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전면개정판) -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옮김 / 시유시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맥도날드는 어디에..

십여년 전 이야기다. 6시간의 비행은 계절을 바꾸어 놓았다. 시드니 공항은 드꺼운 여름의 열기 아래 있었다.나의 양 손은 이미 무거웠다. 거대한 슈트 케이스에 빼았겨 버렸기 때문이다.한국에서 입고 있던 네이비 코트는 어깨에 걸칠 수 밖에 없었다. 필리핀 인으로 보이는 택시 기사가 운전한 차를 타고 처음 가는 목적지로 향했다.제대로 영어학원 한 번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메모해온 주소 덕에 목적지를 알리는데 어려움은 없었다.그러나 낯선 곳에서는 예상에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빌어먹을 택시 기사는 나를 목적지에서 20여 분 떨어진 곳에 떨어뜨려주었다.나는 이국의 폭염 아래서 양손에 슈트케이스를 끌고 코트는 어깨에 두르고 언덕길 즐비한 곳을 헤메기 시작했다.정작 문제는 배고픔이었다.그런데 걱정이 밀려왔다.도대체 어떤 음식을, 어떤 식당에 가서, 어떻게 주문하고 먹어야 할 것인가?  영어로 물어보는 종업원 앞에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나를 생각하니 미리 얼굴이 붉어졌다.그 때 갑자기 택시를 타고 오다가 본 '황금아치'가 생각이 났다.그렇다 나를 이 배고픔과 쪽팔림에서 해방시켜 줄 곳은 '맥아저씨'였다.나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청년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where is 맥도날드? "

나는 무려 그 청년에게 5분 여간 설명했으나 그 센스 없는 청년은 알아 듣질 못했다.내가 썻던 단어들....'햄버거.치즈버거...헝그리.코카 콜라".나는 나의 식민지 발음을 탓하며 이리저리 혀를 굴렸지만 그는 감을 못잡았다.결국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고 아무길이나 찾아갔다.그리고 바닷가 근처에서 '황금아치'를 만났다.죽으라는 법은 없는거다.

나는 뒤에 알았다.'맥도날드'가 이곳에서는 3음절이라는 것을...일본 애들은 6음절로 한다.

2.막스 베버와 맥도날드

패스트 푸드점 맥도날드와 맥도날드화는 비슷하지만 다른말이다.맥도날드화는 베버가 말하는 '근대적 합리성'과 유사하다.저자인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사회를 비롯해서 세계의 더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과정' 이라고 말한다.맥도날드는 관료제의 원리와 자동차 조립라인의 원리를 결합시켜서 맥도날드화를 이루어낸 대표적인 상징이다.

맥도날화의 특징은 베버의 이론에서 차용된다.즉 베버가 근대적인 합리성의 특징으로 본 효율성,계산가능성,예측가능성,그리고 자동화를 통한 통제가 그것이다.거기에 저자는 맥도날드화가 갖고 있는 내재적 한계를 5번째의 특성이라고 말한다.그것이 '합리성의 불합리성'이다.

그렇지만 맥도날드화가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진 것은 아니다.또한 맥도날드나 포드때문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다.조지 리처는 근대를 규정하는 관료제화,테일러의 과학적 관리,포드식 조립라인 등에서 패스트푸드 체인의 기반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맥도날드의 첫번째 특징 '효율성'은 빨라진 생활 속도와 가장 빈번하게 연결된다.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맥도날드는 메뉴를 간소화하고 주방을 공장으로 만들었다.즉 맥도날드가서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지를 미디엄으로 구워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재료들은 모두 규격화되어서 자동차 공장 부품처럼 하나의 완성된 햄버거를 위한 조립라인을 흘러다닌다.소비자들도 먹는 즐거움 대신 빠른 효율성을 택한다.그 완벽한 부합으로 제시되는 것이 '드라이브인'같은 써비스이다.맥도날드 세계에서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일시키는 것도 허용된다.우리가 '셀프 서비스'라고 하는 것들이 모든 자본의 이익을 위한 효율성에만 복무하는 것들이다.맥도날드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듯 말한다.그러나 실제 그 몫이 돌아가는 자들의 말일뿐이다.

맥도날드 세계의 두번째 특징인 '계산가능성'은 모든 것을 수량화하고 질보다는 양에 대한 강조를 부각하는 것이다.즉 속도,수량,크기가 맥월드의 이념이다.패스트푸드 말고 다른 예를 들어보자.가장 대표적인것이 '패키지 여행'이다.관광의 질은 중요치 않다.방문자 수와 몇 장의 사진을 건지느냐,몇 개국을 돌아다니느냐가 중심고려사항이다.'여행의 맥도날드화'라는 것이다.

'예측가능성'이란 것은 통일성과 표준화를 말한다.내가 글 첫머리에 낯선 곳에서 '황금아치'를 보고 반가왔던 것이 바로 소비자의 '예측가능성' 선호의 좋은 예이다.문제는 사람들의 본능적인 보수성향,안전 지향이 아니다.이것을 상업적인 환경이 이용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예측가능한' 놀이 동산 같은 것이다.안전요원,안전한 장비 등등의 이름으로 안과 밖을 구분한다.바깥은 범죄와 불안이 난무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안심시킨다.

