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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naver.com/cap10022002?Redirect=Log&logNo=130007613032

노래 한 곡. 레넌, Gimme Some Truth

 

·          Action: 행동과 행위에 관한 분명한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산만하게 말을 바꾸어가며 옮기게 될까봐, 흔히 언급되는 방식으로 나누어 생각하기로 했다. 행위에는 의도에 따라 무엇을 행함의 의미를, 행동에는 움직임이라는 동작의 의미를 각각 크게 고려하고 문맥에 따라 적용했다. 

 

·          Virtue ethics has been characterized in a number of ways. 무척 여러 번 고쳤다 쓴 문장이다.

 

·          덕 윤리학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 특징이 부여되어 왔다/지워져 왔다 에서 출발, 덕 윤리학을 특징짓는 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 경우 좀 길다는 느낌이 들어서 결국 way 의 의미를 줄이고 해결을 봤다.

 

·          특징-짓다 (特徵--) [-찡짇따] -지어, -지으니, -짓는[-]〕「동」【을】 어떤 사물이 가지는 특징을 규정짓다. ¶대중문화만이 현대의 문화를 특징짓는 것은 아니다./이 토기는 신석기 시대를 특징짓는 유물이다

 

·          characterize

·          1 <사람·사물의> 특성을 기술하다, 성격을 묘사하다;<사람·사물을> (…으로) 간주하다, 보다as
2 <
사물이> … 특성[성격] 부여하다, 특징 지우다

 

·          그 뒤 (1)(2)(3)(4)의 경우 파악은 어렵지 않았으나 concerned with, address oneself to 등을 어떻게 받아야 정확하면서도 잘 읽히는지를 생각하다가 시간이 많이 갔다. Concerned with 는 관련된의 의미가 우선이겠으나 is about 의 의미가 또한 있으므로 그것, - 에 관해 다루는 것 으로 받았고 address oneself to 는 공식으로 무엇에 관해 평하다의 의미가 사전의 앞쪽에 나오나, 여기서는 계속 ;;; 로 이어지는 부연의 의미이므로 be concerned with 와 크게 다르지 않게 받았다.

 

·          Codifiable 은 많이 고심했던 단어인데, 아마 내가 이 말의 개념을 잘 잡고 있지 못하여 그랬던 것 같다. 성문화라는 말을 서문 옮길 당시 썼다고 기억하는데, 이제 보니 별로 적절하지 않은 단어 선택이었다 싶다. Codify 에서 주 의미를 가져 오고 codified in rules & principles 로 감을 잡아서, 규칙등을 원소로 쪼개질 수 있다 단위와 될 수 있다 체계적으로 구조가 짜여질 수 있다 등등의 의미로 옮겼다.

 

·          Action guidance 는 지금도 여전히 행위지침이라는 말로 옮기는 것이 어색하다. 거듭 찾아 보다가 행위 준칙이라고 옮겨 둔 것을 보았고, 준칙 [準則]  [명사] 1 준거할 기준이 되는 규칙이나 법칙. 2 <철학>=격률.  임을 확인하고, 그러나 그 말은 rule 이 되므로 결국 providing action guidance in rules 를 하나로 묶어, ‘행위의 기준을 규칙으로서 규정하는’ 이 그 뜻이라는 걸 확실히 하고 그러나 기준은 guide 의 의미라기 보다는 도움, 지침, 지도, 안내 의 의미인 것이 맞으니 (아마도 instruction) 행위 지침이라는 말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다.

 

·          On the contrary, I think that all of them, in their crude brevity, are seriously misleading. 이 문장에서는 밑줄 친 부분을 어느 정도의 강도로 옮길까를 좀 고민했다. 의미상으로는 제시된 설명들이라는 것이 조악하게 (아주 거칠게) 내용이 생략 된 상태로, 고로 그렇기 때문에, 덕 윤리학을 사람들이 오해하게끔 한다고 보는 저자의 판단이라는 걸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in their crude brevity 로 된 구의 형태를 방금처럼 다 풀어서 쓰기가 걸려서. 이것저것 해 보다가 결국 in state or quality 의 의미가 있음을 재확인하고 그에 따랐다.

