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정각, 그들만의 시간

<미드나이터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미드나이터스 세트 - 전3권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박주영.정지현 옮김 / 사피엔스21 / 2009년 12월

한 번씩 그런 때가 있다. 눈의 깜박임을 느낄 때가 있다. 깨어 있는 동안 눈은 하루에 엄청나게 깜박일 것이다. 그렇기에 눈의 깜박임을 잘 모르고 지나가는 때가 잦다.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런데 갑자기 잠깐 긴 어둠을 느끼고 놀라서 눈을 뜰 때가 있다. 느낌상 긴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피곤해서 졸았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존 거 같지는 않았기에 그저 눈의 깜박임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혹시 내 몸에 이상이 있나 싶기도 하고 겁도 났지만, 혹시 이 시간의 균열이 생겨 잠시 시간이 멈추어 버리고 나는 굳어 있었던 건 아닌가 싶은, 그래서 잠깐이나마 눈 깜박임이 길어서 그걸 내가 느낀 건 아닌가 싶은 엉뚱한 상상을 이 책을 읽고 나서 해봤다.

지구라는 곳은 끝없는 우주의 한 부분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24시간을 나누어서 밤과 낮을 가지고 살아간다. 왜 지구에서 살아가고 왜 24시간이며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닌 이상 정확하게 모르고 살아간다. 그저 밤엔 잠을 잘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정의 이야기는 늘 존재했었던 거 같다. 귀신들이 출몰한다는 시간도 자정 이후이고, 그믐날은 자정을 넘게 잠을 안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자정은 자는 시간, 깨어 있기에는 무서운 시간이었다. 나이가 들면 자정의 무서움도 사라지게 되지만. 이 소설의 주 이야기 시간대도 자정이다. 자정에 또 다른 시간이 열린다. 예전에 즐겨보던 만화 <이상한 나라의 폴>처럼 시간이 멈추어 버리고 일반 사람들은 굳어버린다. 주위에는 회색빛 대신 푸른빛으로 둘러싸이게 되고, 자정에 태어난 일명 미드나이터스들만 그 시간에 깨어 있게 된다. 그들에게는 하루가 25시간인 것이다.

빅스비라는 조그만 마을에는 25시간을 사는 미드나이터스들이 있다. 미드나이터스들은 저마다 재능을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 이 마을에 제시카가 이사를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카고에서 이사 온 제시카는 자정 이후의 시간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처음 맞는 이 시간은 꿈처럼 몽롱했다. 게다가 비가 내리고 있었던 밤이었고, 빗방울이 다이아몬드처럼 뭉쳐 푸른빛에 반짝거려 아름다웠기에 황홀한 꿈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 날부터는 제시카에게 엄청난 위험이 따르고 자정의 한 시간이 꿈이 아니라 그녀에게는 무서운 다클링(자정의 시간에 갇혀사는 괴물)으로부터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기존 미드나이터스의 도움을 받아 제시카의 재능을 알고 나서는 무서운 다클링 일당은 그녀를 공격하기를 멈춘다. 더는 그녀는 그들이 공격 가능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재능을 알기 전에 없애버리는 것이 그 다클링의 공격이유였는데 실패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가는 듯하지만, 다클링들의 자신들만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5명뿐인 미드나이터스들은 빅스비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전의 미드나이터스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승을 보며 공부하고, 다클링들의 음모를 알아가며 또 그들의 계획을 막기 위해 힘쓴다.

