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12월
평점 :
절판


새로운 리뷰공간을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타이틀은 <화장실에서 본 책들>이 좋을 듯 하다.아이와 와이프에게서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화장실이다.요즘은 그것도 매번 그렇지는 않다.뽈뽈뽈 기어다니는 아이가 화장실 반투명 유리창에 와서 드륵 드륵 긁어댄다.중요한 볼 일에 지장이 생긴다.

이 책을 화장실에서 펼치고 있을 때 권정생 선생은 돌아가셨다.훌륭하신 분을 화장실에 모시고 와서 한 켠에서 망자에 대한 모독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러나 이내 권정생 선생의 글을 읽는 데 가장 좋은 곳이 화장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당당하고 힘차게 읽어 내려갔다.(보던일도 잘 볼 수 있고 당당함은 역시 좋다.)권정생 선생이 아픈 몸을 부여잡고 쓴 불후의 명작 <강아지똥>을 생각해보면 나의 화장실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다만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나의 응가를 똥개가 먹는게 아니라 정화조가 먹는다는 것이다.권선생님이 걱정했던 파리 하수도처럼 말이다.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그 맨홀들에 소중한 나의 응가들이 투척된다.그렇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바로 똥개다.(아 그 많던 똥개는 어디로 갔을까? where all the 똥개s have gone? 영어 쓸라니까 안된다.흐롱) 산책로에서 만나는 강아지들은 전부 인간화의 탈을 쓴 강아지이다.두렵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예쁘지도 않다.살이 피둥 피동 올라서 숨 쉬기도 힘들어보이는 시추부터 탱크탑을 입은 푸들까지..그러고 보니 다들 외국종이다.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권정생 선생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현재 한국 기독교와 예수쟁이들을 꼬집는다.한마디로 정리하면 오강남 선생의 말처럼 '너희들이 믿는 그런 예수는 없다'라고 할 수 있다.권정생 선생이 믿는 예수는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자,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자,약한 사람들을 보듬는 자로서 예수이다.그런 예수는 매주 주변 교통을 지옥으로 만드는 대형교회에 있지 않다.또 교회 신축에 쓰라고 수 천만원을 희사하는 부자 교인들 사이에 있지 않다.남보다 우리 아들이 잘 돼기만을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 속에 있지 않다.나와 내 가족만 잘먹고 잘살게 해달라는 곳에,입으로만 이웃이라고 외치는 장소에 예수를 갖다 놓은 것이 진짜 신성모독이다.이문재 시인은 '삶의 모델로서 예수를 존경할 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나와 비슷한 생각이다.자신의 삶에 있어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도 그 의미의 본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기독교 목사입네 기독교 신자입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퍼주기'란 말이 있다.배고파서 국경넘다가 죽어자빠지고 일부는 몸팔아서 자식 끼니를 때우는 북녘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물론 정치적으로 복잡한 그물망이 얽혀있다.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계가 이런 논리에 쉽게 동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한국의 기독교는 국가주의,팽창주의,보수주의의 기게가 되어 있다.

(교회안에서) 목사: 예수께서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도들:아멘

(교회밖에서 조중동을 보다가) 목사,신도들 : 북한 정권때문이군.일단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데 퍼주면 안돼지.북한놈들은 하여간 믿을 수가 없어.

가끔 채널 돌리다 기독교TV에서 목사들이 침튀기며 강의하는 것을 본다.어찌나 유치한지.저걸 듣고 감동먹는게 이해가 안된다.그런데 목사님 말씀이라며 주워섬긴다.고개까지 끄덕이며..

'이승엽 선수가 잘하는 것..박지성 선수가 잘하는 것...우리 교회가 들불처럼 한반도에 퍼지는 것..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아끼시고 선택하셔서....'

이걸 들으러 교회에 가야 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시간에 귀를 썩여서 죄송한 일일뿐이다.

권정생 선생은 자연과 하나되는 인간 삶의 복원을 꿈꾼다.그 중심에는 농사일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농업이야 말로 하늘과 땅,그리고 인간 이렇게 삼자가 관계 맺는 공간이다.그러나 인간 세상이 산업화되면서 농업은 저기 뒤켠으로 밀린다.농부의 마음이 뒤로 밀려 간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숨쉬는 인간이 인간성으로 부터 소외된다는 뜻이다.(못되게 이야기하면..권정생 선생을 좋아한다며 농업 생존권을 앗아가는 한미FTA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있다면- 권정생 선생과 대치되는 길 위에 있는 사람이다.) 권정생 선생은 문득 문득 전근대시대의 농경사회를 그리워한다.이것은 분명 현실 지평에서 퇴행적이다.역사적으로 우리 사회가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 인정 많았던 농경사회문화로 돌아갈 수는 없다.그저 한 개인과 개인의 삶에 작은 변화를 이끌고 또 이런 작은 변화들을 도모하는 길에서 정신적인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과거를 돌아보며 현재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일깨우려는 의도로 읽으면 될 듯 하다.

사람은 무엇을 알고 믿느냐 보다 어떻게 그걸 따랐느냐에 따라 후대에 평가를 받는다.여기에도 물론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많다.하지만 권정생 선생은 낮은 자로서 낮은 곳에서 낮은 사람들과 함께 사셨다.그가 서있는 땅이 옳바랐고 그가 믿었던 하늘이 옳바랐고 그가 옳바랐다면 다른 차이쯤이야 어찌되던 상관이 없다.

대단한 사회적 명성을 누린 것도 아니고 돈과 명예가 높았던 것도 아니다.그럼에도 그 분이 돌아가신 후 그의 누옥에는 조문객이 이어진단다.그 분의 마음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전수되었으면 한다.

강아지똥 처럼 사신 권정생 선생.. 지금쯤 민들레 홀씨가 되어 천지간을 여행 다니실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