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때 나는 '지구과학' 선택이었다. 하지만 1.2 학년때는 '화학'을 배워야 했다.수업은 거의 3분의 1만 하고 나머지는 자습이었다. 어차피 대입에 선택과목이 아니었으니까...어쨋거나 나는 화학이 싫었다. 내가 고등학교때까지 얻은 점수중에 가장 낮은 점수가 화학과목에서 나왔다.^^

지금도 인문.사회과학에 비해 자연과학과 좀 거리가 있다. 나는 '상대성 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 이 정확히 뭔지 뭐가 다른지..그리고 그것이 만든 세계관의 변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른다. 최근에 뉴스위크 비스무리하게 생긴 단행본으로 나왔던데...자연과학 공부 좀 해야겠다.

<잡식성 동물의 딜레마>를 읽다가 '프리츠 하버' 라는 이름을 오늘 처음 알았다.저자는 프리츠 하버가 우리에게 질소를 고정시키는 능력을 주었을 때 '인간은 자연과 파우스트적 거래'를 한것인지도모른다라는 지리학자 바클라프 스밀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프리츠 하버(1868-1934)---네이버에서

독일의 화학자.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해서 현대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화학적 업적을 남긴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물을 전기분해해서 얻은 수소와 공기 중의 질소를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철 촉매를 이용하여 반응시킴으로서 암모니아를 얻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은 퇴비와 천연 비료에만 의존하던 농업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량을 6배 이상 향상시키는 데에 핵심적인 기여를 함으로써 수십 억의 인류를 굶주림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래서 "공기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의 발명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하버가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한 것은 이처럼 좋은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독일은 남미의 칠레에서 생산되는 칠레초석을 수입해서 전쟁에 필요한 폭약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때 개발된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은 독일 군에게 연합군에 대항할 수 있는 화약을 제공해줌으로써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더 오래 연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암모니아 합성법에 대한 과학적 가치는 인정을 받아서 191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독일에 대한 하버의 충성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인류 최초로 전쟁에서 사용할 살상용 독가스를 개발한 화학자로도 유명하다. 그가 개발한 염소 가스는 1915년 벨기에 전투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어 가공할 화학무기의 개발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버는 자신이 개발한 독가스가 얼마나 위험스럽고 반인류적인가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이 신뢰하고 충성하던 독일 정부 지도자의 몫이라고 선언해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민족을 배반하고 독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던 하버 였지만,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의 비극은 1933년 반유태인 사상을 가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은 충성스러운 독일인임을 믿고 있던 하버를 히틀러 정권은 "유태인"으로 낙인찍어 버렸다. 1933년에 어쩔 수 없이 실험실을 떠난 하버는 같은 유태인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에게 "내 평생에 지금처럼 유태인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편지를 보내고 영국으로 이주했지만 다음해에 스위스로 가던 중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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