미드나이터스의 재능 중 마인드캐스터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생각을 느끼고 맛보며, 접촉으로 말미암아 접촉한 사람의 마음속의 모든 생각과 지금까지의 행동들을 알 수 있고, 또 어떤 기억을 집어넣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고, 정신이상자로 만들 수도 있는 재능이었다. 사실 이 재능은 무척이나 갖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지만 세뇌당하면 입장이면 얼마나 무서운 재능인지를 동시에 느꼈지만 그런 능력이 생길 리 없으니 상상쯤이야. 그리고 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조너선의 손을 잡고 날아보는 것도 정말로 하고 싶었다. 아주 특이한 경험이 될 것인데 상상 속에서만 해야 되니 아쉬웠다. 그리고 나는 제시카의 마지막 모습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나는 판타지 소설도 좋아한다. 세상에 일어날 듯하지만 일어나지 않는 상상의 세계 속에 갇혀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나만의 시간 같다. 그래서 그런 상상들에 푹 빠져든다. 그래서 이 소설도 여운이 많이 남을 것 같다. 아주 좋아하던 드라마의 마지막을 보며 아쉬워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자정이라는 시간에 거의 책을 읽는데 책을 읽다가도 자정이 되면 혹시 하며 둘러볼 것 같은 느낌이 한동안 계속 될 것 같다. 혹시 나에게도 "세상의 모든 시간이 얼어붙고 비밀의 시간이 열" 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너구리 가족의 고군분투

<유정천가족>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유정천 가족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4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표지그림을 보고 알았어야 했다. 이 소설이 귀여운 너구리 이야기라는 것을. 너구리 얼굴과 꼬리가 있는 전차. 눈을 부릅뜨고 비장한 표정을 한 너구리의 얼굴이 전차 앞에 있고, 뒤로는 너구리 꼬리가 있으며 폭신폭신할 것 같은 털로 덮여 있는 기차에 마찬가지로 비장한 얼굴을 한 4명의 사람(한 명은 너구리 꼬리를 가진)이 앞쪽에 타고 있다. 그리고 그 전차 뒤쪽에는 늙은(책 속 스승일 것 같은) 사람이 타고 있고, 전차 위에는 어여쁜 여인이 요염하게 앉아있다. 그저 특이한 기차를 탄 가족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쳐본 나는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 나서 크게 웃어버려야 했다. 너구리 이야기라니. 그것도 둔갑술이 능수능란한 너구리라니.

이 소설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가족소설이다. 교토에 사는 너구리의 일상과 그 일상 속에 가족애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받지만, 너구리가 사람으로 둔갑한다든지, '안방'이 날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와인이라고 하는 것처럼 엉뚱하며 또 유쾌하다. 그리고 멍청한 은각, 금각의 사악한 계략에 너구리 가족이 넘어갈 때면 뒷부분이 궁금해 책장 넘기기가 빨라졌다. 한마디로 너구리가 날 울렸다 웃겼다 했다.

교토 다다스 숲에 사는 한 너구리 가족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 이유는 일 년에 한 번씩 너구리를 먹는다는 '금요구락부'라는 인간모임에 희생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너구리 쪽에선 유명했다. 용감하고 대단한 너구리였다. 그랬기에 그의 죽음은 모든 너구리의 슬픔이자 아쉬움이었다.(그의 동생가족은 빼놓고) 그 아버지 너구리에게는 아들이 4마리 있었는데, 아버지의 성품을 잇고 싶어하지만 그런 재목이 못되어 늘 고민하는 첫째, 야이치로. 아버지의 죽음으로 개구리로 살아가며 너구리 세상을 등지고 사는 둘째, 야지로. 재미있는 게 좋은 거라는 걸 신조로 여기며 텐구스승을 가끔 보살피는 셋째이며 소설 속 '나'인 야사부로. 아직 어려서 둔갑이 서툰 막내, 야시로. 이 네마리가 그들이다. 그리고 너구리 냄비요리로 죽은 남편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아들들은 냄비요리가 되지 말라고 항상 당부하시는 엄마. 그들은 아버지의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싼 음모를 서서히 밝혀내고 그들이 또 냄비요리로 될 위험을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괴롭히는 아버지의 동생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동생이랑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래서 4형제는 서로 잘 지내길 바랐는지도 몰랐다. 아버지의 용맹함을 가지고 있던 아들은 없었지만 4형제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었기에 4명이 언제나 같이 있어야만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형제들의 우애를 강조했다. '바보 같은 피'로 그들은 아버지와 형제간의 끈을 이어나가는 것 같이 보였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동생과 형제간의 우애가 있었더라면 아버지의 죽음도, 가족에게 위험도 없었을 테니, 어쩌면 아이들의 미래를 보다 안전하게 하기 위해 더 바랐을지도 몰랐다. "피를 나눈 형제가 적이 되었을 때, 그때는 최대의 적이 된다."(404쪽) 라고 말하던 무시무시했던 아버지의 경고가 이를 뒷받침해줄지도 몰랐다.

