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라캉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봄 날도 아닌데 아지랑이가 보인다.올해 처음 읽었던 책 때문이다.라캉과 그의 친구로 인해 겨울 날, 책 장 속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때문에 눈 앞이 희뿌였다.무자년에는 슬라보예 지젝의 책을 읽어보려고 생각했다.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을 접해보지 않았다.그래서 지난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다음해의 독서계획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내년에는 지젝을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다.처음으로 만만해보이는 <how to>시리즈를 골랐다.지젝의 별명은 '라캉의 전도사'이다.결국 라캉을 알아야 지젝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그런데 이 시리즈의 라캉은 공교롭게도 지젝이 썻다.그러니가 화투로 치면 '일타이피'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런데 잘못하면 일타이피 하려다가 확싸버려서 남 좋은 일 시켜 줄 수도 있는 법이다.)그러나 역시 욕심이다.이 책은 결코 라캉에 대한 친철한 개론서가 아니었다.

이 책은 <how to>시리즈 답게 가벼운 분량이다.그런데 왠걸 이 책을 읽으며 한 챕터를 서너번 읽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대중문화를 이용한 지젝의 비유는 그럴싸 했지만 결국 라캉의 개념형들을 살펴보고 이해하지 않으면 읽기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라캉의 욕망의 삼각형 같은 것을 그리는 수준으로는 지젝이 설명하는 지젝식 라캉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그래서 읽던 책과 동시에 10여년 전에 개론 수준에서 봤던 권택영 교수의 <대중문화로 라캉읽기>라는 글을 다시 꺼내 읽었다.결국 두 가지 글을 동시에 본 셈이 되어버렸다.결과적으로 이 책으로만 한정하자면 결코 기획의도처럼 친철한 가이드 북이 되지 못한 셈이다.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오래전에 지젝의 입김을 맛봤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는 것이다.권택영 교수의 글 아래 작은 주석에서 지젝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십 여년전에 라캉을 읽으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을 뿐,아래 있는 작은 주석까지 눈여겨 보지는 않았다.그리고 설령 보았다 하더라고 한참 뜨기 시작하는 지젝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진 못햇을 것이다.권택영 교수는 자신의 글이 최근 라캉의 해석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지젝의 접근을 많이 참고 했다고 발혔다.그러니까 두리뭉실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미 십 여년 전에 지젝의 글을 한번쯤은 접했던 셈이다.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라캉이 만만치 않기는 피차 일반이다.그나마 다행이라면 좀 어렵고 확실히 와 닿지 않아도 계속 읽어볼 동력이 충분하고 그만큼 엉덩이가 무거워졌다는 것 뿐이다.물론 더 직접적인 것은 예전만큼 나를 재미있는 일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색.계>를 라캉식으로 분석하는 글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아직 찾아 읽어보진 못했다.)또한 영화를 둘러싼 영화 외적인 현상까지 말이다.영화 <색.계>는 사실 섹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닌데도 파격적인 섹스씬때문에 더 화제가 되었다.그리고 그 결과 낮시간 대에 중장년층 아줌마 관객들을 동원해서 나름대로 흥행몰이를 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영화를 보고 나서 커피숍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호들갑 떨며 "그런 자세가 가능이나해?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들 한다.영화 <색.계>에서 충돌되던 감정들과 욕망들,사건의 전개방식에서 응용되는 테마들은 라캉의 개념들로 분석하기 용이해보인다.물론 이미 많은 평론가들이 했겠지만...

뭔가 정리된 리뷰를 좀 써보려했는데 능력 밖이기도 하고 지금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만두기로 했다.올해 지젝을 읽다보면 지젝처럼 한 이야기 또 하고 한 이야기 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고 LP시리즈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를 보고 있는데 역시나 이 책에 나왔던 지젝의 인용과 예들이 여러번 재탕되고 있다.이 뿐 만이 아니라 그의 주요저서들에서도 그렇다고 한다.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다.반복학습의 효과로 뭔가 하나쯤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니 말이다.책 장을 한 장 넘길 때 마다 고민해봐야 하는 수많은 정보들로 인해 피곤하기는 하다.너무 많은 정보가 결국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의 번역이 좋았는지는 사실 내 영역 밖이다.어려우면 내용이 어려워서인지 안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그럼에도 약간 뻑뻑한 부분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지젝의 말 중에서 한 두마디를 적어보면서... 오늘은 여기까징..

"라캉의 주체는 언제나 탈중심화 되어 있다.그의 요점은 내 주관적 경험이 자기 경험 외부에서 내 통제를 넘어서는 객관적이고 무의식적인 매커니즘으로 조종된다는 것이 아니라,훨씬 전복적인 것이다.즉 나는 내 가장 내밀한 주관적 체험,사물이 '실제로 나에게 보이는'노습,내 존재의 핵심을 구성하고 보증하는 근원적 환상을 빼앗기게 된다.왜냐하면 나는 결코 그것을 의식적으로 경험하지도,확신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보 정치의 많은 부분에서 직면하는 위험은 수동성에 있는 게 아니라 유사 능동성,즉 활동과 참여의 몰입에 있다....실제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하기 위해 항상 활동 중에 있는 이런 상호 수동적 상황에 맞선 비판의 첫걸음은 수동성 속으로 물러나는 것,참여를 거부하는 것이다.진실한 활동,즉 좌표계 전체를 실질적으로 바꿀 그런 행위의 토대를 밝혀 준다."

"라캉에게 궁극적인 윤리적 과제는 진정한 깨어남이다.단지 수면으로부터의 각성이 아니라,깨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우리를 지배하는 환상의 주문에서 깨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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