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영화 보러 가고 싶어!

˝언니, 내 친구들 말이야, 전이랑 다 똑같은데, 나더러 극장 가자는 말을 안 하네.. 그러니까 언니가 한 편만 보여 주라˝

혜미의 사고 이후로 수없이 곤란한 경우에 부딪혀 봤지만 이렇게 난감한 지경은
처음이었습니다.

4년전에 끔찍했던 사고는 혜미의 양쪽눈을 빼앗아 갔습니다..
하지만 혜미는 그 후 말못할 고통과 절망을 잘 견디어내었고 이제는 예전에 밝았던 모습을 혜미는 조금씩 다시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만 혜미는 자신이 15살때까지 ′보았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잔상은 아직도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그래... 좋지... 무, 무슨 영화가 요즘 제일 재밌다더라? ˝

어렸을때부터 영화보기를 무척 좋아하던 혜미..
지난 4년 동안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없더니..
속마음은 얼마나 영화가 보고싶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옵니다..
전 애써 태연한 척 부산을 떨었고, 다음 날 혜미의 손을 붙잡고 종로 극장가를
찾았습니다..
들을 줄 밖에 모르는 동생을 위해 우리나라 영화를 고르려 했지만.. 혜미는
끝끝내 당시 장안에 화재였던 ˝타이타닉˝이라는 외국영화를 고집합니다.

˝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정말 좋아.. 정말 멋진 목소리를 가졌다니까.. ˝


극장에까지 썬그라스를 쓰고 들어온 동생을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을 무시 하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혜미는 거의 5년 만에 극장에 와봤다며 들떠 있었고 저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당혹스러웠습니다.
영화는 곧 시작되었고 전 혜미의 귀에 내 입을 가까이 대고 배우들의 대사와 극의 분위기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차근차근 화면에 떠오르는 중요한 자막도 읽어주고.. 영화에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다고 생각되는 모든것을 저는 혜미에게 이야기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전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불쌍한 동생에 대한 마음과.. 영화 자체의 슬픈 감동..
하지만 저는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후 거대한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이 얼어 죽는 결말 부분에 가서는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언니, 그렇게 슬퍼?.. 주인공도 죽었어? ˝

˝응.. 바다에 떠 있던 사람들이 하얗게 얼어서... 다.. 죽어가... ˝

난 이미 친구들과 한 번 본 영화였고..
그땐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영화였습니다.

˝언니... 그렇게 울기만 하면 어떡해? 그담에 어떻게 됐는지 얘기 좀 해줘.. ˝

˝응, 남은 사람들이 지금 배를 묶고 있어... 그리고는... ˝

저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혜미는 답답한지 저에게 자꾸만 영화가 어떻게 되가는지 물어봅니다..
하지만 저는 바보처럼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면서 흐느낄 뿐이었습니다..
영화가 다 끝나고 우린 주제가를 들으며 극장을 걸어나왔습니다.
밝은 얼굴의 혜미를 보니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습니다..

˝언니.. 영화 너무 재밋었어.. 이렇게 영화 재밋게 본거 처음인거 같애.. 언니도 재밋었지?˝

˝.... 혜미야, 너만 좋으면 다음에 영화 보러 또 오자.. ˝

˝정말? 와... 언니 최고다!˝

˝혜미야.. ˝

˝응?˝

˝..... 고마와 ˝

네.. 혜미 말대로 영화 정말 재밋었습니다..
정말 처음으로 영화에 감동이란 걸 받아본 것 같습니다..
혜미의 밝은 미소가 눈부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잘못생각하고 있었나봅니다.
혜미를 떠올리며 그의 장애를 먼저 떠올리던 전 어리석었습니다..
혜미는 그냥 평범하고 밝은 제 동생일 뿐이었습니다..
저의 고맙다는 말에 혜미가 어리둥절해 합니다..
혜미는..
내 동생 혜미는 현명하게도 자신의 행복을 즐길줄 알고있습니다..
행복을 느끼며..
또 그 행복을 언제나 고마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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