'통제'는 말 그대로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자동화의 지향을 말한다.닭을 닭으로 키우지 않고 닭고기로 키우는 '공장형 농장' ,아이들을 쇼핑하는 좀비로 만드는 쇼핑몰,들여놓은 의료기계에 점점 종속되어가는 의료진...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화된 세계가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또한 이것이 일순간 투쟁으로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맥도날드의 효율성은 분명 필요한 것이고 또한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그렇지만 이 안에 문제점이 있으니 이것이 '합리성의 불합리성'이다.맥도날드의 예를 들면 일반 식당보다 더 기다려야하는 줄서기 같은 것들이다.사실 맥도날드가 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 만은 아니다.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맥도날드가 심어주는 환상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여기서 맥도날드 세계가 소비자들의 '오락에 대한 집착'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또 선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엔터테인먼튼 사업이나 놀이공원화된 즐거운 먹거리,개인정보를 이용한 거짓 친근감 같은 것들이 예로 제시된다.이런 시뮬라시옹을 통해 맥도날드가 현실에서 없애버린 것은 바로 '마법'이다.마법은 예측불가능성이고 세계의 질적 소중함이었다.맥도날드의 애리한 현미경은 이를 산산히 파괴한다.이것은 세계의 동질화와 비인간화를 초래한다.

3.그 많은 맥도날드는 어디로 가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서 베버의 합리화론에 기대어 설명하는 장면은 흥미진진하지만 조금 길다.구체적인 예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분량이 늘어났다.이것도 맥도날드적 속성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압축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개인적으로 책 후반부쪽에 배치된 '변화하는 세계속에서의 맥도날드' 장이 즐거웠다.'맥도날드화가 어떻게 구현되어 왔는가 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맥도날드가 진화 하는지..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 더 현실적인 고민거리를 주기때문이다.'고품질화한 패스트푸드' '토착화된 맥도날드'같은 것들이다.조지 리처는 포드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시대에 맥도날드가 어떤 위상을 갖고 어떻게 자기 변신과정을 취하는지 보여준다.또한 바뀐 세상에서 맥도날드가 어떻게 될는지도 예상한다.조지 리처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인가 아니면 후기 자본주의 문화>를 인용하여 맥도날드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말한다.즉 모너니티와 포스트 모너니티의 연속성을 강조한다.조지 리처의 경우 조금 더 모더니즘의 입장에서 지난 세기를 주도했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근본적 변화가 없다라고 강조한다.개인적으로 이 뒷부분에 대한 분량이 조금 더 많았으면 하지만 한 권의 책에서 모든걸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4.맥도날드는 감옥인가?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맥도날드에 대한 점진적이고 온건한 대응책들을 제시한다.그중에서 실천적 과제로 나오는 것들은 아주 귀엽기까지 하다."제목 뒤에 숫자 적힌 영화들은 보지 말자" "백화점에서 점원이 깜짝 놀라게 신용카드를 주지말고 현금을 내자" "돔구장이나 인조잔디 야구장에 가지말자.대신 보스턴 팬웨이파크나 시카고 리글리 필드 구장에 가자" (뭔말인가 할 수도 있겠다.이 책을 보지 않았고 미국 메이저 리그를 본 적이 없으면 당연하다.) 저자는 맥도날드화에 대응하는 세가지 형태를 말한다.맥도날드 문화를 즐기는 '벨벳 감옥' ,맥도날드를 디스토피아로 보는 '쇠감옥'그리고 얼마든지 진출입이 가능한 '고무 감옥'이다.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실천 영역 안에서 맥도날드를 접하자는 것이다.맥도날드가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과 그것외엔 답이 없다고 패배주의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물론 조지 리처의 현실 설정에 대해서도 딴지를 걸 수있다.조지 리처는 현세계를  결국 '감옥'이라고 쓰고 있다.근대성의 대전제가 부정적인 세계로 귀결된다.결국 우리 모두는 맥도날드 매트릭스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혁명을 팝니다>의 저자들은 일부 좌파와 반소비주의자들이 전제하고 있는 '억압으로서의 세계'에 대해 부정적이다.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근대화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반문화적 가치가 세계를 부정과 탈출의 대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그들은 반문화가 사실 사기라는 극언을 취하기도 한다.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극단적 반문화자는 아닐지라도-조지 리처도 그런 세계관의 토대 위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맥도날드화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한다.그렇지만 그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무가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나 역시 동의할 수 밖에 없다.나는 다행히도 결혼 이후  점점 맥도날드로부터 멀어지고 있다.와이프의 덕분이다.와이프는 이론적이진 않지만 나보다 더 패스트푸드를 못 먹고 나보다 현대 의료 쳬계에 대해 부정적이다.우리는 '아이 출산' 과정에 있어서 맥도날드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또한 언제부터인가 집에서는 제철에 난 것들만 먹고 있다.또한 나름대로 관례화된 업무를 빨리 끝내버리고 글쓰기라는 비합리적인 짓들을 할 시간도 만들고 있다.다행이고 행운이고 감사할 일이다.  저자는 현재 나와 아내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제안한다."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아이들을 구하라" 아이들을 맥월드로 부터 구하려면 부모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TV 드라마에 눈을 꽂고 있으며 아이에게 TV보지 말고 책보라고 해봐야 먹히지 않는다.

이 책은 사회학의 고전적 이론을 가지고 세계의 숨은 속살을 대중적인 시각으로 드러내 놓았다.책 후반부의 재기도 이 책을 더욱 빛낸다.그리고 저자가 마지막으로 인용한 딜런 토마스의 싯구는 여기저기 마구 마구 인용하고 싶어진다.

"그 깊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빛의 소멸에 분노,또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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