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많은 사랑이 있다. 사랑을 할
당시에는 그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사랑을 하다보면 우리는 수많은 장벽에 부딪히곤 한다. 그 장벽을 이겨내고 버텨서 그 사랑의 결실이
영원하고 아름다우면 좋겠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모든 사랑의 결말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자신의 사랑을 지켜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사랑과는 또 다른 현실앞에서 사랑을 꺽어야만 하기도 한다. 그래도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보면 결국 사랑은 아름다운 결말을 맺기 마련이며,
그래서 우리들은 또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매번 희망하게 되는가 보다. 그런데 이 책 <제 3의 사랑>은 그런 드라마나 영화와는 조금
다른 결말로 우리를 맞이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그런 결말이랄까.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게 되는가 보다.
추우와 임계정의 첫 만남이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만한 만남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우의 동생 추월이 자신의 회사 본부장인 임계정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동생이 한 남자 때문에 자살을 결심했고, 그 남자라는 사람은 별 미동도 없어 보인다. 병원에 병문안을 와서도 별 감정의 흐트러짐 없이
그들을 대하는 모습 앞에서 추우는 너무나 화가 났을 것이다. 공격적인 추우를 보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추우는 동생 일로 (임계정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동생을 보며) 임계정을 만나면서, 실제로 임계정과 동생의 관계가, 동생이
이야기했던 것 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생이 임계정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임계정과 만나면서 그에 대해 호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추우가 힘들때마다 그녀를 도와주던 임계정. 이때부터 나는 그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변해갈 것을 예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임계정
때문에 자살까지 시도했던 추월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격일까? 이미 임계정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곧
있으면 결혼하게 될. 물론 임계정의 결혼은 기업의 권력과 돈에 얽힌 계산적이고 계약적인 그런 결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말이 있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조금은 뜬금없는 소리 같긴 하지만, 추월과 추우를 보며 그런 생각이 불쑥 불쑥 들었다. 결혼할 상대는 있지만, 아직
결혼전인 임계정과 이혼녀인 추우의 사랑이 엄밀히 말하면 불륜은 아니다. 하지만, 도덕적인 잣대를 두고 보자면 상식적인 사랑도 아니다.
임계정에게는 이미 결혼할 상대가 있으며, 추우에게는 임계정의 사랑에 목말라하고 가슴아파하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해 자살까지 시도한 동생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런거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거. 자신의 감정도 어쩌지 못하는거. 이성보다 감성이 자신을 지배하기도 하는 것.
사랑이란 그런거다...
추월은 추우에게 말했다. 임계정을 잊지
못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동생에게.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하냐고. 언제까지 환상을 품고 살꺼냐며 소리친다.
결혼이 임박해서도 그(임계정)를 잊지 못하는 자신의 동생을 보며, 그는 곧 결혼한 사람이라며 이제 좀 정신을 차리라고 그렇게 소리친다. 그
외침은 자신의 동생에게는 물론이요, 자기에게도 소리놓여 외치고 있는 소리였다. 물론 추우와 추월의 다른 점은 추우는 혼자한 사랑이요, 추월은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이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렇다 한들 변할 건 없었다.
그 둘의 사랑만 생각하기에 현실에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사랑이란 아픈거다.
임계정이 처음 자신의 감정을
내비쳤을때, 추우가 한발 뒤로 물론 섰던 이유 역시 그래서였을꺼다. 현실의 장벽. 그리고 그가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을 사과하면서 10월에 있을
결혼이야기를(다른 상대와 결혼)꺼내었을때, 그녀는 쿨하게 그에게 손을 내밀 수 밖에 없었을 거다. 그리고 자기에게 최면을 걸수 밖에 없었을꺼다.
우리는 성인이니까. 우리는 그저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고 말이다. 그에게 아무것도 기대한 것도 없다. 바란 것도 없었다. 그러나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건지. 아마, 사랑을 했던 사랑이라면,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추우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무방비상태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 한 방울 큰 눈물 방울들이 팔뚝으로 떨어졌다. 손으로 닦아 보았지만 끊임없이 넘쳐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어째서? 왜 내마음이 이렇게 아픈걸까? 마음이 마치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처럼 어둠속에 짓밟혀
죽어가고 있었다. 어떠한 감정도 남기지 않고,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아주 작은 환상들까지도 한 번에 짓밟혀서 꺼져 버렸다.