 

 

·          Misleading 은 계속 오도로 썼는데, 이 말은 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오도되다와 오도하다를 혼동하는 것 같아서 국어사전을 몇 번 보면서 했다.

 

·          오도07 (誤導) [ː-] 「명」그릇된 길로 이끎.
  오도-되다02 [ː--/ː--]「동」=>오도07. ¶오도된 여론/오도된 역사의 흐름을 바로잡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
  오도-하다03 [ː---]「동」【을】 =>오도07. ¶진실을 오도하지 마라./나에게 있어서의 최선의 순리는 무엇이며, 그 순리를 억압하고 오도하는 역리는 어떤 것인가를 잘 가늠해야 한다.≪한승원, 해일≫§

 

·          Of course, there is some truth in each of them, which is why they are so common, and I shall return to them as we proceed, to note what truth, with what qualifications, they may be seen as containing. 관계사 절은 서술적으로 받았다. With what qualification 이라 함은 어떤 조건으로, 혹은 어떤 definition 으로 어떻게 한정된 상태로 의 의미일텐데, 뒤에 specification 등의 말들이 자주 나와서 그냥 한정, 제한의 의미로 썼다. 그리고 이때 레넌의 gimme some truth 생각이 나서 찾아들었다.  

 

·          John Lennon Gimme Some Truth

 

·          Readers familiar with the recent literature I mentioned in the Introduction, which has blurred the lines of demarcation between the three approaches in normative ethics, will no doubt have discarded or qualified them long since.

 

·          이 문장이 이번 번역에서 가장 골치아팠던 부분이다. Will 이 나오지 않았다면 썩 문제될 것은 없었다. Long since 는 이미, 오래 전에 그런 뜻이고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오래되도록 ---해 왔다고 완료형을 해석하면, 그래서 독자가 어떤 독자냐면 그 문헌들에 익숙한, 그 문헌을 잘 아는 독자, 라고 하면 딱 떨어지니까. 그런데 본문에는 will 이 나와 있었고, 그래서 갑자기 미래완료를 찾아 의미를 좀 따져 보았다.

 

·         
예문) 네가 80세가 되면 로봇 세상을 경험하게 것이다.
By the time you are eighty, you will have witnessed the world of robots.

 

·          만일 이대로 한다면, readers familiar with 사이에는 those who are 가 아니라 those who will be 가 들어가 생략된 것이고 의미는 독자가 그 문헌에 익숙해지게 되면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설명들을 더 쓰지 않거나 대폭 한정해 버릴 것이다. 이렇게 된다. 앞은 그렇다쳐도 long since 에서 걸린다.

 

·          어떡해야 하는지 내가 아는 바로는 잘 판단이 서지 않아서 내내 붙잡고 있다가,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면 일부 전문식견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줄 아나, 처음인 여기서는 초보독자들 식견이 높지 않은 이들도 함께 있으므로 쉬운 것부터 차차 해 가보자 의 의미로 결정을 보고 will 을 고려하지 않는 식으로 번역을 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무엇이 분명한 것인지를 꼭 좀 알았으면 한다.

 

·          The descriptions, especially when encountered for the first time, can easily be read as all making roughly the same point, and one way in which they are all misleading is that they encourage the thought that virtue ethics cannot be a genuine rival to utilitarianism and deontology. The thought goes like this:

 

·          여기서는 다른 것은 문제될 것이 없었고, genuine rival 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이론들이라 그걸 의인화 시킬지 아니면 그대로 두고 차라리 rival 을 필적될만한 이론으로 할까 망설였다. 결국엔 한 번씩 다 썼다. Encouragehelps to develop something 이란 의미를 뭘로 받나, 북돋다 자극하다 등등 해 보다가 조장하다로 정해서 썼다.

