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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의 귀환
샹탈 무페 지음, 이보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07년 11월
평점 :
역사는 자본주의에 경도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끝이 난 것 처럼 보인다.최근의 신자유주의는 초기 상인 자본주의의 재도래인 양 역사가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적 전통 마저 숨통을 조은다.한국의 상황은 '실용주의'라는 외피를 둘러쓴 이런 '신자유주의'의 클론에 지나지 않는다.실제 좌파라고 할 수도 없는 구정권에 남의 옷을 입히며 이제 유일한 징벌자로서 역할을 자임한다.그 징벌자의 헤게모니는 다른 모든 가치있는 논의를 '구태'와 '구습'이라는 단어로 독점해 버린다.
유구한 전통의 자유민주주의의 천칭은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기울어졌다.누가 그랬는가?
2차 세계대전 중 한 독일 장교가 피카소의 작업실을 방문했다.그곳에서 독일 장교가 피카소의 걸작<게르니카>를 발견하고는 다음과 같이 피카소에게 물었다. "당신이 한 것이오?" 이에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니 바로 당신이 한 짓이오. .....지젝 <혁명이 다가온다>중....
자유 민주주의의 전통을 무너뜨린 것은 좌파가 아니다.한국에서 좌파는 이론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것이 궁극적 대안이 아님을 말했을 뿐,실제 자유민주주의를 흔들만한 힘을 가진적이 단 한번도 없다.그렇다면 누가 흔들었는지는 명약관화하다.당신들이 입고 있는 그 옷은'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무엇일 뿐이다.무페는 말한다."그 모든 거짓 딜레마는 특정 환경들 속에서는 함께 접합되었지만 필연적으로 관계가 없는 일련의 서로 다른 담론들을 '자유주의'의 용어 아래 융합한 결과이다."
시대가 암울하다는 불평과 자조가 주위에서 많이 들린다.이것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다.그것이 역사의 종말이 아님은 역사가 스스로 이야기해주고 있다.우리는 한숨과 실망으로 열려 있는 역사라는 강물에 허무의 방파제를 알아서 세울 필요가 없다.
칼 슈미트의 '정치'와 '정치적인것'
상탈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은 먼저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구분을 요구한다.일단 무페의 선행적인 전제가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부재로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전자는 '제도로서의 정치'다.우리가 뉴스에서 만나며 말그대로 '정치'(politics)라고 믿는 그것이다.그렇다면 '정치적인 것(the politcal)'은 무엇인가? 이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나치 협력자였던 칼 슈미트에게서 빌어온다.('나치' 그러니까 또 '생각의 얕음'을 드러내는 질문을 또 하고 싶지? )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을 인간 사회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규정이라고 말한다.그것은 '적대'와 '친구'로 나뉠 수 밖에 없는, '갈등'과 '분열'의 영속적인 상태를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대다수의 '자유주의자'들은 이 지점에서 깜짝 놀란다.'적의'라는 개념이 그들에겐 낯설기 때문이다.무페는 자신의 '급진적인 자유민주주의 기획'의 주요 비판의 대상이 될 '자유주의'적 사유가 '대중들'이 표출되어 나타나는 정치 운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그들에게 이것은 병리적인 것으로 분류되거나 비합리적인 힘들의 표현일 뿐이다.무페의 기획은 여기서 시작된다.즉 정치적인 것이 필연적이며 적대가 없는 세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그리고 이 조건 하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질서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법이 그녀의 관심 주제이다.
아..무페의 자상함을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자
무페는 '적'이란 말에 '붉은 기'를 연상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을 위해서 친절하게도 '적'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준다.(핵심은 그 '적'이란게 '인민재판 기소자'가 아니라는 뜻이다.그러니'적','적대','적의' 이런 학술적인 표현이 나오더라도 겪어보지도 않았을 '한국전쟁'의 기억은 잠시접고..붉은 깃발 좀 떠올리지 말자..제발 좀..무페 말에 따르면 그런 자가 진짜 '적이다')
'이런 질서를 위해서는 '적'과 '반대자'를 구별해야 한다.그것은 정치 공동체의 맥락에서 대립진영을 파괴해야 할 적이 아니라 그 존재의 정당성을 용인해야 할 반대자로 고려하기를 요구한다.우리는 반대자의 생각에 맞서 싸울 것이지만 그들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적'의 범주는 민주주의적 '게임규칙'을 받아 들이지 않아서 정치 공동체에서 스스로 배제된 사람들을 가르킬 때는 여전히 타당하게 남아 있다.<정치적인 것의 귀환>에서 몇 줄 밖에 할애되지 않은 내용인데 이렇게 낭비적인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쯥 하다.)
