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잡아라
마크 카츠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집에 처음 전축이 생겼던 날이 기억난다.방 한 면을 가득채울 듯 무척 거대했다.독수리표인지 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데시벨을 나타내는 눈금이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왔다 갔다 했다.작고 노란 램프에서 불이 들어오면 마치 사람의 눈과 눈썹같아 보였다.그 전축이 어떤 구성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아마 요즘 나오는 컴퍼넌트 정도였을 것이다.당시에 CD는 없었으니까 LP플레이어가 달려있었겠지....그 전축과 관련해서 가장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전축이 우리집 가구가 된 며칠 지난 뒤였다. 아버지가 무언가 꼼지락 꼼지락 거리시더니 마이크를 턱하고 잡으시고 노래를 한곡했다.어떤 곡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맘때 아버지의 18번이 <꽃집의 아가씨> (제목 맞나 모르겠다.)였으니 그 곡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노래를 마치고 잔득 기대감을 심어주고 몇 가자 버튼을 조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무반주로 듣는 '꽃집의 아가씨'

"꽃집에 아가씨는 예뻐요,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분명 이후에 나와 내 동생도 노래를 하고 녹음했을 텐데 그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처음 전축을 통해 흘러나왔던 아버지의 노래와 신기한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고 아이들보다 더 들떠 있던 아버지의 모습만 생각난다.

녹음은 통상적으로 '기록'으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진다.목소리를 기록하고 자연의 음향을 기록한다.녹음은 결국 현실의 소리를 담아서 다시 재생하는 과정을 뜻한다.저자는 이것을 '녹음의 리얼리즘 담론'이라고 말한다.즉 '녹음된 소리란 실제 소리를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라는 지배적인 관념이다.마크 카츠는 10년을 준비한 이 책에서 이 개념이 갖고 있는 다른 측면을 건드린다.바로 녹음된 소리는 녹음이라는 기술을 통해서 조정된 소리라는 것이다.그는 '포노그래프 효과'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녹음의 영향이 드러나는 방식'에 대해이야기하고 있다.다른 말로 하면 녹음이 음악가와 음악듣는 행위,음악 수용자들,그리고 음악 자체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밝히는 것이다.

마크 카츠는 1장에서 녹음과 녹음된 음악의 일관된 특징에 대해 언급한다.2장부터 등장하는 기술변화에 따른 녹음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음악환경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기초가 되는 특성들이다.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녹음과 녹음된 음악 속에 사는 현재의 음악팬들이라면 내가 듣는 음악이 어떤 인문학적인 의미를 갖는지 되짚어봄 직하다.

녹음의 유형성..이동성...가시성과 비가시성..반복성...시간 제한...녹음 장비의 수용성...조작성 등이 그 특징이다.짧게 특징만 요약하니 영 재미가 없다.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개별 예들을 다 들다가는 오늘 퇴근하기 힘들다.서비스 차원에서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먼저 '조작성' 은 녹음이라는 것이 등장한 후 음악의 접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접합은 조작의 가장 기초적인 방식이다.글렌 굴드의 예를 들면 아주 쉽다.글렌 굴드는 녹음에 적극적이었고 녹음기술의 미학적 가치에 대해 실험적인 태도를 취했다.그는 이런 식이다.그가 바흐의 평균율을 녹음한다고 치자. 프렐루드 중 하나를 아주 빠르게 녹음해본다.그리고 다음은 훨씬 느리게 연주한다.이런 식으로 여러가지 테이크를 만든다.그리고 프로듀서와 논의한다. '어떤게 나아?'  이런식으로 곡을 조각 맞추듯 모은다.그가 녹음한 테이크들을 그와 다른 방식으로 모으면 글렌굴드의 또 다른 글렌굴드를 만날 수도 있다.(물론 그의 무덤을 파고 허락을 받아야겠지만.)...조금더 알려진 건 아마 냇 킹 콜과 나탈리 톨의 <언포게터블> 듀엣일 것이다.죽은 아버지의 트랙과 살아 있는 딸의 트랙을 접합한다.라이브에서 천국에 있는 아버지를 불러오지 못하는 한 불가능하지만 녹음의 접합성은 이를 가능케 한다.