 

·          Now the descriptions do not actually say that virtue ethics does not concern itself at all with right action, or what we should do 이 경우에서 잘 드러나는데, 나는 가끔 우리말로 문장을 쓸 때 부사의 위치가 헛갈린다. 위치에 따라서 어감이 다르고 의미도 다르게 올 때가 분명히 있으니까. 영문의 구조로만 보면 저 말은 주장하는데 그건 실제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 것아니다 혹은 실제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아니다.  이렇게, 이와 은 사이의 어감도 좀 걸렸고, 저런 뜻으로 옮겼을 때 실제로 사실상이란 말의 위치를 어디에 넣어야 제일 좋은지 그 점도 볼 때마다 한 번씩 다르게 느껴져서. 국어 배울 때 기초를 잘 다져 놓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          it is in so far as it is easy to take them that way they are misleading. For virtue ethics can provide action guidance.

 

·          저 위의 밑줄 친 부분과 함께 나를 제일 애 먹인 문장이다. 맨 처음엔 in so far as insofaras “–에 한해서로 보고서 번역을 했다. 뜻은 쉬운 듯 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파악되기 쉬운 한에 한해서 그렇다.

 

·          그런데, 이렇게 하고 나면 맨 앞의 it is 가 남는다. 그때부터 무척 헛갈렸다. it is 는 그럼 뭔가 왜 저기 있을까 뭐 하러..등등이 잘 풀리지 않아서 시간이 갔다. 나중에 서점에 갔을 때 가장 두꺼운 영어사전을 펴서 이것저것 펴 보다가, , 하고 떠오른 것이 저 말이 just as 와 같다는 생각이었다. 내 우리말 쓰기 능력이 부족해서 뜻을 제대로 알았다고 좋아해 놓고선 정작 좀 어색한 듯 번역이 되었다 싶어서 아쉽다. 하지만 뜻은 저게 맞는 것 같다. It is as like it is easy to take them ..misleading. 그러니까 그 설명들을 볼 때 우리가 덕 윤리학을 오해하기 딱 좋은 것처럼, 실은 그들은 덕 윤리학이 행위 기준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방금 그 식으로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고 이해하기가 쉽다.

 

·          The way it does this can most helpfully be shown by comparing it with the guidance given by some versions of utilitarianism and deontology, all laid out in a similar way.

 

·          여기서는 most helpfully 에서 좀 고민. 가장 유익하게 가장 유용하게 가장 편리하게 중 하나로 하면 직역이 되는 줄 알기는 하는데, 그래서는 의미가 좀 거칠게 다가왔다. 어떡할까 하다가 이해를 돕는 으로 이해라는 말 하나를 넣어서 옮겼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내가 연초에 서문에 요약제시된 옳은 행위에 관한 설명을 어떻게 옮겼나 봤다. 지금 한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그런 걸 보고 살짝 실망이…), 그래도 조금 달라졌다고 강조하고 싶다. 웃고, 다음 진도로..^____^;;;

 

 

 

1 . 옳은 행위. 윤리학은 여러 다른 중에서도 특히, (1) 행위-중심 보다는 행위자-중심의 윤리학이고, (2)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하는가?’ 보다는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문제를 다루는데 전념하며, (3) 의무적인 개념 (옳음, 의무, 책임) 보다는 아레테적 개념 (선함[좋음], ) 기본으로 취하고, (4) 윤리가 규칙이나 원리로 규범화될 있으며 구체적인 행위지침을 제시할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특징들로 설명되어 왔다. 모든 것에는 부분적으로 맞는 바가 있기는 하나, 이들 특징들은 윤리학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 , 윤리학은 공리주의나 의무론이 제시하는 행위규범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는 생각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한 것)

 

