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아직 못봤는데 보고 싶어진다.보관함에 책은 쌓여가고...

[책읽기 365] 박제가 ‘궁핍한 날의 벗’

입력: 2007년 01월 31일 18:27:13
 
합종연횡의 계절이 왔다. 어제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으로, 오늘의 벗은 내일의 원수로 바뀐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잡는 것이며 12월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변신도 받아들일 태세다. 유권자는 혼란스럽다. 나 외에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한결같음의 위력, 맑은 영혼이 그리울 때는 박제가 산문선집 ‘궁핍한 날의 벗’(태학사)을 든다. 이 책에서 궁핍은 물질적 가난이자 희망 없는 시절에 대한 배고픔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백동수 등은 종로 백탑(원각사지 10층석탑) 아래 모였다. 시를 짓고 노래하며 춤을 추지만 그들을 위로한 건 시문이나 가무가 아니다. 함께 분노하고 함께 취해가는 벗의 눈망울이 하루하루를 버티게 만드는 힘이다.

그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맹세했다. 초발심을 잊어버리지 않기, 제도의 권위에 눌리지 않기, 관례를 혁파하고 하루하루 새로운 정책들을 주장하기. 정조 등극과 함께 그들에게도 기회가 왔다. 이룬 것도 있고 더 큰 절망이 찾아들기도 했지만 백탑파의 삶은 변절이나 배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함께 늙어간 멋진 벗들이 서로의 삶을 살폈기 때문이다.

신문을 가득 채우는 말들의 상찬이 의심스러운가. 국가지도자로 나서려는 그들의 벗을 살펴보라. 궁핍한 시절을 같이 이겨낸 오랜 벗들이 그와 어깨 걸고 있는가. 아니면 지난 시절 풍광은 모조리 사라지고 멋진 오늘과 더 멋진 내일만 홀로 그려내는가. 독불장군이 새 역사를 열어가기는 어렵다. 정조 시절에도 또 21세기에도.

〈김탁환/소설가·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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