(p134) |
추우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고,
임계정에게 다가서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누른다. 하지만, 임계정 역시 그러했으며, 결국 그 둘은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사랑이란 그래서
가혹한거다. 작가는 말했다. 사실 그들은모두 이기적이라고. 임계정도 추우도 말이다. 만약 임계정이 이기적이지 않았다면 사업을 포기하고 결국
추우를 선택했을 것이고, 추우 역시 이기적이지 않았다면 자존심을 버리고 임계정의 비밀스런 여인이 되었을 것이란 말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사랑을 하면 사랑앞에서 모든 것을 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다. 사랑을 하면 사랑만 볼 것
같지만, 현실앞에서 우리는 많은 갈등을 하고 고민을 하고 많은 것을 저울질 하게 된다.
"임계정, 이게 당신이 정말 원하는
건가요? 다른 돈 있는 남자들 생각과 별다를 게 없잖아요. 다른 건 당신에게 물을 필요도 없겠죠. 당신 와이프 강심요는 어쩔 테냐? 당신을
짝사랑하는 추월은 어쩔 테냐? 당신의 태상황은 어쩔 거냐? 당신이 내게 줄 수 있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영원히 해 줄 수 없는 것들이죠." (p207) |
그랬다. 추우가 원한건 보석도, 돈도,
집도, 차도, 돈도 아니었다. 임계정은 그녀에게 그 모든것을 줄 수 있었다. 그녀를 풍족하게 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 그녀가 원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원한건 임계정이 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임계정은 사업을 위해 그 결혼을 꼭 해야만 했고, 그러면서도 추우를
놓치고 싶어하진 않았다. 양손에 두개의 떡을 쥐고 둘다를 한꺼번에 먹기를 원했다. 임계정도 추우도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그녀를 사랑해서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그가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는. 현실의 장벽 앞에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지는 못하는. 사랑이란 그래서 모순적이다.
어쩌면 추우와 임계정의 사랑을 보며,
나는 그 끝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추월의 그 충격적인 사건 이후로 더욱 더.) 그러나, 어쩌면..? 이라는 희망을 끝내 버리지 못했던 것은 그
와중에서도 그들의 사랑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에 가슴이 찌릿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자신의 눈안에
상대방을 담아놓는 그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 한 척 하지만 서로를 챙기고 의식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서,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던가 보다.
소설의 결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에 수많은 감정들이 내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작가가 말했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 내 옆에 잠든
사람이 다를 수 있다. 이것은 흔한 일이다. 그녀를 향한 사랑고백을 다른 사람에게 할 수도 있다. 그것 또한 흔한 일이다.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하지만 그런 미래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 또한 흔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의 일생은 간혹, 이렇게 천천히 끝나간다고 말했던
것이다. 내가 너무 잔인하다고 탓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같은 결말로 끝이 나버린다.
(p503) |
처음 결말을 보고, "어! 결말이 왜
이래~!"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노라면 사랑이란 원래 그런게 아니던가.
소설에는 다양한 사랑이 등장한다.
추월의 사랑, 고전기의 사랑, 추우의 사랑, 임계정의 사랑, 강심요의 사랑.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해하듯, 세상엔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
존재한다. 추우와 임계정 중심으로 읽긴 했지만, 다른 사람의 사랑, 그 사랑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더불어 나는 어떠했나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 제목을 보고서, 왜 제목이
'제3의 사랑'인가 했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왜 이 책의 제목이 '제3의 사랑'이 되었나를 비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낭만적인 사랑이 딱
두 종류일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하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에도 보는 이를 눈물짓게 만드는 드라마에나 나오는 사랑, 또 하나는 상대가 아무리
형편없어도 정작 본인은 잠도 못 이룰만큼 고통스러워하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반적인 사랑.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세상에는 제3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사랑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모든 사람이 감동하지만, 모든 사람이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며,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사랑이다. 그 사랑은 남몰래 흐르는 강물과 같이, 진흙과 모래가 뒤섞여 끊이지 않고 세차게 흘러 내린다. 불행히 당신이 그
사랑을 만나게 된다면 가능한 한 멀리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피하지 못했다면 그 속에 함께 뒤섞여 가슴 사무치는 행복과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는 수
밖에 없다. 나도 그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알지만 그저 득도의 경지에 오르길 기원할 뿐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
(p492) |
결국 현실에 순응하지만, 끝끝내 그
사람을, 그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사랑이란....그래서... 참 복잡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