윤리학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 왔다. 윤리학은 (1) ‘행위-중심보다는 행위자 중심 윤리학이며, (2) 행함 (Doing) 보다는 존재 (Being) 관한 것이고, (3)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보다는 나는 어떠한 사람이어야겠는가?’ 문제를 다루며, (4) 의무론의 개념 (옳음, 의무, 책임) 보다는 아레테적 개념 (좋음, 탁월함, )들을 기본 개념으로 간주하고, (5) 윤리학이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규정할 있는 규칙이나 원리로 강령화 있다는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기술된다.   (오늘 한 것)  

 

 

 

* 맨 위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지금의 집에서 처음 번역문과 후기를 쓰고 있다는 자각이 들어서 찾아 본 옛 집 사진이다. 글쓰기, 글로  남겨가는 철학 공부 또 번역 연습 등등..이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저렇게 저러느라^____^ 뭐 했나 모를 시간이었다. 그게 있어서 지금 내가 있으니 더 뭐라 말은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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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I ACTION

1행위

 

I. Right Action

1.  옳은 행위

 

 

Virtue ethics has been characterized in a number of ways. It is described (1) as an ethics which is ‘agent-centered’ rather than ‘act-centered’; (2) as concerned with Being rather than Doing; (3) as addressing itself to the question, ‘What sort of person should I be? rather than to the question, ‘What sorts of action should I do?’; (4) as taking certain areteic concepts (good, excellence, virtue) as basic rather than deontic ones (right, duty, obligation); (5) as rejecting the idea that ethics is codifiable in rules or principles that can provide specific action guidance.

 

윤리학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 왔다. 윤리학은 (1) ‘행위-중심보다는 행위자 중심 윤리학이며, (2) 행함 (Doing) 보다는 존재 (Being) 관한 것이고, (3)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보다는 나는 어떠한 사람이어야겠는가?’ 문제를 다루며, (4) 의무론의 개념 (옳음, 의무, 책임) 보다는 아레테적 개념 (좋음, 탁월함, )들을 기본 개념으로 간주하고, (5) 윤리학이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규정할 있는 규칙이나 원리로 강령화 있다는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기술된다.    

 

I give this list because these descriptions of virtue ethics are so commonly encountered, not because I think they are good ones. On the contrary, I think that all of them, in their crude brevity, are seriously misleading. Of course, there is some truth in each of them, which is why they are so common, and I shall return to them as we proceed, to note what truth, with what qualifications, they may be seen as containing. Readers familiar with the recent literature I mentioned in the Introduction, which has blurred the lines of demarcation between the three approaches in normative ethics, will no doubt have discarded or qualified them long since. But here, at the outset, it seems best to begin at a simple level, with the descriptions most readers will recognize, and work out way through to some of the complications and subtleties that are not so well known. 

 

 

나는 지금의 목록을 이러한 서술이 윤리학에 관한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아주 흔히 접하게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제시했다. 이에 반해, 나는 이들 모두가, 조야하게 줄여진 상태로, 윤리학을 심각하게 오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각각에는 일부 사실이 있고, 그것이 이들이 그렇게 일반적인 이유일 것이므로, 논의가 계속되면 이들에게 어떤 조건에서 어떤 사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는지를 보기 위해 설명들로 되돌아 것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최근의 문헌, 규범 윤리학의 가지 접근방식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 문헌을 아는 독자들은 틀림없이 오래 전에 이들을 폐기했거나그 의미를 수정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인 여기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진위를 판단할 단순한 수준에서 시작해서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복잡하고 미묘한 것들로 진행해 가는 것이 최선인 같다    

 

 

 

 

RIGHT ACTION

옳은 행위

 

The descriptions, especially when encountered for the first time, can easily be read as all making roughly the same point, and one way in which they are all misleading is that they encourage the thought that virtue ethics cannot be a genuine rival to utilitarianism and deontology. The thought goes like this:

 

