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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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 깊은 곳에 빠져 버린 느낌이다.무릎까지 차오른 유체의 흐느적거림,오랜 시간동안 만들어져 화석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벽면의 이끼들,작은 물방울 소리마저 흡수해버릴 듯한 절망적인 어둠, 닿을 수 없어 더 초자연적인 원형의 하늘...영원히 닫혀 버릴 시간들. <슬럼,지구를 뒤덮다>는 도시의 묵시록이다.책을 덮고나면 지옥은 예언된 것이 아니라 실현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구현되는 지옥은 종이 위에 엎질러진 검은 잉크처럼 거침없이 진행한다.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도시 빈민들을 가끔 만난다..요즘같은 장마철은 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절이다.슬럼까지는 아니지만  판자집에 가까운 저질주택에서 장마철의 습기는 살인적이다.벽지 위로 1미터 이상씩 습기가 올라찬다.비만 조금 내리면 집 안에 있는 양재기들은 전부 들고 나와야 한다.천장에 수십번 덧바른 벽지들이 전부 들고 일어난다.방에 있는 것인지 물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그 곳에서 작은 선풍기 하나로 온 식구가 바둥거린다는 것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다.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감옥에서의 여름나기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와질수록 인간이 미워지는 것이다.도시 빈민들의 삶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너무도 반가운 사실(?)은 중간계급이 대거 포진한 도시에서 주류인간들이 도시 빈민들과 그들의 주거공간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도시빈민은 분명 도시 안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가끔 리어카에 박스 모으는 꼬부랑 할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시선을 거두면 되는 것이 중산층이 하는 일의 전부다.(박스 모으는 꼬부랑 할머니는 하루 종일 박스 모으면 대략 7-8천원정도 번다고 한다.)

<슬럼,지구를 뒤덮다>는 한국의 도시빈민보다 더 열악한 제 3세계 슬럼 문제에 대해 그 원인과 실태,그리고 묵시록적인 도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한국에서는 이 책에서 언급하는 형태의 슬럼은 그다지 많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한국의 도시 주거문제에 대해서는 '철거민'이라는 인적 유형과 '쪽방'이라는 주거형태가 가끔 언급된다.김동원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을 떠올리게 하는 단일규모 최대 철거였다는 88 올림픽 철거도 나온다.) <슬럼의 도전>이라는 책에서는 도시빈민과 슬럼을 동일선상에서 논의하지 않는다.도시 빈민과 슬럼 주민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도시 빈민의 수가 슬럼 주민의 수보다 월등히 많다.현재 지구상에는 20만 개 이상의 슬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거대 슬럼은 주로 판자촌과 스쿼터 마을이 비공식 주택과 빈곤 지대를 형성하며 연결될 때 발생하며 도시 변두리에 나타난다.

대규모 슬럼은 대개 1960년대 만들어진다.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농촌의 붕괴이다.우리 나라에서도 그랬듯이 짐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온것이 달동네를 만드는 것이다.제 3세계의 경우에는 역사적으로 복잡하다.대개 그 연원을 식민지 시대의 공간분할 정치와 환금형 작물 재배로부터 찾을 수 있다.저자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도시화 과정의 부산물로 생긴 이런 슬럼이 1980년대에 이르러 전지구적으로 확대된다고 본다.굳이 말을 붙이자면 '슬럼의 전지구화'현상이다.대규모 슬럼화 작업의 1등 공신은 IMF와 세계은행이다.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IMF의 구조조정프로그램'은 빈곤과 사회불평등을 급격히 증가시켰다.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의 후퇴'이다.공공지출의 축소는 도시 내에서 빈곤층의 삶을 극단적으로 악화시켰으며 사회적 안정망이 전무한 상황에서 중간층의 하층민화도 급격히 진행되었다.저자는 SAP와 도시빈곤 문제의 관련성의 설명하면서 비공식 노동계급이 늘어나고 여성과 아동들이 직접적인 희생자로 부각되었다고 말한다.연구자들은 제3세계 대다수의 도시에서 '비공식적 생존지상주의'가 주요생활양식으로 자리잡았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슬럼,지구를 뒤덮다>에 나오는 슬럼의 생활상과 증가하고 있는 도시 슬럼의 통계는 흘러넘치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주로 아프리카,동남아시아,라틴 아메리카,중국,동유럽과 러시아 등지가 연구대상이된다.전세계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수많은 슬럼 도시와 현황들이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한참 읽다보면 그런 통계들과 현상들에 무감해져버리기도 한다.각 슬럼마다 생성의 역사가 다르고 슬럼의 형태가 다르다 하지만 공통되는 요소들이 있다.

