델이 될 수 있는지,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내가 지금 지향하는 체제가 유럽, 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가능할 수 있는가? 다들 이 체제를 유지하면서 지구 안에서 공생할 수 있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민주적 자본주의는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전 지구적으로 보았을 때 극히 제한적인 지역에서, 20세기 후반 수십 년 동안 지속됐던 모델, 그러면서 그 배후에는 수많은 나라, 민중의 피눈물이 전제가 됐던 모델은 결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안 체제가 아니다. 최소한 지금 논의해야 할 대안 체제는 전 지구를 염두에 두면서 구상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인류 전체가 공생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식인이라면, 적어도 지식인은 세계적인 정의(正義)라는 시각에서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과연 지금과 같은 대의 민주주의가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편적인 양심에 일치하는 세계관을 가진 정당과 지도자에게 권력을 줄 수 있는 구조인가? 지금은 인류의 장래를 생각할 때, 참으로 중대한 위기 국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힘을 가진 나라들-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에서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장악하는 소위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기꾼이거나 탐욕스러운 바보이기 쉽다. 이러한 사람들의 지도 밑에서 지구 사회가 직면한 위기 상황이 극복될 수 있겠는가?
  
  바로 지금과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과가 바로 이런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상적인 정당 정치가 가능할 수 있을까? 아직 내가 깊이 공부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앞으로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당장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실천 있다"
  
  그러나 <녹색평론>과 김종철 발행인은 진보 정당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활동가는 <녹색평론>의 단골 필자이다. 역시 이들에게 공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녹색평론>만큼 주는 잡지는 드물다. 지난 3월 심상정 전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추천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종철 발행인을 고려한 적도 있다.
  
  - <녹색평론>은 항상 진보 정치, 녹색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나는 원론적으로는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가치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중앙 정치를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자본과 결탁해서 움직이는 중앙 정치를 감시하고 바꿔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국민국가 틀 안에서 힘겹게 이뤄낸 최소한의 제도적 민주주의의 성과마저도 수포로 돌아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당에 투신할 수는 없더라도 새로운 흐름에 관심을 가지는 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살길은 다양한 형태의 협업 내지 협동조합 운동을 통한 자치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원래 협동조합 운동은 산업혁명의 와중에 민중의 생활이 피폐해지자 자발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득세하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하면서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실체야 어쨌든 소련, 중국 등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해서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협동조합 운동은 무시를 당했다. 그러나 이제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이 협동조합 운동 논리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도 이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한국에서 어떻게 사회주의나 공동체주의적 이상을 가지고 있는 정치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패배주의적인 얘기가 아니라 국가를 장악해서 사회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사고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새로운 억압 체제를 낳는다는 것을 똑똑히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령 협동조합 운동이나 자주적 생활 공동체 운동 등 자치 운동을 시작하면 당장 그 일을 꿈꾸는 순간부터 우리는 자유인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서 같이 그 운동을 하는 데서 오는 행복과 기쁨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마르크스도 얘기했듯이, 우리가 물건을 풍부하게 소유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인간됨을 풍부하게 하는 게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이다. 그러한 의미의 풍요로운 삶을 협동적 생활운동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다.
  
  물론 국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그것으로 인한 고통과 억압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여, 당장 여기서 자유인으로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결코 버릴 수 없는 꿈이고, 적어도 내 경험과 생각으로는 유일한 활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간디가 생각했던 마을 중심의 정치 구조, 그것과 유사한 형태일 것이다. 나는 간디가 생각한 마을 중심의 정치 구조가 어떤 식으로든 부활해야 인류의 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도시 속에서 익명적 존재가 아니라, 마을 속에서 주체적인 개인으로 이웃과 더불어 삶을 즐기면서 사는 그런 사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각성한 개인이야말로 '희망의 근거'다"
  
▲ ⓒ프레시안

  김종철 발행인은 대학을 떠난 후 지난 2004년부터 매주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을 꾸려오고 있다. 이 모임은 벌써 4년째 꼬박꼬박 진행하고 있다. 그는 <땅의 옹호>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 모임을 통해서 대학 생활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 그러나 오늘날 원자화된 개인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다. 그들이 과연 그런 제안을 수용할 수 있을까?
  