롤즈의 <정의론>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비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허술한 합의 형태로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통명사처럼 사용된다.하지만 이 두 개념은 상호 배치되는 가치관이다.칼 슈미트나 이사야 벌린 같은 학자들이 오래전에 제기한 주장이다.이제는 거의 상식적인 개념이다.흔히 자유주의하면 '개인의 자유'를 말하지 않는가.슈미트는 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는 특정 가치관을 형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즉 모든 것이 개인에서 시작해서 개인으로 끝나야하는 것이 진정한 개인주의이고 이것은 정치적인 것을 부인할 수 밖에 없다.그런데 '민주주의'는 어떤가? '대의제'로 대표되는 '민주주의'는 불행히도 '개인의 선택'을 그대로 반영해 주지 않는다.초등학교에서도 배우는 내용인다.예를 들어 나는 '진보신당'을 지지한다.그래서 그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다.그런데 우리 동네에 '진보신당' 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선거에서 나의 정치적 자유 의지는 소멸되는 것이다.물론 다른 대타를 구할 수 도 있다. 그런데 그건 차선의 선택이지 진정한 의미의 내 '개인의 정치적 자유'의 의사표현은 아니지 않은가? '
무페는 가장 진척된 형태의 자유주의 교과서라 할 만한 존 롤즈의 <정의론>을 텍스트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의무론적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을 한다. 물론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좋음보다 옳음의 우선성' 이 야만적 신자유주의에 대한 방어적 테제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무페도 그 장점은 장점 대로 인정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롤즈식의 '정의'만 구현되어도 지금 보다 한결 나아질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롤즈의 <정의론>이 갖고 있는 이론적 한계를 지적한다. 롤즈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이익에 근거하여 이를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공유해낼 합의를 중요시여긴다.그는 이 시민 대중이 갖는 공통의 직관적인 도덕관념을 이미 '선험적 전제'로 상정하고 논리를 전개한다.그에게 '목적론적 자유주의자'라기 보다는 (칸트적인 의미의)'의무론적 자유주의자 '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결국 롤즈는 '도덕의 담론'과 '정치의 담론'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슈미트는 그래서 '자유주의적 개념들이 전형적으로 윤리학과 경제학 사이에서 움직인다'라고 말했다.그럼 '정치'가 '도덕'과 분리될 수 있느냐는 문제남는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둘의 일치를 주장했다.그러나 근대 정치의 정초자로 보는 마키아벨리는 달랐다.그의 <군주론>이 갖는 중요 미덕은 '정치'와 '도덕'을 분리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후 근대 정치는 그 지평 위에서 발전 되어 왔다.왜 마키아벨리가 중요한지.. <군주론>을 단순히 '국왕 독재 지침서'만으로 읽어서는 안돼는 이유가 그런 맥락 속에 있다.
또한 롤즈의 <정의론>은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사소화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또한 도덕관념에 바탕을 둔 '합의'문제에 있어서 '구성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롤즈에게 평등과 자유는 도덕적 인격체들로서의 인간 속성이다.그리고 이것은 이성에 바탕을 둔 직관에 기초한다.하지만 왜곡되지 않은 '합리적 소통'과 '합리적 합의'에 기반을 둔 사회적 통일성에 대한 열망은 사실은 반정치적이다.과연 우리는 '왜곡되지 않은 도덕적 인격체들의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신그람시주의자로서 무페의 헤게모니적인 주체를 만날 수 있다.
