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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적 가치 - 세계의 지식인 16인과 하버드생의 대화
브라이언 파머 지음, 신기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오늘의 세계적 가치>는- 한국 어머니들의 꿈-하버드 대학의 '개인의 선택과 전 지구적 변화'라는 강좌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책의 내용으로 유추해 볼 때 강의는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졌다.그렇기 때문에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뷰형식'의 사회과학서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진보적 지식인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노엄 촘스키,하워드 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종교와 윤리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하비 콕스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클린턴 행정부를 떠난 로버트 라이시도 얼핏 떠오른다.그 외에도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경제학자 줄리엣 쇼어,법학자 라니 구니어,외교관 스와니 헌트,의사인 제니퍼 리닝과 폴 파머.16명의 등장인물 면면이 한약방 약재만큼이나 다양하다.책을 꾸리는 과정에서 적절한 배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런 안배 덕택에 독자는 세상이라는 '코끼리'를 비록 어두운 눈이지만 더듬거리며 다양한 각도에서 만져 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6명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또 몇 몇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는 약간 씩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그럼에도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다.또 한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들이 '실천적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면서도 구체적인 현실세계에 산다.결코 들뢰즈니 푸코니 지첵이니 하면서 '책 세상의 군주'로 살지 않는다.(아마 그들의 공부가 그런 철학에 미치치 못했거나 ,배움의 극에 다다르지도 못했는데도 성급하게 나서서 그럴 것이다.그러나 나는 발효를 기다리다 관뚜껑 열어야 확인할 수 있는 지식보다 이런 '못미침'-그런데 과연 누가 그들을 어느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랴?-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나 역시 공부가 부족해서....)
<오늘의 세계적 가치>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다양하다.미국의 이라크 침공,코소보 등 국제 분쟁지역에서 미국의 역할과 문제점,신자유주의,소비자본주의의 폐해,페미니즘의 성과...등등.여러 다양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 강의의 핵심을 한 줄로 설명한다.
"우리의 풍요를 보장해주는 불평등한 대우에 주목하자."
다양한 주제에 대한 좋은 질문과 답변이 많아서 한 두가지만 이야기 하긴 아쉽다.신자유주의와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문제도 그중 하나이다.<세속도시>로 유명해진 종교학자 하비콕스는 이렇게 답변한다.
저는 시장이 단지 은유로서 신이라고 제시하는게 아닙니다.시장이 이 세상 많은 곳에서 믿음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현상학적으로 그동안 종교가 가장 흔하게 하던 걸 지금 시장이 하고 있습니다.(시장은)종교로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그러니 사실은 종교들 사이의 다툼인 겁니다.이건 신들의 전투입니다.
하비 콕스는 자신이 반시장주의자가 아님을 말한다.
시장은 어떤 문화 또는 사회에도 필수적인 제도입니다.여기서 제가 비판하는 건,시장이 전체 사회의 우월적인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는 기구,곧 신으로서의 시장으로 부상하는 것입니다...대체로 종교적 제도들은 그저 이 거대한 세력을 따라가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 삶과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지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그렇다.기업화 되어가는 한국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인간의 가치'에 대해 별로 말을 해주지 않는다.그들이 이미 '종교자본'으로 코묻은 돈 꼬박 꼬박 일요일마다 걷고 있으니 할 말도 없을 게다.불교도 마찬가지다.이미 딴 세상가신 선사들의 글은 모두 물질화된 삶을 버려라..라고 이야기하는데 어제도 오늘도 불전함에는 돈이 수북이 쌓인다.절에 가면 '기와불사'하라고 꼬시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은지...최소한 우리나라에서 종교는 친자본주의적이고 최소한 문제의식도 가지지 않는다. 일반 사회보다 종교가 먼저 자본의 신을 받아들인 듯 하다.
<과로하는 미국인>이라는 책을 쓴 경제학자 줄리엣 쇼어,그녀는 실증적인 조사를 통해 2차대전 이후 미국인들의 노동시간이 점증적으로 늘어났음을 입증했다.(아무리 그래봐야 한국인들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줄리엣 쇼어는 '일과 지출'모형을 통해 노동과 여가 그리고 소비의 상관관계를 파악한다.
돈과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는 그들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노동)에 맞춰져간다는 겁니다...체제는 여가시간을 주지 않고 대신 돈을 줬습니다.사람들은 돈을 쓰고 이런 지출에 길들여졌습니다.
새로운 소비주의 시대...돈이 점점 더 사람들의 기초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는 쪽에서 사치재 소비와 사회적 지위 유지를 위한 소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소비를 선호한다는 표준적인 주장을 뒤집어 엎은 것이다.쇼어의 말을 정리하면 결국 여가대신 돈을 주고 그 돈으로 소비를 가속하시켜 기업을 움직인다는 것이다.그녀는 이 과정에 TV와 매체들의 광고가 이를 부추기는 성장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말은 이어진다.
텔레비전과 그 밖의 매체를 더 많이 접할 수록 더 소비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이 아이들은) 돈과 물건,유명 상표에 더 많이 신경 쓸 소지가 크고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더 소유하고 있는지 신경쓸 가능성도 큽니다.
쇼어는 이런 질문에 대해..