  "결국 사람들이 각성해야 한다. <녹색평론>은 이런 바람을 가지고 17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의 현실을 보면 대기업, 소수 기득권층 등 인류 전체로 보면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단기적 이해관계를 배타적으로 추구하면서 대다수의 인류가 노예처럼 살고 있다.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 일인가?
  
  한편으로는 그 특권적인 부류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장기적으로는 공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성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많아지면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혼자만 각성한다면 외롭다. 외로운 사람은 쉽게 절망하고 무력감에 빠진다. 각성한 사람들이 연결이 돼야 하고, 동지가 돼야 한다.
  
  <녹색평론>은 바로 그런 이들의 희망의 근거가 되고자 노력했다. 앞으로도 <녹색평론> 또는 <녹색평론>과 같은 이상을 가지고 실천하는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각성하고, 연대하는 독자들이 바로 절망의 시대에 희망의 근거가 될 것이다."
  
  지난 17년간 <녹색평론>이 바라본 세상은 결코 밝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녹색평론>을 꼬박꼬박 찾는 6000명의 독자는 이 잡지를 통해 연결되는 수많은 '희망의 근거'를 통해서 절망의 시대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세상은 딱 그만큼 밝아졌는지 모른다. 김종철 발행인은 '100호를 내면서'에서 이렇게 썼다.
  
  "창간 초기부터 우리는 그동안 이 사회의 저변에 결코 무시 못 할 어떤 정신적 갈증이 잠재되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갈증을 느껴온 사람들은 <녹색평론>에서 불충분하게나마 위안을 얻고, <녹색평론>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적 동지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었다."
  
"장일순, 권정생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김종철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프레시안

  녹색평론사는 단행본을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 이 출판사는 이번에도 <녹색평론> 100호를 기념해 <땅의 옹호>,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와 <녹색평론 선집 2>를 펴냈다. 앞의 두 권은 김종철 발행인의 글을 모은 것이고, <녹색평론 선집 2>는 제7호(1992년 11·12월호)부터 제26호(1996년 1·2월호)에 실린 글 중 일부를 묶은 것이다.
  
  이 출판사에서 펴낸 책들은 상업적인 고려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광고를 따로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입소문만으로 눈 밝은 독자가 찾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지음), <녹색평론 선집 1>,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최성현 옮김) 등은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녹색평론> 외에도 단행본을 내고 있다. 어떤 책이 첫 단행본인가?
  
  "창간호부터 제6호(1992년 9·10월호)까지 실린 글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글을 뽑아서 엮어낸 <녹색평론 선집 1>을 1993년 3월에 펴냈다. 처음으로 낸 단행본이었는데, 독자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계속 선집을 펴낼 생각으로 '1'을 붙였던 것인데, 17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됐다. 연말까지 한 5권 분량으로 선집을 계속 펴낼 예정이다.
  
  <녹색평론 선집 1>을 제외하고는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 실질적인 첫 단행본이다. 그리고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두 번째로 펴냈다. 장일순, 권정생 두 분은 일리치, 간디와 더불어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바를 말·글과 삶을 통해 몸소 실천한 이들이다.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그들의 책을 낸 것은 또 다른 큰 보람이다.
  
  - 마침 권정생의 1주기다. 고인의 생전에 깊은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 스승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대한민국에서 그가 '제일 무서운 양반'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 가지 일화를 말하자면 이런 게 있다. 어느 날 그가 툭하고 이런 얘기를 던지더라. 한창 퇴계 이황이야말로 한국의 유일무이한 대사상가라고 주목하던 때였다. "퇴계 집에 노비가 150명이나 있었다고 합디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노비는 생산에 동원되지 않으니, 그 노비까지 먹여 살리려면 퇴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소작농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 한 마디로 퇴계 학문의 관념성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를 만나서 얘길 할 때마다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는 늘 나보고 글을 쉽게 쓰라며 번역투 문체를 비판하곤 했다. 그런데 문체를 바꾸는 게 어디 쉽나? 결국 아직도 그의 충고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진심을 담아 해주는 사람을 앞으로는 결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정말 큰 스승을 잃었다. 그나마 1주기에 맞춰 그의 유고를 모아 <우리들의 하느님>의 개정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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