또한 무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전통에서 자유주의와 항상 맞서 왔던 공동체주의자(공화주의자.공리주의자)들에게도 비판을 가한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이 전통적인 대립은 미국 건국 이념에서 갈등 양상을 빚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맥킨타이어나 샌들같은 이들이다.무페는 먼저 롤즈의 <정의론>에 대한 공리주의자들의 비판을 소개하고 그 비판이 담고 있는 또 다른 한계를 지적하는 형식을 따른다.공리주의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 또한 다양해서 한 그릇에 담긴 어렵다.무페는 자신이 마르크스를 떠났던 같은 이유로 공리주의가 가진 '공동체의 선'이라는 '본질주의'에 대해 비판을 한다.기본적으로 공동체주의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을 소환한 것이다.이런 시민 공화주의적 전통은 '구성적 공동체'를 말한다.시민이 참여자로서 정치 공동체에 통합되는 것이다.참여정부가 있었을 만큼 '정치공동체의 참여'를 일종의 선으로만 여기는 한국의 진보주의 입장에서는 이게 뭔 문제가 될 까 하고 말할 수 있다.문제는 시민공화적 전통의 참여의식은 개인적 자유의 희생을 담보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또한 '확실성의 표지'가 사라진 시대에 '본질주의'로서 비판 받을 여지가 있다. 무페의 비본질주의적 정치관으로 보면 시민 공화주의의 단일하고 실체적인 공동선 관념은 현대 정치의 특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일뿐이다.물론 무페는 정치와 윤리의 끊어진 고리를 연결하는 것 자체에 부정적이지는 않다.대신 그것이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물을 희생해가면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페는 오크쇼트의 "소키에르타스'의 관념을 이용하여 비본질적인 개인들이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결합으로서의 결사체를 적절한 것으로 본다.중요한 점은 절대적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하에서 분화된 주체들 사이의 관계를 중심점으로 한 구성이라는 것이다.웃자고 예를 들자면... 두산 베어스와 짜장면을 좋아하는 A와 롯데 자이언츠와 짜장면을 좋아하는 C는 결사의 형식을 이루어낼 수 있다.둘다 짜장을 좋아하니까...삼성 라이온스와 짬뽕을 좋아하는 C는....어떡게 하냐구? 피식..상상력을 동원하쇼.사실 B는 축구팀 FC서울을 좋아하고 C도 축구팀은 FC서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무페는 근대적 형식의 정치 결사체가 공동선이라는 실체적 관념이 아니라 공동의 유대,공동의 관심사에 의한 결합이라고 말한다.따라서 이것은 규정된 형태나 유대 없이 끊임없이 새로 제정되는 공동체이다.이것은 전근대적 공동체와도 자유주의적 공동체와도 다른 형식인 셈이다.이런 소키에르타스 개념은 다원주의와 개인적 자유를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규범적 측면을 사적 도덕의 영역으로 나몰라라 하지 않는다.무페는 오크쇼트가 이런 소키에르 관념을 '공통의 언어'라는 보수적 개념으로 풀이한 것에 반하여 '갈등과 적대'의 모델을 도입하여 재전유할 것을 주장한다.
무페의 급진적 자유민주주의 기획이 어떤 정체를 띄는가를 찾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이는 다른 이론들이 그렇듯이 동시대의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의미이다.무페의 의도는 "현대 민주주의의 본질로 구성된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어느 정도까지 다원주의를 옹호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그녀는 자유민주주의의 체제의 역사적 성격을 끌어안는다.특히 구좌파에게 부르주아 정치 체제를 옹호하고 사탕발림해버린 것으로 비유되곤 하던 자유민주주의의 미덕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하지만 그녀는 자유민주주의의 전통이 가지고 있는 '본질주의' '도덕주의' '허구의식' 등을 해체하길 제안한다.그 대신 '합의'와 '안정'이라는 도달할 수 없는 가치에 매달려서 자기모순에 빠진 자유민주주의를 '갈등'과 '불확정성'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그렇듯이 '정치적인 것'을 귀환시켜야만 비로소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이론의 핵심은 인간은 부조화상태를 조화상태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무페는 역설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을 구현하려고 하지말고 '부조화'와 함께 뒹굴라는 것이다.(이미 책상 줄 안맞는게 불편해 미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사회를 보호하고픈' 분들.)
'긴장'-이것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간의 긴장이거나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원칙간의 긴장이다-이야말로 현대 민주주의 기획이 다원주의와 더불어 풍부해지고 살아 있을 수 있는 최상의 보증물이다.이 긴장을 해소하려고 욕망한다면 정치적인 것의 제거와 민주주의의 파괴만을 이끌어 낼 뿐이다.
P.S) 이 책은 여러 논문을 합쳐 놓은 것이라서 중복되는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결과적으로 선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책 전체를 볼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꼼꼼히 몇 챕터만 읽어도 충분할 수 있다...처음에는 서로 서문도 써주고 친했다던 라클라우,무페 친구와 지젝이 점점 멀어지는 이유를 얼핏 알 것 같다.누군가 묻는다....무페는 빨갱이냐? ....자유민주주의를 보존하고 지키자는데 그게 빨갱이냐...하지만 그녀는 넓은 의미의 좌파다.(신사회운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해가 안갈 것이라고 생각한다.왜냐하면 그들에겐 제도주의자 '장하준'같은 이들도 좌파,빨갱이이기때문이다.진짜 오랜만에 '빨갱이'란 말 써본다.언제부턴가 이 단어가 다시 오르내리기 시작한다.아름다운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