몇 몇 사례들을 보자.슬럼들이 도심에서 밀려날 경우 도시 외곽의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열악한 지형위에 만들어진다.그렇다보니 자연재해에 극히 취약하다.물론 제대로된 건축물조차 만들어지지 않다 보니 재난에 맞닥뜨릴 경우 그 피해는 엄청나다.

2005년 인구 520만명의 카라카스.도시 인구의 3분의 2가 거주하는 슬럼은 지진이 수시로 일어나는 카라카스 계속의 불안정한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1999년 12월,갑작스런 홍수와 산사태로 카라카스에서 약 3만 2000면이 사망했고 14만명이 집을 잃었고 2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TV 뉴스를 보면 이런 건 단지 '자연재해'로 비춰진다.그러나 그 안에 분명히 정치경제학이 들어 있다는 것을 '슬럼과 재난'사이의 관계가 보여준다.

슬럼 주민들은 도시의 쓰레기 더미들과 공존한다.슬럼의 위생상황은 아주 심각하다.가장 중요한 급수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정화되지 않는 더러운 물을 끌어쓰다보니 당연히 전염병과 유아사망율이 높다.또한 기본적인 욕구처리 조차 불가능하다.  

남이 버린 쓰레기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한 사회의 빈곤층을 정희하는 가장 심오한 특징 중 하나이다.키베라에 위히찬 라이니사바 슬럼에서는 1998년 4만명의 주민이 구덩이 변소 10개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마타레 4A에서는 2만 8000명이 공중화장실 2개를 함께 썻다..

정말 지옥같은 일은 이런 슬럼에서 화장실이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가나의 쿠마시에서는 한 가족이 하루 1번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기본급의 10%를 소비해야한다.실제 이 지역외에도 유료화장실 3세계 슬럼지역에서 각광받는 성장산업이다.

정말 수많은 슬럼의 지명이 나와서 다 기억하기도 힘들다.그렇지만 킨샤사는 기억에 남을 듯 하다.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강 옆에 위치해있으면서도 사하라 사막에서 물구하기 만큼 물구하기 어려운 곳,도시경제가 완전히 붕괴되고 자발적 조직화를 도모하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곳.빈곤으로 인한 가족의 위기가 종교를 통해 해결되는 곳,종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을 일상화하는 곳....지옥이 어디인가?

저자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만이 슬럼의 착취자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부패한 국가 권력과 내전,보수적 NGO 등도 슬럼 확산의 공신들이다.보수적 NGO의 경우 재원마련부터 신자유주의와 결탁하고 있다.또한 '자조주의'라는 환상을 통해 실제 슬럼의 구조적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하며 또한 슬럼의 공간적 현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공고화하는 개량주의적 한계를 드러낸다.저자는 슬럼 주민들 사이에서도 착취/피착취 구조가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한다.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인 피착취그룹은 슬럼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이다.슬럼 주민들 중에서도 일부는 더 가난 한 사람을 월세라는 형태로 착취한다.리스미스는 소규모 임대와 전대는 빈민의 주요 축재 전략이며 집이 있는 사람들은 좀 더 가난한 사람들의 착취자로 신속하게 변모한다 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가장 관심을 가져야할 대목은 '도시 중산층'이다.이 문제는 내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기때문에 성찰적 질문을 던지게 해준다.