소설 속 너구리들은 만사태평하다. 겨울에 '금요구락부' 모임에서 너구리 고기를 먹는다는 소문이 나면 난 무서워서라도 집에서 꼼짝 않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웬만해선 잘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너구리들은 조금 하면서도 겨울에도 나다니고 너구리 요리가 된 다른 너구리를 위해 슬퍼하며 다시 새해를 맞으며 잊고 산다. 이것은 너구리의 '바보 같은 피' 때문이라고 야사부로는 말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운 일이 벌어져도 일상을 벗어날 수 없기에 나에겐 행운이 올 거라, 조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닌다. 어쩔 수 없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지금 현재생활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배신과 탐욕은 인간만이 행하는 행동은 아닐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으로 둔갑하는 너구리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과 너구리와 텐구가 어울려 사는 도시. 그렇다면 나는 인간이 될까, 둔갑할 수 있는 너구리가 될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다. 혼자 키득거리는 내게 "재미있는 건 좋은 거야" 라고 야사부로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너구리 3부작 시리즈 중 이 소설이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나머지 2개도 은근히 기다려진다.

그리움이 불러들인 유년의 추억

<데샹보거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데샹보 거리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09년 10월

소설 <빨간 머리 앤>에서 레이철 린드 부인은 부엌 창가의 작은 창문을 통해 마을을 바라본다. 계절마다 보이는 꽃이며 시내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일을 꿋꿋이 해나간다. 그런데 그 창문으로 이런 계절의 변화만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 마을을 들고 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언덕길도 보았다. 특히 그 길을 들고 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을 린드 부인은 즐겼다. 그 길을 바라보며 마을에서의 소소한 일상들과 마을에서의 특별한 일들을 알아갔다. 그 알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약간의 노동이 필요했다. 이 소설 <데샹보 거리>도 크리스틴의 어렸을 때 데샹보 거리로부터 알아간 여러 이야기가 들어 있다. 린드부인은 창문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알아갔다면 크리스틴은 데샹보 거리를 통해서 알아가는 것이다.

데샹보 거리는 캐나다의 매니토바 주 위니펙 근교에 자리 잡은 조용하고 작은 거리이다. 그 거리에 집을 짓고 크리스틴의 가족들은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도 하나씩 어린 크리스틴의 눈으로 보여진다. 아빠와 엄마, 언니들, 오빠와 또 이웃과 친척들의 일상 이야기들이 소소하게 펼쳐진다. 때론 무거운 이야기라도 소녀의 눈에 비친 무거움은 담담하게 그려진다. 이 소설집은 크리스틴의 눈으로 본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이민자를 관리하는 직업을 가진 아빠는 집에 자주 오지 못하지만, 집에 와도 가족들에게 살갑게 대해주지는 않는다. 아빠는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진한 커피를 마시며 밤을 좋아하는 아빠.<낮과 밤> 아빠는 낙원 같았다는 마을에 불이 나면서부터 어두워져 버렸는지도 모른다.<던리우물> 크리스틴의 엄마는 아침을 좋아하고 언제나 제자리만을 요구하는 남편을 답답하게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크리스틴과 같이 남편 몰래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나도 결혼을 하고 집에만 있으면서 답답함을 느꼈던 적이 있는데 크리스틴 엄마의 몰래 여행은 날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담하게 여행할 수 있던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가 간 곳은 그녀와 남편의 어린 시절의 상징들인 곳이었다.<집 나온 여자들>

그리고 크리스틴에게는 언니가 세 명 있었는데,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엄마와 아빠의 반대에도 결혼한 언니, 크리스틴은 사랑하는데 왜 결혼을 못하게 하는지 엄마, 아빠를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비구니가 되어버린 언니, 크리스틴에게는 엄마와도 같았던 언니는 정신을 놓아 병원에 가게 되었다. 병원에 방문했을 때 크리스틴을 보며 잠시 돌아왔지만, 그 너머는 너무나도 멀었다. 그저 언니의 무릎에서 눈물을 흘릴 때는 내 눈에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직 가족 중 누군가를 잃어버린 적이 없는 나는 어린 그녀가 안쓰러웠다.

