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목소리 2 - 여성 성악가편
유형종 지음 / 시공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호모섹슈얼이다.이 무슨 충격적인 커밍 아웃이란 말인가? 드디어 드팀전도 청소년기부터 숨겨왔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인가? 그렇다 이 자리는 솔직히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리다.(기자들 다 불러모아..)나는 음악적으로 분명히 호모섹슈얼이다.내 CD 장을 뒤지고 학창 시절 듣던 LP음반을 찾아봐도 여자가수 이름 찾기 힘들다.아이들이 마돈나,신디 로퍼에 열광할 때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얼굴 예쁜 올리비아 뉴튼 존도 콧방귀를 꼇다.하물며 김완선이니 하수빈이니 하는 댄스하는 인형들이야 오죽했겠는가? 나의 음악적 정체성은 분명 '남성애호증'이다.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그냥 예전 부터 여자가수보다는 남자가수들의 다이나믹함,호소력들이 마음에 들었다.특히 학창시절 나의 고향인 '락'계는 '마초'들의 천국이었다.머리는 산발을 하고 온몸에 그림도 그리고 무대 위에선 괴성과 폭력이 난무했다.한마디로 그 세계에서는 '기집애'같은 가수는 조롱거리 밖에 되지 않았다.내 고향이 음악시 락구 여서 그랬는지 그 이후 꽤 어른이 될 때까지 여자 가수들에게 그다지 열광해본 적이 없었다.물론 지금이야 예전처럼 나의 성 정체성이 편벽된 것은 아니다.그러나 결론만 성급히 말하자면  나는 여자 가수들보다 남자 가수들의 목소리를 훨씬 좋아한다.

여자 가수들에게 그다지 큰 애정을 갖고 있지 않던 내게도 정말 혹하게 하는 가수가 몇 명은 있다.'내 마음대로 뽑은 3명의 디바'라고나 할까? '빌리 홀리데이-메르세데스 소사-마리아 칼라스' 이렇게 세 여인이다. 음악 외적으로 이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굴곡 심한 인생이 비슷할 것이다.홀리데이는 창녀 출신에 흑백차별이 심한 시대의 여성흑인이었다.칼라스는 미운 오리새끼에서 화려한 성공,세기의 스캔들과 비참한 몰락,소사는 정치적 이유로 오랜 시간 외국 망명객의 신세였다.음악적으로는 다른 장르에 있었으면서도 공통점이 있다.이들의 목소리는 예쁘지 않다는 것이다.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는 엘라피츠제랄드의 날아갈 듯 한 스캣에 비하면 막걸리통 흔드는 소리다.마리아 칼라스는 가끔 듣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한 느낌을 준다.대신 이들의 강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음악적 호소력'이다.자신의 곡을 부른 가수들보다 훨씬 더 곡의 느낌을 살려주는 메르세데스 소사.Gracias a la vida를 부르는 그녀의 음성은 원곡자인 비올레타 파라보다 깊이 숙성된 맛을 준다.그녀가 불렀던 유팡키의 노래곡집들도  숲에 들어가 초록을 부풀리고온 바람처럼 풍요롭다.이 세명의 가수들 중에서 음반이라는 매체적 제약으로 인해 가장 손해보는 사람은 사실 마리아 칼라스이다.그녀가 종사했던 장르가 오페라이다 보니 그녀를 무대에서 분리해서는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물론 홀리데이나 소사 같은 경우도 무대 위의 매력이 대단했을 것이다.손바닥만한 음반은 가늠키 어려운 라이브의 가치가 그것이다.이는 굳이 위의 가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기에 길게 논하지 않겠다.

