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낸 시간은 늘 격동의 시기로 기억되는 법이지만, 20세기는 특별히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세기였던 것 같다. ‘탈20세기 대화록’(아카넷)은 조인원 경희대 교수 등 국내 학자들이 9명의 세계적인 석학들과 가진 대담을 통해 21세기를 위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모색한 책이다. 석학들의 깊은 성찰이 대담자들의 입을 통해 훨씬 소화하기 쉬운 내용으로 전달된다.
20세기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21세기에도 여전히 인류 최대의 관심사인 환경위기를 진단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에코과학을 제시하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시작한 대화는 인간들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넘어 지구윤리를 정립하자는 한스 큉의 통찰에 이른다.
지구화 시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존 던의 전망과 ‘21세기 제국’의 흥망에 대한 안토니오 네그리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뤽 페리는 여전히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고 글렌 페이지는 비폭력 리더십을 역설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과 이노구치 다카시의 동북아 공동체에 대한 분석과 함께 로베르토 웅거는 또 다른 미래를 위한 혁명정치를 꿈꾼다. 이 모든 석학들을 만나고 나면 당신은 어느새 그들의 어깨 위에서 21세기를 내다보고 있을 것이다.
‘이념 이후의 시대를 말한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모든 이슈마다 극과 극으로 찢어지는 전근대적인 우리 사회에 특별히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사 청산에서 기인한 좌우 이념 갈등, 성장과 분배의 논쟁에 휘말려 갈피를 못 잡는 철부지 우리 경제, 중국의 때아닌 동북공정 반격에 무참히 꺾여버린 동북아 중심국가론….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공영의 21세기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당신에게 자신있게 이 책을 권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자연과학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