서술들은 특히 처음 접할 경우 모두가 대략 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것으로 읽히기 쉬우며, 하나 같이 윤리학이 공리주의나 의무론의 진정한 경쟁 상대가 없다는 생각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윤리학을 전적으로 오도한다.  생각은 이와 같이 진행된다:   

 

If virtue ethics is ‘agent-centered rather than act-centered ’, concerned with ‘What sort of person should I be?’ rather than ‘What sorts of action should I do?’ (with ‘Being rather than Doing’), if it concentrates on the good or virtuous agent rather than on right action and on what anyone, virtuous or not, has an obligation to do; how can it be a genuine rival to utilitarianism and deontology? Surely ethical theories are supposed to tell us about right action, i.e. about what sorts of act we should do. Utilitarianism and deontology certainly do that; if virtue ethics does not, it cannot be a genuine rival to them.

 

만일 윤리학이 행위-중심이라기 보다는 행위자-중심이고,‘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보다는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겠는가?’ 관한 것이라면, 만일 그것이 옳은 행위, 덕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누구나 해야 의무 있는 행동 보다는 좋은, 혹은 덕이 있는 행위자에게 초점을 둔다면, 어떻게 윤리학이 공리주의와 의무론의 진정한 경쟁자가 있는가? 반드시 윤리학 이론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 행위인지를,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하는지를 알게 의무가 있다. 공리주의와 의무론은 확실히 그렇게 하고 있다. 윤리학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면, 윤리학은 공리주의와 의무론에 실제로 필적하는 상대가 없다.    

 

Now the descriptions do not actually say that virtue ethics does not concern itself at all with right action, or what we should do; it is in so far as it is easy to take them that way they are misleading. For virtue ethics can provide action guidance. The way it does this can most helpfully be shown by comparing it with the guidance given by some versions of utilitarianism and deontology, all laid out in a similar way.

 

지금 서술들은 윤리학이 옳은 행위에 관해 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주장을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오도하는 식대로 설명들을 받아 들이기 쉽다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윤리학은 행위의 준칙을 규정할 있기 때문이다. 윤리학이 행위 지침을 규정하는 방식은, 그것을 공리주의와 의무론의 일부 해설들이 제시한 지침, 모두 유사한 구조로 나열되어 있는 지침과 비교함으로써 가장 크게 도움이 되도록 보여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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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Virtue Ethics-원문

On Virtue Ethics-번역문

On Virtue Ethics-원문과 번역문 통합본

On Virtue Ethics-게시판 글로(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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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4 0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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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는 Acro 의 Happy New Year 이고 사진은 지난 해 갔던 겨울 바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93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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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ed, one interesting upshot of the emergence of virtue ethics is that some deontologists and utilitarians have reached to it by recognizing its importance and seeking to address it within the terms of their own theories. Hence, for example, the revived interest in Kant’s Doctrine of Virtue, the elaboration of character-based versions of Kantianism and utilitarianism, and the utilitarian Peter Singer’s latest book on ‘How are we to live?[1]. This is currently resulting in some very exciting work, particularly in the area of Aristotelian and Kantian scholarship. A recent collection has McDowell bringing Aristotle closer to Kant, and Herman and Korsgaard bringing Kant closer to Aristotole. I have not yet come across to interpret Mill in Aristotelian ways but I suspect it will happen any day