녹음의 특성중 '가시성과 비가시성'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리처드 레퍼트의 <소리의 광경>을 인용해보자. "음악소리는 추상적이고 만질수 없으며 덧없기 때문에 즉 듣는 순간 사라지기때문에 음악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착 펄만은 '연주를 할 때 청중은 반 만들을뿐 나머지 반은 본다.' 라고 했다..음악이 듣는 것만 있는 것 같지만 시각적인 원체험이 음악에서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특히 음악의 시각적 영향은 템포와 휴지부에 대한 조이기로 녹음에 반영된다.즉 녹음은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라이브처럼 긴 휴지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라이브에서는 잠시 '마'가 뜨는 것도 분위기에 어우러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극적 효과를 줄수 있다.그러나 녹음된 상태의 음악에서 아무런 소리없이 음악이 3-4초가 흘러가면 청취자들은 난감해한다.

녹음은 음악의 보편화를 이루어내었다.음악이 인종,계급,시간,그리고 공간을 넘어갈 수 있게 만든 것이 녹음의 공로이다.(물론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최소한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보편성을 담보해냈다는 것은 사실이다.녹음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는 베토벤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물론 라이브와 녹음이 다른 음악이긴 하지만.) 경상남도 산청 두메 산골에서 어떻게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을 수 있었겠는가?

녹음기술이 음악을 규정한 가장 큰 예가 디스크의 시간에 따라 재즈음악이 녹음된 시기이다.초기 78회전짜리 레코드에는 3분 가량 녹음이 가능했다.현재 디스크의 포맷이 커졌음에도 대중가요가3-5분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도 이때부터 시작된 관습으로 본다.초기 재즈 연주자들은 라이브연주에서의 긴 즉흥연주를 레코드에 맞추기 위해 녹음할 때는 대폭줄였다.빅스 바이더는 마치 까라마조프 형재들을 단편으로 압축하라는 주문같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바이올린 비브라토의 변화 역시 녹음과 관련이 깊어보인다.비브라토는 연주자들의 특성이자 연주의 실수를 감추는 역할을 했다.1920년대 이후 신비브라토는 녹음의 특성에 대한 연주자들의 적극적 대응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녹음 장비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불완전한 조음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연주자의 몸짓등 특성을 각인하기 위해 비브라토는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이후에 시대적 기술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레코드를 '원료' 로- 그라모폰 무지크,텐테이블리즘,DJ배틀,샘플링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단순한 소리를 기록하는 매체가 어떻게 기술발전에 따라 재맥락화되어 가는지 흥미진진하다.부록으로 보태지는 CD에는 해당 녹음들의 기록을 담아서 이해를 돕고 있다.요하힘과 하이페츠의 비브라토가 어떻게 변해가는지,그라모폰무지크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재활용되는지저항적인 포크음악이 어떻게 새플링을 통해 재맥락화되는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MP3와 지적재산권 문제는 한동안 논쟁이 많았던 주제이고 여전히 쟁점이 되는 부분이어서 현재감을 가지고 읽어볼 수 있다.몇 년 전에 나온 책이어서 그 사이의 변화를 조금 못쫓아가는 점은 있지만 말이다.요즘 추세는 음반회사에서 음악파일을 판매하고 CD가진 유형성과 정보,소유가치 등 까지 화일로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결코 기술결정론자가 아니라고 말한다.중요한 것은 기술의 변화와 인간이 맺는 상화관계에 있다고 결론 맺는다.마크 카츠가 말하는 세가지 결론은 이렇다.

"녹음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라이브 음악과 녹음 음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이용자가 녹음의 가치와 파급효과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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