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낮게 드리운 아침입니다.떨어진 낙엽이 작은 회오리를 감으며 유령처럼 발끝에서 맴돕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최근 정치인들이 자주 보입니다.차기 대선 유력후보들입니다.대연합론에 정신없는 여당 인사는 거의 없습니다.주로 한나라당 인사들입니다.박근혜,이명박,손학규...고건 등등.아마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들 중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한 사람이 차기 대권을 잡을 듯 보입니다.지역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은 어느 줄을 서야할지 지금 무척 고심중이라고 합니다.학연,지연,당내 인맥등을 통해 이들 후보들 역시 지역 유력자들을 끌어 모으기에 여념없습니다.

최근에 모 신문에서 샘플조사를 했습니다.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찍었던 사람들을 모집단으로 해서 그들에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다음 대선에서는 어떤 정당을 지지하겠느냐? 그 중 누구를 찍겠느냐? 등등....정당 지지에서는 조심스럽게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던 듯 합니다.특이한 것은 대선후보 중 꼽는 사람은 이명박이 많았습니다.이명박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는 잘 읽지 않아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이들 중 대다수는 개혁정부에 실망을 크게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잘라말하면 '개혁..그까짓거 해봐야 별거 아니더라' 라는 실망감이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국민의 염원을 얻어 시작한 '참여 정부'가 지난 4년동안 우리 역사에 가장 크게 남긴 오점을 평범한 서민들에게 '개혁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제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개혁실망증후군'이 들립니다.이들 중 다수는 샘플조사에 응했던 사람들처럼 지난 대선에서 제 옷깃을 잡고 '기호 2번'을 외쳤던 사람입니다.저는 그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제 정치적 신념을 따랐습니다.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그러나 개표 결과를 보며 노무현후보가 이회창후보를 극적으로 제치던 순간에 속으로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또한 보수언론들의 어처구니 없는 공격에 노대통령의 처지를 안타까와 해주었습니다.대통령 탄핵 사건이 터졌을 때는 분노했습니다.제가 노무현을 아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제게 노무현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고 도덕적인 보수 정치인'일 뿐입니다.그가 가진 한계라는 것이 처음부터 너무 명확했습니다.또한 그를 만들었다는 386정치 세력에 대해서도 사실 회의적이었습니다.단적으로 말하면 '정치적 진보'가 '일상의 진보'가 되지 못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입니다.몇 몇 정치엘리트를 국회로 보내는게 정치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때문입니다.거기에 개인적으로 알던 정치권으로 투신한  몇 몇 사람들의 모습까지 제 부정적 인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노무현을 '개혁의 잔다르크'로 여긴 분들이 많습니다.그래서 노정권의 실패는 '개혁의 실패'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노무현은 현실정치인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제고를 요청한  '이라크 파병''한미FTA '를 졸속처리 했습니다.또한 탄핵을 구원해준 국민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복귀하자마자 탄핵을 주도했던 세력들과의 '대연정론'을 흘리고 다녔습니다.임기내에 하늘이 두쪽나도 잡겠다던 부동산가격.결국  투기의 마지막 단계까지 오게 만들었습니다.지난 주 한겨레21은 <부동산거품 붕괴론 >을 들고 나왔습니다.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투기꾼들만 죽는게 아닙니다.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이후 회복에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정책 실패와 무능이 확연함에도 노무현은 '보수언론과 일부 투기세력' 탓만을 하고 있습니다.노사모의 어떤 분은 여전히 노무현을 지지한다면서 부동산에 대한 '기대심리'가 문제이고 그 '기대심리'를 갖고 있는 모든 국민들이 다 죄인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이 또한 얼핏 보면 그래 보입니다.그런데 '기대심리'는 자본주의의 발전 동력입니다.노무현은 반자본주의론자가 아닙니다.당연히 자본주의하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가치를 높이기 위해 정보를 수집합니다.그리고 재산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합리적 결정을 내립니다.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기대심리'때문에 가격이 오른다고 탓하는 것이아니라 이상한 '기대심리'가 생기지 않도록,또는 그 '기대심리'가 가진 이익과 현실에서의 이익 사이의 적절한 조정점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그걸 하지 못하고 남 탓만 하고 있으니 이젠 보수언론뿐만이 아니라 진보적이라는 신문에서도 두드려맞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쪽으로 갔습니다.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노무현의 실패'를 '개혁의 실패'로 생각하고 허무주의나 패배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는 것입니다.'어차피 개혁 해봤자...이제 개혁을 건 그딴 말은 믿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쉽게 개혁의 이상을 재단하고 창고 깊숙한 곳에 쳐박아 두지 말기를 바랍니다.'개혁의 이상','진보의 이상'이라는 것은 언제나 먼 길이었습니다.민주화 시기부터 그 이후에까지도 더 절망적인 상황이 있었습니다.물론 적이 눈 앞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어두운 터널을 견디어온 근기가 '개혁과 진보'에는 필요합니다.'철학의 빈곤'과 '현장성의 부족'이 자칫 허무주의나 패배주의로 자신을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합니다.노동자나 농민은 TV속에서 시위 하는 사람들로만 기억된다면 분명 현장성이 부족한 것입니다.그들의 손에 끼인 기름때와 주름골로 흐르는 땀방울이 나의 것과 같은 것임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물론 그들 보다 전 편안하게 살고 쉽게 일합니다.저는 그들을 자주 만나는 사람이다 보니 쉽게 등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일상에서 그러한 '현장성'을 찾기는 힘들지도 모릅니다.10년전 아님 20년전 농활을 떠올려보시고 TV 속에 나오는 늙은 농부의 하소연을 나의 일처럼 들어본다면 또 달라질 지도 모릅니다.

먼나라의 전설적인 게릴라가 인간은 꿈의 나라에서 내려온다고 했다지요.개혁과 진보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소박하지만,우리 사는 사회가 1% 더 많은 사람을 보듬어 앉고 우리 사는 사회가 1% 정의로와 진다면 그게 '개혁과 진보' 아닐까 싶습니다.우리 사회는 아직 그늘 진 곳 1% 씩 개선해야할 곳이 떨어지는 빗방울 만큼 많습니다.그렇다면 개혁의 깃발이 쉽게 내려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낮은 구름이 땅에 닿을 듯 한 날씨네요..

뒷자리 / 도종환

맨 앞에 서진 못하였지만
맨 나중까지는 남을 수 있어요
남보다 뛰어난 논리를 갖추지도 못했고
몇 마디 말로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 또한 없지만
한 번 먹은 마음만은 버리지 않아요

함께 가는 길 뒷자리에 소리 없이 섞여 있지만
옳다고 선택한 길이면 끝까지 가려 해요

꽃 지던 그 봄에 이 길에 발디뎌
그 꽃 다시 살려내고 데려가던 바람이
어느새 앞머리 하얗게 표백해 버렸는데

앞에 서서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이들이
참을성 없이 말을 갈아타고
옷 바꿔 입는 것 여러번 보았지요

따라갈 수 없는 가장 가파른 목소리
내는 사람들 이젠 믿지 않아요

아직도 맨 앞에 설 수 있는 사람 못된다는 걸
잘 알지만 이 세월 속에
드릴 수 있는 말씀은 한가지에요
맨 나중까지 남을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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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11-2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어쩐지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

마노아 2006-11-2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희망이 보입니다. ^^

blowup 2006-11-23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종환의 시에 눈물이 찔끔.

클리오 2006-11-2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종환 씨. 저 시 전 첨 봐요... 글과 어울려 참 좋네요... 조심스럽게 제 비공개 공간으로 퍼다놓을께요... 허락해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