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中

˝넌 큰 인물이 될 거다. 요 녀석. 네 이름을 주제라고 지은 것도 우연이 아니라니까. 넌 태양이 될 거야. 별들이 네 주변에서 빛나게 될 게다.˝

난 아저씨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아저씨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정말 정신병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넌 이해 못할 거야. 이집트의 요셉에 대한 이야기란다. 네가 조금 더 크면 얘기해 주마.˝

난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썼다. 게다가 어려운 이야기라면 반쯤 미쳤다.
나는 한동안 망아지를 쓰다듬다가 에드문두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다음 주쯤이면 제가 많이 커 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딱 하나만 말해 줄래? 다른 사람도 네가 얘기한다는 걸 알아?˝

˝아니, 오직 너만.˝

˝정말?˝

˝맹세할 수 있어. 어떤 요정이 말해 주었어. 너처럼 작은 꼬마와 친구가 되면 말도 하게 되고 아주 행복해질 거라고 말이야.˝


˝왜 이래야만 할까? 어째서 착한 아기 예수는 날 싫어하는 거지? 외양간의 당나귀나 소들까지도 좋아하면서 왜 나만 싫어하냐고? 내가 악마 같아서 벌을 주는 건가? 만약 내게 벌을 주는 거라면 내 동생 루이스에게는 왜 선물을 주지 않는 거야? 말도 안 돼. 루이스는 이렇게 천사 같은데. 하늘의 천사도 우리 루이스만큼 착하진 못해...... .˝

그러자 바보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제 형, 울어?˝

˝금방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난 너처럼 왕도 아니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애잖아. 난 아주 나쁜 애야. 정말 정말 나쁜애. 그래서 그래.˝



˝아이들은 자야 할 시간이야.˝

그러고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누나는 그 순간 그 자리에는 더 이상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어른이었다. 그것도 아주 슬픈 어른. 슬픔을 조각조각 맛보아야 하는 어른들뿐이었다.




나는 밍기뉴의 허리에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제제, 우리가 기다리는 게 뭔데?˝

˝하늘에 아주 예쁜 구름이 하나 지나가는 것.˝

˝뭘 하게?˝

˝내 작은 새를 풀어 주려고.˝

˝그래, 풀어 줘. 더 이상 새는 필요 없어.˝

우리는 하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거 어떨까, 밍기뉴?˝

잎사귀 모양의 크고 잘생긴 흰 구름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저거야, 밍기뉴˝

나는 가슴이 뭉클해져 벌떡 일어나 셔츠를 열었다. 내 메마른 가슴에서 새가 떠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작은 새야 훨훨 날아라. 높이 날아가. 계속 올라가 하느님 손끝에 앉아. 하느님께서 널 다른 애한테 보내 주실 거야. 그러면 너는 내게 그랬듯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겠지. 잘 가. 내 예쁜 작은 새야!˝

왠지 가슴이 허전해진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은 영 가시지 않았다.

˝제제, 저것 봐. 새가 구름 가에 앉았어.˝

˝나도 봤어.˝

나는 머리를 밍기뉴 가슴에 기대고 멀리 사라져 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저 작은 새랑은 한번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

그리고 밍기뉴 가지에 얼굴을 돌렸다.

˝슈르르까.˝

˝응?˝

˝내가 울면 보기 흉할까?˝

˝바보야, 우는 건 흉한 게 아니야. 그런데 왜?˝

˝글쎄.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봐. 여기 내 가슴속 새장이 텅 빈 것 같아...... .˝




계단 꼭대기에서 그가 외쳤다.

˝제제, 넌 천사야!˝

나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웃기 시작했다.

˝천사요? 아저씨가 아직 저를 잘 몰라서 그래요.˝





나는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팔에 머리를 기댔다.

˝뽀르뚜가!˝

˝음...... .˝

˝난 절대로 당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도 알지요?˝

˝왜?˝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니까요.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그리고 내 가슴속에 행복의 태양이 빛나는 것 같아요.˝

˝지금은 달라요, 뽀르뚜가. 슈르르까는 그저 꽃 한 송이 피울 줄 모르는 어리고 보잘것없는 오렌지나무예요. 그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안 그래요. 당신은 제 친구고, 그래서 우리 차로 드라이브하러 오자고 한 거였어요. 얼마 안 있으면 당신 혼자만의 차가 될 테지만. 사실 전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요.˝



생각지도 못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아기 예수, 넌 나쁜 애야. 이번에야말로 네가 하느님이 돼서 태어날 줄 알았는데.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넌 왜 다른 애들은 좋아하면서 나는 좋아하지 않는 거야? 내가 얼마나 착해졌는데. 이제 싸움도 안 하고, 욕도 안 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데. 볼기짝이ㅏㄴ 말도 이제 안 한단 말이야. 그런데 아기 예수, 넌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자른다고 했을 때도 화 안 냈어. 그냥 조금 울었을 뿐이야...... . 이젠 어떡해. 어떡하냐구!˝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아기 예수, 내 뽀르뚜가를 돌려 줘. 내 뽀르뚜가를 다시 달란 말이야...... .˝



집안은 죽음의 장막이 내린 것처럼 조용했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모두들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거의 매일 내 곁에서 밤을 새웠다. 아무리 그래도 난 뽀르뚜가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웃음 소리. 특이한 억양. 창 밖의 귀뚜라미까지 쓰윽, 쓰윽 그의 면도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아픔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매를 많이 맞아서 생긴 아픔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유리 조각에 찔린 곳을 바늘로 꿰맬 때의 느낌도 아니었다. 아픔이란 가슴 전체가 모두 아린, 그런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팔과 머리의 기운을 앗아 가고, 베개 위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지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사랑하는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마흔 여덟살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그리움 속에서 어린 시절이 계속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언제라도 당신이 나타나셔서 제게 그림 딱지와 구슬을 주실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의 사랑하는 뽀르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구슬과 그림딱지를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사랑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제 안의 사랑에 만족하기도 하지만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절망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 시절, 우리들만의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 왕자가 제단 앞에 엎드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물었따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영원히 안녕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