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주의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
분홍주의보
엠마 마젠타 글.그림, 김경주 옮김 / 써네스트 / 2010년 2월
평점 :
내 주위에는 분홍색이 많다. 옷부터 시작해서 다이어리, 계산기, 핸드폰 케이스까지. 그런데 분홍주의보라니, 혹시 나에게 어떤 주의를 주려는 책인가 싶어 책 표지를 든 순간 뜨끔했다. 그렇지만, 전혀 아니었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었다. "사랑이 스며오는 무렵"의 몸이 분홍으로 물드는 그런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진한 분홍색 덮개를 넘기고 나면 일단 푸른색이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한 장씩 넘기면 책 대부분이 그림이 차지하고, 시인지 산문인지 잘 모르는 글 몇 줄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충 읽었다. 사실은 정신이 없어서 집중할 수가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읽고 나니 그 속의 분홍의 느낌을, 사랑이 스며드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쓴 일기 같은 짧은 글과 그림은 온몸이 분홍으로 물드는 상큼한 시절의 사랑에 대한 기쁨과 슬픔과 기대를 얘기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사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고 얼굴이 빨개졌던 거 같다. 그걸 어떻게, 하며 무슨 말로 형용할 수도 없었다. 그런 사랑이 이 책에는 있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며, 베개를 빌려주고 같은 꿈을 꾸기를 바란다. 그리고 헤어지면 얼마나 아플까, "점점 몸이 지워지는 거 같은" 느낌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더 다가가기를 바라고, 꿈에서도 함께 하기를 바라며 그 사랑의 느낌을 "고백"하기를, "고백"받기를 원한다. 푸른빛과 초록빛이 가득한 세상이 점점 분홍빛으로 물들 것이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성장통을 겪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과 이별의 감정들을 이 책은 그림과 함께 솔직하게 표현해 놓았다.
이 책은 28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경주가 번역했다. 그래서 책 속에 글자들이 그림과 잘 어우러졌으며, 마치 시를 한 편 읽은 듯한 아련한 느낌을 불러들였다. 특이하게 책 속에는 쪽수가 없었다. 마음에 드는 글귀가 있어 기억해 뒀다가 적어야지 하고 넘기면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 뭐, 쪽수가 적으니 다시 한 번 더 읽어도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지만 말이다.
"성장이란 어쩌면 고백에 관한 자신의 다양한 물음들이 아닐까 한다." 김경주 시인은 성장을 이렇게 말했다. 나의 성장기 사랑, 성장통은 잘 생각은 안 나지만, 그런 것도 같다. 풋풋하고 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책이었다. 이 책으로 내 안의 칙칙한 회색들이 분홍으로 물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책 속 밑줄긋기>
사랑은 아마도 한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일일 거야
그 여행은 밤마다 초록색 베개를 안고 숲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두렵지만 깨고 나면 두 눈이 따뜻해지는 꿈 같은 거겠지……
등대가 바다를 비추면 어둠 속에서 고기들의 눈이 맑아지고
등대가 하늘을 비추면 어둠 속에서 구름 속이 훤해지고
등대가 사람을 비추면 그 사람은 잃어버린 방향을 찾게 된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에게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가만히 그의 '곁'이 되주면 돼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것 같은 '곁'은 든든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