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365] 안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입력: 2007년 01월 03일 18:14:44
 
이 소설은 앙드레 말로가 1933년 당시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네번째로 출판했다. 내가 ‘인간의 조건’을 원어로 처음 읽은 것은 6·25 휴전 직후인 50년대 초, 시인·작가의 꿈을 꾸던 대학시절이었다. 내 불어가 서툴러서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내가 이 책에서 받은 강렬한 정신적·미학적 충격과 흥분은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이 소설이 이같이 내게 다가오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소설의 무대는 1920년대 청조로 대표되는 전통적 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그러나 다같이 서구적인 이념으로서 근대화라는 이름의 거대한 전환기를 맞은 중국 근대사의 한 작은 토막이다. 1927년 3월21일부터 4월12일 아침 6시까지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일어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의 몽타주로 구성되어 있다.

나를 사로잡은 이 소설의 힘은 그것의 드라마틱한 역사성 때문인가?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이 책이 보여준 정치적 이념 때문일까? 책은 정치소설이 아니다. 이 책에서 감지되는 사디스틱한 동시에 마조히스틱한 폭력성 때문일까? 이 소설은 최근 젊은이들의 공격적 본능에 의존하는 폭력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이 이 소설의 서정적이자 낭만적이고, 극적이자 수려한 문체와 표현력 때문일까? 약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실험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의 힘은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실존적 조건에 대한 작가 말로의 철학적, 아니 끈질긴 종교적 천착과 깊은 통찰력에서 그 원천을 찾을 수 있다. 소설 인간의 조건은 소설이기 이전에 인생의 숭고한 의미에 관한 깊은 사색록이다.

〈박이문 연세대 특별초빙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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