어린 시절 가족의 이야기는 그리움이 동반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도 한 번 훑어보게 되었다. 내가 한참 뛰어놀았던 잘려나간 나무가 많았던 그곳과 꿈에 자주 나타났던 도로. 저자의 그리움이 묻어나서 따스했던 데샹보 거리를 구경한 나는 행복했다.

길 잃은 엄마와 딸

<아사의 나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아사의 나라
유홍종 지음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나는 학교 다닐 때 국사가 싫었다. 머릿속에 통 들어올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해는 했는데 어렵기만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상관이 있는 이 이야기는 마치 국사 교과서를 보는 듯해 처음에는 답답함이 나를 옥죄었다.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이야기를 알기에,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 소설이지만, 나는 또 이해는 했으면서 잘 설명을 잘 못 하겠으니 이를 어찌하랴.

<아사의 나라>는 옛날 우리나라의 삼국시절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신라, 백제, 고구려가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싸움을 벌여야만 했던 시절, 그때 조그만 나라 가야국 연맹이 있었다. 그 속 다라국에 사는 아사의 이야기다. 아사는 아침이라는 뜻으로 다라국 공주였다. 가야 연맹은 작은 나라였기에 백제에서 통치했다가 다시 신라가 빼앗았다. 다라국이란 나라는 있는데 통치권은 없고, 왕이 있으나 그저 이름뿐이었다. 그래서 다라국의 독립을 위해 반란을 일으키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라에 대항하긴 어려웠다.

신라, 백제, 고구려가 한강을 놓고 싸우게 됐을 때 군사가 부족했던 신라는 다라국의 군사들을 불러들이기에 이르렀고, 다라국의 도독이었던 설 장군은 급히 다라국을 떠나야만 했다. 아사와 설 장군은 처음 본 순간 서로에게 반해, 서로 탐하고 사랑에 빠졌었다. 그랬기에 갑작스러운 이별은 그들에겐 처음 맞는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먼 훗날을 기약하며 떠나지만, 그들에겐 더는 먼 훗날은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신라 군사가 비어 있던 이 기회를 백제가 그냥 둘 리가 없었다. 백제의 침략으로 아사는 백제의 포로로 잡히고, 백제로 가면서 귀족들의 술수로 후궁에 되기 이른다. 그리고 후궁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회임, 설 장군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다행히 의자왕의 아이를 회임했다고 속이고 백제탈출 기회만 노렸다.

그리고 사비(사비란 이름도 '아침'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아사의 딸이었다. 아사와 너무나 닮은 딸 사비는 아사의 시중을 들던 설파와 같이 백제의 작은 마을에 살았다. 스님의 제자로서 사비는 예언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신녀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신라가 당나라랑 힘을 합쳐 백제를 공격하게 되었고, 백제의 실제 권력을 지니고 있던 의자왕의 왕비, 은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서서히 백제는 신라에 잠식당했고 신라의 장군이었던 설 장군은 드디어 딸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설 장군은 또 전쟁에 나가야만 했기에 그들의 만남은 아쉽기만 했다. 그리고 사비는 엄마 아사가 그렇게 원했던 곳, 대야주로 가게 되었다. 이미 대야주에서 다라국은 없어졌고, 그녀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절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사와 사비는 엄마와 딸이다. 그렇지만, 둘은 생긴 것부터 이름의 뜻, 운명까지 똑 닮았다. 한 남자를 사랑하고 다시 만나지 못하며 그리워하며 살았던 아사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단 한 번 만나고고 산속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던 사비. 나라 잃은 설움과 님 잃은 아픔과 보고 싶은 그리움을 견뎌내야만 했던 아사. 그리움과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 살아야만 했던 사비. 그리고 마침내 아사의 이루지 못한 꿈을 사비가 대신 이뤄주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딸은 엄마를 많이 닮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처럼 닮은 사람이 또 있을까.

