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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저 - 이기주의자 요한 팟저의 몰락
베르톨트 브레히트 원작, 라삐율 편역 / 북인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내 가장 좋은 여자 친구는 연극 배우이다.그녀는 대학을 입학하자 마자 연극동아리에 가입했다.당시 대학교 연극 동아리가 무대에 가장 자주 올리던 레퍼토리가 브레히트였다.대학을 졸업하고 그녀는 정말 연극배우가 되었다.프로연극인인 그녀의 1년 연봉은 운좋은 해에 400만원쯤 된다고 했다.부산에 내려오기 전 까지 그녀의 공연은 거의 전부 다 봤다.연극계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초대권 준다는 것을 늘 마다했다.
브레히트의 작품을 읽다가 그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전화기 뒤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아이와 함께 복지관 문화프로그램 참여하러 왔다고 한다.그 집 아이랑 우리 아이는 3달 터울이다.그녀는 안그래도 점심 먹다가 내 생각 나서 전화 한 번 하려고 했다며 내 전화를 신기해했다.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최근에 읽은 브레히트를 이야기하려는 순간.그녀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어 미안한데 전화 끊어야 겠어.내가 다음에 다시 할께.아이가 저리로 도망간다.잡아야돼 '
'어...그래..브레히트는 보내줄...'
' ...뚜뚜뚜...'
그녀에게 브레히트의 미완성 작품 <팟저>를 보내야겠다.지난해 7월 나온 책이었으니 읽었으리 만무하다.아이 키운다고 정신없는 1년차 엄마이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팟저>(또는 이기주의자 요한 팟저의 몰락)은 퍼즐놀이다.브레히트는 <팟저>를 완성하지 않은채 남겨 두었다.우리가 만나는 이<팟저>는 편역자 라삐욜(무대미술,행위예술을 하는 한국 사람이다)이 재구성한 것이다.책은 크게 1,2부로 나뉘어져 있다.1부는 브레히트의 단편을 이리저리 묶어낸 <팟저>대본이다.2부는 좀 복잡하다.일종의 해설서에 가깝다. <팟저>생성사부터 <팟저>에 대한 작품론,그리고 브레히트의 제자이자 동독 최고의 연출가였던 하이너 뮐러의 <팟저>해설,이 책을 편저할 때 누락된 브레히트의 <팟저>관련 메모들이 들어 있다.
<팟저>는 미완성의 열린 텍스트이다.편저자가 이 책을 꾸린 이유는 브레히트의 재료를 다시 한번 손봐서 연극무대에 올릴 수 있길 하는 바람에서이다.그렇기 때문에 편저자는 76년 <팟저> 초연을 주도했던 하이너 뮐러의 작업을 첨삭하면서 라삐욜의 <팟저>를 만든다.이 텍스트를 토대로 또다른 변형이 가능하다.(브레히트가 연출가들에게 주장했듯이)
<팟저 도큐멘트(작업계획들과 메모들,구상들)>은 그렇게 일단은 중점적으로 글쓴이의 공부를 위해 만들어졌다....글쓴이인 나는 아무것도 완성할 필요가 없다.내가 나를 수업한 것으로 족하다...브레히트 <팟저 주석 c2>
<팟저>는 무정형의 텍스트이기 때문에 읽을 때부터 물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줄거리라고 할만한 것은 딱히 없다.또 내러티브를 위한 친절한 연결고리도 없다.인물들은 마치 선지자나 혁명가들처럼 불연속적인 언어를 내지른다.거기에 작품과 작가와의 관계가 책 서문에 박힌 이름처럼 딱 달라 붙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 근대 독자의 '작가=작품'의 연결이 흔들린다.이게 누구의 작품인가? 브레히트는 500여장의 메모만을 남겼다.그 메모가 작품인가? 모호해진다. 열려있기 때문이다.내가 능력만 된다면 내 나름대로 <팟저>를 구성해도 브레히트에게 쓴소리 듣지 않는다.(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팟저>의 줄거리는 간단하며 등장인물도 예닐곱명 수준이다.4명의 탈영병이 탱크 위에서 내리면서 극은 시작한다.그들은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면서-팟저는 스스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믿는다-함께 행동하기로 결정한다.그들은 무리 중 카우만의 집으로 숨어든다.이들 중 팟저만이 밖으로 나가서 음식을 구해올 수 있다.팟저는 푸줏간남자들과 다툼을 벌인다.동료들은 발각을 염려하여 행동 강령대로 외면한다.팟저는 카우만의 굶주린(?) 아내와 관계한다.그들은 그녀를 자유화(?)한다.팟저는 스스로를 없앰으로서 나머지를 없애려한다.무리는 팟저를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길지 않은 이야기다.또 코러스 기능이 수시로 등장하여 작품을 설명하고 관객의 몰입을 막는다.브레히트를 읽거나 보면서 '감동' '동화' '눈물 뚝뚝' 된다면 브레히트를 모독하는 짓일게다.<팟저>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대단하다.<팟저>에서는 전쟁과 도시,개인의 욕구와 집단의 욕구,급진주의와 반급진주의,이성과 감성,역사적 폭력과 단절,대중의 모순과 희망같은 것들을 이야기한다.20세기 역사와 철학,사회를 관통하는 주제들이 단절된 무운형태의 시적 표현들로 적시되어 있다.(피터 한트케의 인기작품 <관객모독>에서 이런 투로 한 장을 구성한 것을 본적이 있다.예를 들면."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이게 단절된 무운형식의 표현이다.왜 이런 표현을 쓰는지는 알고 나면 재밌고 낭독하면 새로움이 있다.)
