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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바덴에서의 여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평점 :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짧은 소리로 '쎄울.." 이라고 외쳤던 것이 27년 전 일이다.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시간이 아무리 빠르다고 하더라도 27년 전이라니.갓 태어난 아기가 애아빠될 시간이다.하기야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88 올림픽 굴렁쇠 소년' 기억나며고 물어보면 '잘 모른다'는 대답을 많이 듣는다.지금 대학생들이 한 두 살 먹었을 때 올림픽이 열렸으니 '호돌이'를, '굴렁쇠'를 알 턱이 없다.그들은 가끔 TV자료 화면에서 '서울 올림픽'을 봤다고 말한다.
뜬금 없이 사마란치와 서울 올림픽을 떠올린 곳은 그가 '쎄울'을 외쳤던 곳이 '바덴바덴'이기 때문이다.이 책의 주인공인 전설적인 토스토예프스키가 향하는 곳이기도 하다.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에는 서로 다른 두 여행이 교차한다.이 두 여행은 서로 만날 수 없다.시간과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다.한 여행은 바덴바덴을 행하고 또 다른 여행은 100년쯤 후에 샹테페테르부르크를 향한다.
러시아를 떠날 수 없었던 의사 치프킨이 '나'가 되어 소설 속의 화자로 등장한다.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흔적을 찾는 여행자이다.소설은 화자인 '나'의 이야기와 실제 회고록에 도움을 받아 재구성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을 재구성한다.소설가가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또 소설의 대상이 소설가인 셈이다.작가 치프킨은 영원한 동토의 빙하 속에서 신비롭게 잠들어 있는 거장 토스토예프스키에게 훈기를 불어 넣는다.그의 훈기를 받은 토스토예프스키는 '못말리는' '어처구니없는' 또한 '슬프고도 아픈' 한 피조물이 되어 책 장 사이를 넘어 다닌다.살아난 토스토예프스키는 도박장을 뛰어 다니고 아내에게 돈을 구걸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질투로 반쯤 실성을 하고 유형지에서 겪은 모멸감에 치를 떤다.그 뿐이 아니다.세상으로 인정받기 위해 평론가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또 그들의 무관심에 발끈하여 팔짝 팔짝 뛰어다닌다.때로는 자기를 학대하고 때로는 자기의 자만심에 뿌듯해 한다.
나는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이런 인물들이 좋다.분열적인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뭐라 한가지 잣대로 잡아 넣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들 말이다.물론 '명명백백' 정도만을 걷는 인물들을 만나면 그에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다들 옮바르고 인간을 초월한 듯한 의지를 보여준다.다들 의지들은 얼마나 강한지...거기에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업적까지 보태지면 모두 모두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춘다.문제는 대개 그런 인간들이 좀 심심하고 그걸 떠받드는 사람들도 심심하긴 마찬가지라는데 있다.
재미있는 인간들은....그러니까 밀로스 포먼의 영화<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차르트같은 인간들이다.또 영화<불멸의 연인>,<카핑 베토벤>등에 나오는 '괴팍한 노인' 베토벤 같은 사람들이다.연암 박지원 같은 노인네들도 재미있지 않은가? 미셀 푸코같은 인간들 흥미진진하다.시대의 바람둥이이자 죽음과 늘 손잡고 다니던 로버트 카파같은 사람들은 어떤가? 또 전장에서 시집을 읽어 대던 핸섬가이 체 게바라 같은 인간들도 마찬가지이다.
고리타분한 양반들은 이 '뒤틀림'의 재미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바른 생활 사나이들...^^ 아주 바람직하거나 뒤돌아서면 진상이거나 둘 중에 하나는 할 것 같다.
하여간 소설<바덴바덴에서의 여름>에 등장하는 토스토예프스키는 '어처구니'없는 남자이다.그의 '어처구니없는' 반복되는 행각들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다.아이같다고 해야 하는게 딱 맞다.다괴팍하고 가련한 러시아인은 거기에 '반유대주의자'이기도 하다.정치적 옯바름을 이야기해야한다면 토스토예프스키는 '꽝'이다.작가 치프킨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 유태인이다.이런 딜레마를 두고 치프킨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질문을 던진다.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답변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조금은 뻔하고 날카로움을 잃은 답변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에 대한 소개에서 이 소설이 러시아 문학 전통에 대한 두 가지 논쟁을 재현한다는 글을 읽었다.뭐 대단히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지만 상식선에서 말하자면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의 갈등이다.이건 러시아의 모든 예술장르와 일상영역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러시아의 변방성과 독자성 사이의 밀물과 썰물같은 갈등이다.치프킨은 이 책에서 도스토예프스키와 투르게네프의 대립으로 이 두 기둥의 이야기를 건넨다.그리고 시대를 훌쩍 넘어 이 영상은 솔제니친과 사하로프의 대립구도로 형상화된다.이런 대립 구도는 만들려고 하면 근대 러시아 예술의 지형도 속에 전부 넣을 수 있을 법도 하다.환원론의 오류를 범하겠지만 말이다.소설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서구파 투르게네프에게 가급적 잘 보이려고 애쓴다.그렇지만 욱하는 그가 투르게네프의 은빛 안경 너머의 조롱에 찬 눈빛을 계속 견딜 수는 없었을 것이다.
"파리에 가서 망원경을 하나 사서 그걸로 러시아를 자세히 보시지요"
소설 속에서 투르게네프는 권력과 부가 있으며 예의 바르고 신사답다.반면 도스토예프스키를 도박꾼에 가난하고 적당히 비굴하다.거기에 컴플렉스 덩어리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직접 만난다면 누구를 더 좋아할까?
이제 우리는 보험 드는 셈치고 실제 도스토예스스키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좀 너그럽게 봐주자.그가 언젠가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가 있는 '돌아이'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실제 투르게네프보다 토스토예프스키가 더 유명하지 않은가? .
도스토예프스키 ...절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하고 용서빌고 후회하고 섹스하고 질투하고...휘청거리고 잘난 척하고....그림을 보고....글을 쓰고....도박을 한....인간아.당신을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책 서문에서 수잔 손택은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을 가르켜 '지난 한 세기의 소설과 범소설(parafuction)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며 창조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 중에 하나'라고 말한다.가장 아름다운 성취인지는 모르겠으나 재미있는 작품은 확실히 맞다.
요즘 모 항공사에서 러시아 취항 광고를 하던데....
액설런트 인 플라이트....러시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