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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좋아하는 ㅣ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평점 :
대전 역 내에 있는 서점에서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샀다.한 손에는 장모님이 보내주시는 꽤 무거운 김치 꾸러미가 있었다.다른 손은 어젯 밤 아기가 잠든 사이 스탠드 켜고 이불 덮어쓰고 본 책..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를 갈아 타기위해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플랫폼에서 보릿자루 마냥 기다리기 싫었다.비록 잠으로 귀가길을 빼앗겨 버릴 지라도 몇 줄의 글이 필요했다.햄버거 가게 옆에 있던 서점을 두리번 거렸다.사람들은 자기계발서 앞에 진을 치고 있었고 나는 한 쪽 귀퉁이 한 면의 반도 채우지 못한 시집 코너를 기웃거렸다.며칠 전 부고를 들었던 오규원 선생이 시집이 먼저 눈에 띄었다.그러나 계산대 위에 오른 것은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
나는 지금껏 시집 리뷰를 단 한편도 쓰지 않았다.그렇다고 내가 시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한 해에도 대 여섯권의 시집을 읽는다.그런데 이상하게 시집에는 리뷰를 쓰기가 꺼려진다.언제나 부담을 주는 것은 시집 뒤에 달린 문학비평가들의 비평글.왠지 나 역시 그런 준거에 맞게 글을 써야 할 것 같다는 무게감을 준다.내가 문학도들 처럼 그렇게 쓰지 못함을 또한 그렇게 분석할 힘이 없음을 안타까와 하는 사이 실기를 한다.시에 과문하다보니 의외로 시 비평 까지 읽어서 지식을 채우려는 것이 오히려 화가 될 때가 많은 셈이다.거기에다 좋은 시를 읽고 나면 의기 소침해지기 까지 한다.언어를 선별하고 조탁하는 쟁이들의 뛰어남에 어깨에 힘이 빠진다.힘없는 말에 더 채찍을 가해서 아예 주저 앉게 만드는 것은 시인들의 눈이다.내가 시인의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내게 그것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디서 잃어버린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김사인 시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나는 이 시인에게 관심이 갖다.단지 이름때문이다.'사인'이라는 이름은 왠지 모르게 남달랐다. '죽음의 원인' 인가? 아니면 '시그내처'를 말하는 '사인'인가?
"김사인 고객님,여기에 사인해주세요"
아니다.웃자고 한 소리일 뿐이다. 김사인 시인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야..진짜 시인의 이름같다' 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이었다.이 생각이 언제 들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그런데 그 종적을 알수 없는 생각이 이 시집을 내게 불러들인 머나먼 이유가 되었으니 가끔은 쓸데없는 생각도 좋은 인연을 이어주기도 한다.생각이 이렇게 미치니 세상사의 이모저모가 참으로 묘하고 재미있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시집을 펼쳤다.내 주변 사방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장난치는 소리가 퍼졌다.기차 안에 소리를 줄여줄 차가운 가습기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이가 생기고 나니 아이들이 내는 소음에 예전에 비해 너그러워진다.시를 읽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옆에 앉은 내 나이 또래의 양복입은 신사는 계속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
<노숙>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
나는 이 시를 내리 세번 읽었다.한번은 빠르게 한번은 느리게 마지막은 작은 소리를 내어...안구에 습기.어젯밤 스탠드의 형광불빛이 눈에 좋지 않았던게 분명하다.
<새끼발가락과 마주치다>
(중략).......그래서 그토록 꼬부리고 숨어 있는 그것이 혹 죽은 것은 아닌가 한순간 걱정되면서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가 그것을 건드리니/아아,가만히 움츠리며 살아 있다고 말하는게 아닌가!
그 기척이 어쩐지 우리들 희망의 절망적인 상징처럼
여겨져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새끼 발가락들을 만나왔던가.안타까와 했으며 무언가 도움이 되고자 했다.그런데 그것이 육화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회적 부채감을 위한 것인지 늘 질문했다.아..그런데 '새끼 발가락'이라니? 과연 내가 본 것들이 내가 동감했던 것들이 나의 새끼발가락인적이 있었던가? '새끼 발가락'이 내 정수리에 폭포수 같은 차가움을 던진다.
....오 빌어먹을,나는 먼 곳에 마음을 벗어두고 온 사내/그대 눈부신 무구함 앞에/상한 짐승처럼 속울음을 삼켜 나 병만 깊어지느니...<예래 바다에 묻다>
..열일곱에 떠난 그 사람/흘러와 조치원 시장통 신기료 영감으로 주저않았나/깁고 닦는 느린 손길/
골목 끝 남매집에서 저녁마다 혼자 국밥을 먹는/돋보기 너머로 한번씩 먼 데를 보는/그의 얼굴/고요하고 캄캄한 길.......... <풍경의 깊이2>
...사람 사는 일 그러하지요/한세월 저무는 일 그러하지요/닿을 듯 닿을 듯 닿지 못하고/저물녘 봄날 골목을/
빈 손 부비며 돌아옵니다....<춘곤>
자동차 굉음 속/도시고속도로로 갓길을/누런 개 한마리가 끝없이 따라가고 있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귀가>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자의 빈호주머니여/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그간의 일들을/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코스모스>
작은 것들의 이야기를 듣는 귀를 가진 시인이다.삶의 노정은 딸칵 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 가깝지만 또 무료배급소 늘어선 줄만큼이나 길다.저물 무렵 느린 햇살을 받고 누웠을 그 길을 생각한다.바람 좋은 저녁은 햇살을 모래가루처럼 흩어놓는다.그 모래가루를 잡고픈 허망한 시선......
일상의 비루함과 작은 것들의 지리멸렬함...시인은 그 작고 지루함에 비록 계피처럼 쓰지만 살아갈 수 있는 미소 한 자락을 퍼올린다.
<꽃>
모진 비바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느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
부산까지 오는 기차안에서 나는 몇 번 천장을 바라보며 눈가의 습기를 말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