작품에서 대립적 구도를 갖는 이는 팟저와 코이너이다.이둘은 <팟저>안에서 상호보완적이다.팟저가 개인주의,아나키즘,급진주의의 축을 잡고 있다면 코이너는 공동체주의,반급진주의,이성주의자로서위치한다.하이너 뮐러는 역사적 스펙트럼 위에서 코이너를 레닌으로 배치시킨다.
(코이너) 그들이 우리를 한명씩 건드리면/그 땐 우린 끝이야.우리는/더 이상 가면 안돼,여기/경계지역에서/그들이 제일 불만스러워 하고 있어 그 다음은: 공장이/있는 곳이지!
<팟저>에서 쉽게 읽히는 정서는 전쟁으로 대표되는 국가/폭력에 대한 것이다.이 전쟁을 중심배경으로 팟저 대 코이너의 대결구도가 형성된다.전쟁 또는 국가,국가 폭력에 대한 <팟저>의 표현은 시이며 프로파간다다.
고기가는 기계를 다루는/자들은 손잡이 말고는/아무것도 다루려 하지 않고/그렇게/인류의 정돈된 대중은/잘못된 목적으로 출동하고/그렇게 새로운/요령과 같은 박자 안의 욕망은 악용된다.
욕망의 구획지어짐에 대한 브레히트식 표현이다.이 욕망은 자본주의하에서 전쟁이란 이름으로 해소된다.고기 가는 기계를 다루는 자들은 전쟁을 다루는 자들이기도 하다.네그리의 <제국>에 보면 이런 뉘앙스의 글이 나온다." 우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에 참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은 지하 창고의 금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기억에 의해 쓴거라서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고기사는 기계를 다루는 자들은 적을 규정하고 그들에게 총부리를 대라고 명령한다.팟저는 다르게 말한다.
내 앞에,내가 대항해 싸웠던 상대는:내 형제다/하지만 내 뒤에 그리고 내 형제 뒤에는:우리의 적이 있다.
너희들이 아직 몇 조각 고기 살점을/이빨 사이에 혹은/너희 형제들의 이빨 사이에 가지고 있는 한/너희들은 살육을 멈추지 않는다/게다가/물은 썩는다 입안에서
뒤/돌아들 봐라 그리고 민족들의 전쟁을/계급들의 전쟁으로/세계 전쟁을/시민전쟁으로 바꿔라,즉 흩어지지 말고/이 전쟁을 너희 나라 땅에서 해라,너희가 너희의 시민계급을 박멸하지 않기 전에,전쟁은/끝나지 않을 테니
이기주의자이며 능력을 갖춘 리더 격인 팟저.그는 급진주의적이며 다중적이다.그가 희망을 거는 인간 이후의 대중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이간다.'각성된 민중'이라는 개념처럼 들린다.팟저는 과거의 것들을 부정하는 정신이다.라삐욜이 브레히트를 니체와 마르크스의 변증법으로 본 것은 이런 의미에서 일듯 하다.팟저는 부정의 정신을 극한으로 밀고가는 전복을 원한다.(낭독하면 재미있다.)
쳇바퀴처럼 살려는/너희들의 건강하지 않은 욕구/나는 그게 싫다.
부당한 것은 인간적이다/더 인간적인 것은 그러나/부당함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다!
인간에게 인간은/완전히 분간할 수 없는 것이다/모든 뼈와 살을/즙으로 녹여버리는/엄청난 위를 /통과한 것과 같이/네가 진창에서는/물고기와 사과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처럼/그렇게 희뿌연 죽 속에 인간의 목숨이 놓여있다.
그리고 너희에겐 아무/문제가 되지 않는것:비가/위에서 아래로 내린다는 것/그것은 나에겐/도저희 견딜 수 없는 것이다/알파벳에서 A 다음에 B가 오고 그것 말고는/아무것도 오지 않는다는 것.너희들한테는 그게 옮지만/나에게 그것은 완전히 별볼 일 없는 것이다.
세상의 부당함을 가리키고 있는/너희 손가락은/이미 썩었다: 시꺼먼 손가락!/그리고 호소하는 너희들의 팔은 이미 어깨에서 떨어지고 있다!
이 도시 전체에/전복할 준비와/능력이 되는자가/단지 다섯뿐이라면,/곧 그들과 한 패가 되라/낡은 모든 것은 놔두고/즉시 새로운 것/즉 완전한 전복을 선택하라
그러나 팟저는 패배한다.대중의 패러독스에 의해 또는 자기 함몰에 의한 패배이다.브레히트는 이들이 대중을 떠나는 순간 그 패배가 결정되었다고 말한다.팟저의 마지막 유언..
누가 이 싸움에서 승리할 지/나는 모르겠다/그러나 늘 이기던자는 패배하고 말았다/그리고 지금부터 전 세월에 걸쳐/너희 세상엔 더 이상 어떤 승리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패배자만이/늘어날 것이다.
체제의 영원한 승전가를 예견하는 듯 하다.그러나 모순은 희망을 위한 반전이다.하이너 뮐러는 여기서 '적' 개념을 환기시킨다.완전한 세계개혁프로그램으로 완전한 적 개념이 만들어진다.착취를 살아 있는 자의 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어떤 절대적인 적개념도 필요없다.아직 끝나지 않았다.<팟저>의 마지막 코러스...
너의 목소리를 움츠려라,연설가여/너의 이름은 칠판에서 지워질 것이다/너의 명령들은/더 이상 수행되지 않을 것이다.허락하라/새로운 이름들이 칠판에 등장하고/새로운 명령들이 지켜지는 것을/옛날 초소를 떠나라.
올해는 6월 항쟁 20주년이다.요즘은 예전 만큼 브레히트가 읽히지 않는다.할 수 없다.읽히지 않음에도 브레히트는 마르크스를 인용하여 이런 말을 후대에게 던진다.
'인류는 실현할 수 있는 것 외에는 더 이상 계획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