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다. 오늘도 낮에 땡땡이 치고 비오는 바다를 구경하러 갈까? 점심 시간을 조금만 활용하면 빗방울 받아먹는 검푸른 바다를 만나고 올 수 있다.10년을 살았지만 이 곳은 아직 나의 도시가 아니다.그렇다고 유년시절의 기억이 남아있는 안양도 나의 도시가 아니다.그곳을 떠나온 시간이 그곳에 산 시간보다 길다.나의 청년기를 키워준 서울은 또 어떤가.밉지만 많은 기억과 생각을 만들어 준 곳.하지만 이젠 그곳에 적이 없다.
나는 아무데도 속하지 않는다.부산사람에게 나는 서울사람이고 서울 사람에게 나는 부산 사람이다.도시에 무슨 뿌리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있긴 하다.)...그 잔뿌리 조차 내게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한달음에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건 ....지금 살고 있는 도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한 편의 시가 많은 걸 생각나게 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의 <담쟁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고 난 이후에 해석이란 과정을 거친다.수용자의 경험,선호,이해력 등에 따라 한가지 작품은 수천만가지 형태로 재맥락화된다.도종환의 <담쟁이>를 인용한 몇 몇 사람들도 자기 위치에서 이 시를 해석했다.
열린우리당 전국여성대회인가에서 정동영 전 의장도 이 시를 낭송했고 한다.또 이번달 <객석>의 윤석화 발행인도 이 시를 인용했다.같은 시를 옮겼지만 정 전 의장과 윤 발행인은 다른 의미로 이 시를 사용한건 확실하다.전자에는 정치적 다짐같은게 있다면 후자에는 척박한 문화 시장에서 예술잡지를 경영하는 CEO의 문화적 사명감 같은게 느껴진다.
그런데 나는 윤석화 발행인이 <객석>을 맡은 이후 그 잡지를 보는게 늘 낯설다.왠지 나에게 맞지 않는 잡지를 보는것은 아닌가 하는 이질감 같은것이 느껴진다.마치 친손자 모임에 참석한 외손자같은 느낌이다.
나의 '객석유감'은 절대적으로 광고에 기인한다.윤석화 발행인이 <객석>을 인수한 후 변화는 잡지의 광고가 늘었다는 것이다.영업팀이 열심히 뛰어서 광고가 늘고 쓰러져가는 잡지를 정상화한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객석>에 실리는 광고는 보면 '해외명품' 광고들이 주를 이룬다.불가리,크리스찬 디올,샤넬..등등등.
예전이나 지금이나 클래식을 듣는 사람들은 좀 있는 사람들이 많다.단지 윤석화의 <객석>은 그걸 수면위로 드러내고 당당하게 선긋기 하는게 예전과의 차이일 뿐이다.윤석화의 <객석>은 명품광고를 유치하면서 '객석'을 고급화했다.최소한 광고지면의 차원에서는 말이다.그래서 요즘 <객석>을 펼치면 가끔 소수 부유층에게만 공급된다는 <노블리스>(병원같은데 가면 있다.)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음악을 좋아하고 연극을 좋아하는 부유하지 않지만 평범한 서민들은 그 잡지로 부터 배제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윤석화 발행인과 그녀의 마케팅팀은 <객석>의 주 고객을 부유층(또는 '상위층에 가까운 중산층'-있는 놈도 중산층 없는 놈도 중산층이라 믿으니까 이런 이상한 표현이 나온다.)에 가깝게 상향해서 설정한 것이 틀림없다.그 결과를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고급화된 <객석>은 문화예술의 저변을 스스로 축소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쉽게 말해서 좀 관심있어서 이 잡지를 보다 가도 이거 기죽어서 보겠냐는 심정 말이다.음악을 듣고 연극을 보는 것이 수 십만원이 드는 것은 아니다.조금만 줄이면 충분히 즐길수 있다.그런데 <객석>을 읽다 보면 왠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디자이너 콜렉션을 입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동작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것 만이 '예술감상의 적자'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도종환의 <담쟁이>를 노블리스 잡지가 된 <객석>의 발행인이 인용한다.모두 힘을 내자는 단순한 의미로 읽었던 것을 내가 너무 오바해서 정치적 의미로 읽은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내가 읽고 가슴 훈훈해진 도종환의 <담쟁이>가 귀족들의 오페라 안경을 통해 읽히는게 영 찝찝하다.그래서 부질없는 잡설을 늘어놓는다.투덜 투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