도시가 슬럼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인 것 같다...지타 베르마

이 책에서는 제 3세계 변두리에 들어서는 '폐쇄형 교외 주택단지'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베이징 외곽의 오렌지 카운티,카이로 외곽의 유토피아,홍콩의 팜스프링스 등이 그런 곳이다.이들은 사회상류층으로서 미국식 소비패턴을 즐기며 그들만의 도시를 만든다.이 단지는 공통적으로 정교한 보안체제를 자랑으로 삼는다.주택들이 전부 요새화되는 것이다.이 단지들은 교외에 위치해있기때문에 좋은 도로망이 필수적이다.이 도로망을 만들어주는 것은 개발업자들과 정부이다.사회적 비용은 빈민들로부터 얻어내면서 부자들은 거저 도로망을 얻는다.실제 빈민들에게 그 도로망보다 필요한 것은 물과 위생시설일텐데 말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3세계 엘리트 중심의 모습이라 볼 수도 있다.그렇지만 한국에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도시 내의 '장벽 도시'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보론을 쓴 우석훈 교수는 '타워펠리스'같은 공간을 적당한 예로 들었다.그뿐만이 아니다.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개발업자들이 펌프질하고 있는 '타운하우스'같은 경우도 고급화경향을 띠면서 그들만의 주거공간을 만들것이다.조금만 더 확대해보면 요즘 새로 짓는 대규모 고급 아파트들과 그 입주민들도 전부 철통같은 경계망을 선호하고 유사한 계층 구조 속에서 자신들의 주거공간이 '구별'되기를 선호한다.내가 아는 어떤 경우의 아파트는 주민이 승합차를 타고 들어갔다니 아파트 품격떨어진다고 이웃들이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모든 중산층이 이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소설가 이순원이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하루 하루 압구정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중간계급의 경향성은 이러한 '장벽도시'를 선호한다고 볼 수 도 있다.

메트로폴리스 공간이 근본적으로 개편되면서 부유층과 빈민층의 교루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기존에 있었던 계층간 차별 분리문제나 도시 공간의 파편화문제는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최근 몇몇 브라질 작가들은 '중세도시로의 회귀'를 말하지만,중간계급이 공적공간-그리고 빈민층과 공유하는 최소한의 시민생활-으로부터 이탈하는 현상에는 그보다 훨씬 큰 사회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안소니 기든스에 이어 로저스 역시 공간 재편의 핵심과정을 엘리트 활동이 해당 지역의 물리적 맥락에서 '귀속탈피'하는 현상으로 파악했다.여기서 '귀속탈피'는 빈관과 사회폭력이라는 숨막히는 매트릭스를 외면하고 사아비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시도를 뜻한다...

<슬럼,지구를 뒤덮다>는 묵시록적이다.이 책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그저 현상의 원인과 실태,그리고 분석만이 있을 뿐이다.대안은 그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의 역자가 대신 이 부분을 설명했다.

"이렇듯이 파국적 전망은 '막아야 한다'와 '어쩔 수 없다'라는 두가지 상반된 입장으로 나뉠 수 있다.<슬럼,지구를 뒤덮다>의 파국을 어느쪽으로 읽을 것인가는 독자의 선택일 것이다.그리고 그 선택에는 독자의 존재방식이 반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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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07-07-22 03:36   좋아요 0 | URL
밤에도 글쓰시네요~ 이 책의 내용과 밑에 적으신 이랜드 사태가 왠지 어느날 밀접한 연관성을 띌 날이 올거 같군요. 결국 역사는 순환하는 걸까요.. 웅~

드팀전 2007-07-22 11:59   좋아요 0 | URL
바밤바님>..맞습니다.이랜드사태가 비공식 경제 영역의 확산의 한 형태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현재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