<불멸의 목소리2>는 아멜리타 갈리 쿠르치로부터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까지 20세기 활약했던 여성 성악 25명을 다루고 있다.마리아 칼라스는 이중 활약시기로는 중간쯤에 해당한다.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현역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은 가급적 배제했기 때문에 최근 가수들의 행보를 만날 수는 없다.그나마 각 장의 끝부분에 안나 네트레브코,마리아 굴레기나,체칠리아 바르톨리 등을 언급하고 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마리아 칼라스의 음색이 언제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사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이 있다.시원하고 매끄럽게 뽑아주는 가수들의 소리를 듣다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조안 서덜랜드의 리릭 콜로라투라를 듣다보면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선다.(그녀의 딕션은 뭉게지지만..) 젊은 시절 레나타 스코트의 <라트라비아타>음반을 듣다보면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시원하게 노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리아 칼라스보다 어떨 때는 훨씬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몽세라 카바예는 어떤가? 그녀의 우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메차 보체는 황홀하다.정말 작은 새와 같은 리자 델라 카사,루치아노 폽등의 가벼운 노래를 듣다보면 마리아 칼라스의 뻑뻑함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만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녀의 진가를 알려면 음반 하나를 통째로 들어봐야 한다.실연에서는 엄청 났을 카리스마를 직접 볼 수 없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나 음반 전체를 듣다보면 그녀가 각 캐릭터를 얼마나 잘 소화해내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마리아 칼라스말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단연 몽세라 카바예이다.뚱뚱한 오페라 가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쓰리 테너 중 한 사람인 호세 카레라스와 동향이다.카바예가 끌어주지 않았다면 호세 카레라스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이름을 높이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물론 그의 실력이라면 어떻게든 눈에 들었겠지만 말이다.) 몽세라 카바예의 음반 중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 <아이다>음반은 개인적으로도 최고의 아이다 음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리카르도 무티의 음반이 나오기 전에 최고의 음반이었던 카라얀반과 비교하면 흥미롭다.카라얀-레나타 테발디-카를로스 베르곤치-줄리에타 시묘나토-코닐 맥닐/무티-몽세라 카바예-플라시도 도밍고-피오렌차 코소토-피에로 카푸칠리. 진짜 오페라계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은 총동원된 캐스팅이다.마치 매직 존슨이 이끄는 80년대 NBA 올스타팀과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90년대 NBA 올스타팀을 보는 듯 하다.개인적으로는 몽세라 카바예-피오렌차 코소토 라인업이 훨씬 예리하다고 생각한다.(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 같다.)

여성 성악가들을 살펴보다가 요즘 오페라계가 '대형가수'들은 사라지고 '비디오형 가수'들의 전성시대라는 류의 기사가 문득 떠올랐다.아무래도 DVD라는 매체가 확산되다보니 산업변동에 따른 극장계의 변화가 아닌가 싶다.대형 가수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비디오형 가수들이 등장하는 것에 그닥 큰 불만은 없다.오페라 팬들도 뚱뚱하고 나이든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보다는 안젤라 게오르규같은 예쁜 비올레타를 볼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다.예전 만큼 다양한 목소리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디오형 가수라는 오페라가수들이 실력이 유난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아직 보수적인 클래식계가 예쁘다고 다 봐줄 정도로 마음이 넓지는 않아보인다.전방위적인 대중문화의 공세 속에서 오페라를 뒤적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생각해본다.그리고 좀 예쁘고 잘생인 오페라가수들이 나와서 인기를 얻고 오페라에 대한 관심도 좀 높여도 되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본다. 

 여자 오페라 가수중 예쁜 3인방 뽑으면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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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1-28 19:02   좋아요 0 | URL
예술적 불륜의 짜릿한 일탈이군요. ㅋㅋ
님의 음악 리뷰를 읽노라면 음악의 세계에 빠지는 일도 아름다운 한 세상으로 들어가는 일일 듯 합니다.^^

kleinsusun 2007-01-28 19:55   좋아요 0 | URL
음하하...예전에 <카르멘> 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아무리 노래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숨쉴 때 마다 드레스가 터질 것 같은 뚱뚱한 여자가 카르멘을 연기하는 건 내용에 넘 안 어울리지 않나... ㅋㅋ

드팀전 2007-01-28 23:22   좋아요 0 | URL
글샘님>음악이 없었다면 세상이 얼마나 팍팍했을까요...대중가요든 오페라든..
수선님>아무래도 그런 경우 극적 몰입이 떨어지긴 하겠지요.^^ 그래서 어떨때는 음반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시각은 청각에 비해 너무 직접적이어서 상상할수 있는 공간을 열어놓지 않으니까요.

2007-01-29 0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