잠깐만요.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면 어떻게 건강한 경제를 유지하죠?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내일 신용카드를 모두 잘라버리고 더 온건한 소비지출을 하면서 살기로 결심하면....그러나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고 보는건 비현실적입니다.....(결국) 노동시간을 점차 줄이고 노동시장에서 속도를 낮추게 되면 실제로 혼란이나 실업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다른 형태의 경제로 옮겨 갈 수 있습니다.
그녀는 훨씬 거대한 경제체제 자체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일종의 '일자리 나누기' 프로그램같은 형태로 보인다.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걱정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는 않는다.비용이 많이 발생하니까...(물론 정규직의 경우 줄어드는 노동시간에 대한 임금 희생도 어느정도 감안해야한다)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그녀 덕분에 앞으로는 '세계화' 또는 '반세계화' 라는 말을 쓰지 않을 듯 하다.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규격을 모두에 적용하는 과자 절단기 모형입니다....신자유주의 또는 프랑스인들이 부르는 대로 하면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운동에서 세계화라는 단어 사용을 거부하는 것은 의도적인 행위입니다.이는 전 세계적인 경제정책에 대응하는 것이지 세계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닙니다.문제는 세계적이라는 사실이 아니고 정책입니다.그리고 이 정책을 전 세계에 강요한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라니 구니어는 인종,계급,빈부 차이가 사회적 계급재생산과 어떻게 관련있는지 30년이 넘는 대학 입학생 성적 분석과 사회진출 동향을 조사한다.그녀는 피터 색스의 볼보효과를 입증하는데 ..결국 '어떤 학생의 점수를 안다면 그 학생의 대학 1학년 성적을 예측하는 것보다는 그 학생 부모의 재산을 더 잘 예측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부가 교육으로 재생산 되는 과정을 입증하는 것이다.라니 구니아는 오스틴 텍사스 대학의 '10% 입학제도'를 긍정적으로 본다.쉽게 말하면 고교간 학력 격차를 무시하는 것이다.대신 각 학교의 상위10%에게 입학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양한 인종,계층,빈부차는 출발 선에서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 암암리에 적용하는 고교등급화와는 다른 방향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갖기도 한다.발칸 분쟁에 대한 미국의 폭격에 대해 하워드 진 같은 인물은 인도주의 개입을 인정하지만 미국은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는 현실을 드러 비판적이다.반면 통제불가능한 국제 분쟁에 인도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느 사람도 있다.법학자 마시 미노,외교관 스와니 헌트 같은 경우이다.노동문제와 관련에 미국내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즉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도 로버트 라이시와 줄리엣 쇼어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라이시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노동자들 간의 불평등을 해소해주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해 쓰면서 꼭 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현장에 서 느끼는 실패감 또는 환멸등에 대한 이야기였다.이건 진보의 실패라며 부둥켜 안은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또는 인간이 이기적 동물이며 경제문제에 국가가 관여하면 북한된다고 믿는 '시장신'을 섬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노암촘스키(언어학자)>60년대를 회상해보세요.무엇이 없었는가.여성운동이 없었습니다.환경운동도 그렇고요.사실상 반전 운동도 없었습니다.이 모두가 전쟁을 여러번 겪은 끝에 60년대 말에 나타납니다.제 3세계 연대운동도 지구적 정의실현운동도 없었습니다.우리 삶의 일부인 이 모든게 그냥 없었습니다.이런 변화는 지난 40년 동안 나타났는데,사람들이 환멸에 빠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난 포기했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때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게 확실합니다.
로버트 라이시(정치학자)>..미시경제학이 생략한 것은,우리는 머릿속에 공통 선을 향한 소망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소망만 지닌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것,세계를 위해 바람직한 것에 관한 이상도 지니고 있습니다....
나오미 클라인(언론인)> 문제가 너무나 거대해서 그냥 집에 앉아 텔레비전이나 봐야겠다는 느낌에 압도당할 때 사람들은 시급성을 잃게 됩니다.그래서 작은 것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개인적으로 시작하는 거죠.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치는 어떤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런 거대한 쟁점들과 이 모든 사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만 여기서 그치는 건 아닙니다.이걸 입구로 이용해야하고 이어서 이런 부정행위가 가능하게 해주는 정책과 권력 체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니퍼 리닝(의사)>여러분의 모든 상호작용 속에 불편함을 날카롭게 품는 것이 제가 보이엔 지금 이 세상 내 존재의 핵심입니다......(하버드생)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을 위해 치른 모든 희생과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기 위해서 그동안 한 모든 일은,이 자리에 오는게 그리고 여기서 성공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그 노력을 깊이 존경합니다만,인생의 마지막에 여러분이 "이 일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어"라고 말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폴파머(의사)> 제가 불가향력에 압도당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하던가요?저는 완전히 압도당했음을 알게 됐습니다....그러나 우리 일은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이 일은 중단 될 수 없습니다...아무리 상상을 해보아도 저는 홀로 일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우리 가운데 한 명이 완전히 압도당했다고 느낄 때,그렇게 느끼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팀 내부에 있게 마련입니다.제 동료들과 저는 서로를 이렇게 상기시킵니다...당신이 압도당했다고 느낄 때 그렇게 느끼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 말입니다.그리고 당신이 봉사하고 있는 그 사람들은 결코 압도당했다고 느끼거나 절망에 빠지도록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 다는 것 깨닫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