실제로, 덕 윤리학의 출현이 낳은 하나의 흥미로운 결과는, 일부 의무론자들과 공리주의자들이 그것의 등장이 갖는 의의를 인정하고, 그들의 고유한 이론 용어로 검토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덕 윤리학의 출현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갔다는 것이다. 다시 활기를 띤 칸트의 덕의 원리 Doctrine of Virtue 에 관한 관심, 성품을 기반으로 해석된 칸트주의와 공리주의 이론의 발전, 그리고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 Peter Singer의 최근의 책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등이 그 예다. 이러한 결과, 현재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연구 분야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 집적된 문헌들은 맥도웰 McDowell 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칸트에게 보다 가까워지게 하도록, 그리고 헤르만 Herman 과 코르스고어Korsgaard 가 칸트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다 가까워지게 하도록 이끌고 있다. 나는 아직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해석된 밀 Mill 을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언제든 그리 되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윤리학의 출현이 낳은 가지 흥미로운 결과는 일부 의무론자들과 공리주의자들이 그것의 의의를 인지하고, 그에 대해 자신들의 이론적 언어로 설명해 보려는 시도를 하다가 윤리학의 등장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활기를 칸트의 덕의 원리 Doctrine of Virtue 관한 관심, 인격을 바탕으로 차원 면밀히 해석된 칸트주의와 공리주의, 그리고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 Peter Singer 최근의 어떻게 살아야 것인가?’ 등이 예다. 이러한 결과, 현재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연구 분야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의 문헌 모음을 보면, 맥도웰 McDowell 아리스토텔레스를 칸트에게 가깝게 했고, 헤르만 Herman 코르스고어Korsgaard 칸트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깝게 했다. 나는 아직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해석된 Mill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머지않아 그리 되리라 생각한다.


This has meant that the lines of demarcation between the three approaches have become blurred. Describing virtue ethics loosely as an approach which ‘emphasizing the virtues’ will no longer serve to distinguish it. By the same token, of course, deontology and utilitarianism are no longer perspicuously identified by describing them as emphasizing rules or consequences in contrast to character. No one, as far as I know, is bothered by the fact that there are no longer satisfactory short answers to the questions ‘What is deontology?’ and ‘What is utilitarianism?’, but currently, at least some philosophers seem bothered by the fact that we virtue ethicists cannot come up with one to answer ‘What is virtue ethics?’. The demand that virtue ethics, unlike the other two approaches, should ba able to state its position succinctly, in terms both sufficiently broad (or disjunctive?) to get all virtue ethicists in and sufficiently tight to keep all deontologists and utilitarians out, seems a bit excessive. Why should anyone expect us, uniquely, to be able to do it?

이것은 세 접근법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졌음을 의미한다. 덕 윤리학을 ‘덕을 강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느슨하게 설명하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을 특징짓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이유로, 의무론과 공리주의가 무엇인가는 성품과 대비되는 규칙이나 결과를 강조하는 이론이라는 설명으로는 더 이상 명쾌한 확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그 어느 누구도 ‘의무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만족스러운 짧은 답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곤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적어도 일부 철학자들은 우리들 덕 윤리학자들이 ‘덕 윤리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할 하나를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심히 걱정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다른 두 방식과 달리, 덕 윤리학이 모든 덕 윤리학자들을 수용할만큼 충분히 포괄적이면서(혹은 이접 離接적이면서도?) 모든 의무론자들과 공리주의자들을 배제시킬만큼 협소한 차원에서 자기 견해를 간략히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다소 지나쳐 보인다. 왜 유독 우리에게만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하는가?

이는 개의 이론적 접근방식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졌음을 의미한다.  덕을 강조하는것이 윤리학이라는 식으로 막연히 설명하는 것은 이상 윤리학을 특징짓게 하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와 같은 이유로, 의무론과 공리주의는 인격과는 다르게 규칙이나 결과를 강조한다는 정도의 설명으로는 이제 더이상 이론에 대한 명쾌한 구별정립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는 어느 누구도 의무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질문에 이제 더이상 짧은 답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적어도 일부 철학자들은 우리들 윤리학자들이 윤리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어떤 하나의 답변을 제시할 없다는 사실이 심히 염려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다른 견해와 달리, 윤리학이 모든 윤리학자들을 수용할만큼 충분히 포괄적이면서도 (혹은 비배타적이면서도?) 모든 의무론자들과 공리주의자들을 배제시킬만큼 협소한 차원에서 자기 견해를 간략히 서술할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다소 지나쳐 보인다. 유독 우리에게만 그렇게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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