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2평 방안 외로운 투병 ‘어서 춤춰야지’
‘곱사춤 1인자’ 공옥진씨 1년반째 병석에
 
 
한겨레 이상기 기자
 








 

» 공옥진씨가 살고 있는 전남 영광읍 교촌리 ‘예술연수원’에 걸려 있는 1980년대 전성기 때의 곱사춤 공연 사진. 오래도록 투병 중인 공씨는 자신의 모습은 물론 예술원에 걸려 있는 사진을 찍는 것도 한사코 말렸다.
 

교통사고 후유증…말할때마다 가쁜 숨
“내 춤은 곱사춤…병신춤 비하해 화나”

1970~80년대 배꼽이 빠질 듯한 익살과 천연덕스런 몸짓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곱사춤의 1인자’ 공옥진(77)씨. 그가 1년6개월이 넘도록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전남 영광의 한적한 마을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재작년 가을, 집 앞을 나서다가 차에 치여 갈비뼈 3개가 부러지는 바람에 지금까지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27일 낮 영광읍 ‘영광예술연수원’을 겸한 그의 자택에서 공씨는 2평 남짓 방에 누워 배에 핫백을 올려놓은 채 기자를 맞았다. 머리맡 거울엔 1995년 제자들과 공연 뒤 찍은 사진과 이곳 지역구 국회의원이 보낸 연하장이 끼어져 있었다.

그는 “어제 병원 갔다오는 길에 멍게하고 석화가 맛있어 보여 5천원어치 사다 먹었는디 탈이 났어. 몸이 예전 같지 않어”라며 담낭과 간의 담석제거 수술 자국을 보여주었다. 10여년 전엔 중풍도 맞았다고 했다. 하지만 얼굴과 손엔 주름살도 거의 없어, 10대 소녀처럼 고았다.

공씨는 숨이 가쁜 듯 기자가 말을 걸면 두 마디쯤 대답하고는 “힘들어, 이따 해” 하며 눈을 감곤 했다. 하지만 서울서 먼길을 달려온 기자한테 미안해서인지, 교통사고 때 뒷바퀴에 깔린 왼발이 지금도 쑤시다면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로 옆 전수관으로 안내했다. 20평 남짓 공간은 ‘대한민국 최고의 춤꾼’ 공옥진의 공연 사진과 각종 의상, 기념품들로 장식돼 있었다. 그가 춤과 소리를 가르치는 곳이다.

“쩌그 붉은 천에 쓴 글씨 보이오? 93년에 중국서 받은 거신디...” 그는 중국 순회공연 때 받은 작은 휘장 선물을 무척 아끼는 듯, 사진에 담으려는데 극구 말렸다. “여그 있는 것 어떤 것도 찍지 마시오. 지금은 내가 아프고 힘든께. 담에 낫거든 다시 와 찍으쇼. 미안허요, 잉.” ‘사진촬영 불가’가 그렇게 단호하고 절실할 수가 없다.

다시 방으로 옮겨온 그는 기력만 된다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사람들은 내춤을 병신춤이라고 하는데, 그거 아니여. 곱사춤이여. 동생이 벙어리고 조카가 안팎곱사등이 병신인디, 내가 왜 병신춤을 추겄어? 그런 사람들 위로하려고 춘 건디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내 춤을 병신춤이라고 비하해서 그렇게 알려졌어, 잘못된 거시여.” 그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분이 나고 화가 난다”고 했다.

춤 이야기가 나오자 공씨는 흥이 돋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한 공연을 기억해 냈다. “대구 지하철에서 큰 사고가 났을 때 살풀이 춤을 추었지.” 노 춤꾼의 기억은 하나둘 확장됐다. “대학생들하고 300번도 넘게 공연했어. 데모 학생들이 잡혀가면 경찰에 부탁해서 풀어주기도 많이 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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