전쟁은 영역을 넓히기 위한 목적과 영역을 지키고 싶은 목적을 수반하지만, 그에 따른 희생은 언제나 크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죽은 사람과 가족은 기쁘지만은 않을 테고, 전쟁에서 지면 비참함이 넘치는 피비린내만 있을 뿐이다. 우리의 역사에는 언제나 전쟁이 있었고, 그 전쟁에서 이겨야만 했을 테고. 내가 전쟁에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하든, 전쟁터에 보낸 자식이나 남편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든 마음이 불편한 건 매한가지다. 전쟁생각은 날 침울하게 만들 뿐. 책을 읽으면서 서로 싸워야만 하는 전쟁과 주권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 속의 우리의 모습도 간간이 보여 마음이 아팠다.

국사는 잘 몰랐고 어려운 과목이기만 했지만, 이 소설 덕분에 그 속에 숨어 있던 두 여인의 삶을 만나게 해주었고, 더불어 국사의 단면도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며, 다 읽고 난 후 두 여인의 삶이 애틋해 긴 한숨을 내쉬었던 소설이었다.

좋은 이별을 위한 애도와 치유

<좋은 이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나는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분명히 이 책 제목을 봤다. 그리고 읽을 당시에도 수없이 제목을 봤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 무슨 책 읽고 있지, 라고 생각하면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자주 제목을 확인했지만, 누군가 내 기억의 한 조각을 가져가 버린 듯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도. 지금 생각해보니 제목에서 주는 아이러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 것이다. 이별이란 말 앞에 "좋은"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별이라는 말 자체로 마음 한 편이 아파져 옴을 느낄 텐데, 그러면 이별은 나쁜 이별이지, 좋은 이별은 아니지 않은가 싶은 내 무의식의 생각이 이 책 제목을 기억해 내는 걸 어렵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그 이별을 경험하면서 저마다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를 치유할 생각보다는 빨리 잊자고 생각하기 바빴다. 사실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 상처를 잊었다는 이유로, 아니면 자신의 방법으로 극복했다고 내버려둔다면 나중에는 감각이 무뎌져 눈물을 흘리지 않거나 상처를 외면하게 된다. 이별에는 사람과의 이별에서부터 애착하고 있던 물건에의 이별까지. 종류도 많고 그로 말미암은 상처도 많다. 그렇기에 잘 다스려야만 하는 것이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한창 유행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언제나 잘 웃는 사람들로 시작하는 글인데, 잘 웃는 사람들은 슬퍼도 슬퍼하지 않고 웃음 뒤에 감추어 둔다는 그런 글이었다. 그 글에서 나는 왜 굳이 슬픔을 감추면서까지 웃음을 지어야만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질 수 없는데, 다른 것들에게 솔직해질 수 있을까 싶어 분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함께하고 보니 그런 사람들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약하고 창피하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잘못된 생각이었고, 그것은 어렸을 때 잘못된 치유방법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런 감정에 솔직해지라고 말하고 있다. 눈물이 나면 울고, 상처를 돌아보고, 지금 피한다고 영원히 피할 수 있는 상처가 아님을 알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영원히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좋은 이별> 이 책은 작가가 심리분석을 받으면서 겪었던 일들과 깨달았던 일들을 예시로 들고 있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여러 인물로 예시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고, 또 소제목에는 시의 한 구절이 있어 여러 가지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해 주었다. 그리고 예전 나의 이별에서 내가 상처받고 한 어떤 행동들도 있었고, 지금 내가 상처받았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큰 이별을 겪게 된다면 나는 이 책에서의 행동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머리와 심장은 세상에서 제일 멀다, 라는 말이 있기에. 그렇지만, 이 책을 읽었으므로 과거에 했던 나를 더 망치게 하는 방법은 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드는 것 같다. 모쪼록 가슴을 에는 이별은 덜 경험하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어쨌든, 이별이 꼭 다가와야 한다면 좋은 이별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나는 당연히 책을 읽는 치유방법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