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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마녀
박경리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 책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그 책에 빠져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조금씩 조금씩 읽어가며 그 의미를 되씹고, 파악해야만 하는 책이 있다. 그럼,<성녀와 마녀>는 어느쪽에 해당하는가! 개인적인 나의 견해로는 前字에 해당한다.
한국문학의 대가라고 불리시는 박경리씨의 최초의 연예소설이라는 점이 우선은 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이 소설은 그렇게 진지하거나 아름다운 로맨스..지금시대에 걸맞는 이야기라고 할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이 쓰여진 시대를(1960년) 보고서,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또한, 박경리씨의 또다른 면(소설기법과,그 소설의 주제등)을 보게 된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다.
박경리씨의 다른 작품(토지, 파시, 시장과 전장 등)을 살펴보면,그 시대의 아픔을 느낄수 있다. 그 시대적 상황의 민족들이 겪는 슬픔과 전쟁, 헤쳐나가고자 하는 굳은 마음등..그런데, <성녀와 마녀>에서, 그런 골치아픈 문제들이 아닌, 사랑이라는 주제를 지니고 있다는 것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어떻게 보면 사랑이라는 주제가 더 골치아플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 책을 더욱 잼있게 읽은 이유는 아마도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의 내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들의 직업과, 시대 일 것이다. 주인공들의 이름과 성격은 그대로이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주인공들의 얼굴이 떠오르고..마치 한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사실, 지금 나오고 있는 연예소설은 많다. 하지만, 박경리씨의 <성녀와 마녀>를 난 참 잼있게, 맛깔스럽게 읽었던것 같다. (어떤 이는 박경리씨에 대해서 실망의 표를 던지던 사람도 있었는데..아마도, 이는 책을 읽는 취향이 다른 모양이다.) 잼있는 소설은 많지만, 읽고나면 그저 사랑이 아름답구나 라고만 느낄뿐, 더 이상 느끼는 것이 없었던 경우가 많았지만, <성녀와 마녀>에선 그외의 또다른 것들을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녀와 마녀>의 내용이 다 마음에 들고 좋았던것은 아니다. 그 결말은 웬지 모르게 아쉽기만 하다. 끝부분을 보자.
[저녁 식사 때, 가족은 실로 오래간만에 식당에 모였다. 수영은 형숙의 영상을 안고 하란은 허세준의 추억을 간직한 채 이 상반된 인간과 인간이 모인 가정이란 질서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대면하는 것이었다. p275]
수영은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형숙의 영상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리라..'돌아왔다. 허울만이 돌아왔다','만나고 헤어지고 바라는 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라면 이런 대로 질서를 찾을 수 밖에 없다'라는 하란의 다짐은 웬지 모르게 슬프기만 하다. 자신 또한 뒤늦게 깨달은 허세준의 사랑을 알지만, 성녀로서, 가족을 지키며 허세준의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갈터..서로가 서로 다른 이를 안고, 떠올리며 살아간다는것..서로의 허울만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진정 옳은 선택이었을까..離合이 인생인가...
성녀와 마녀..이는 우리들이 다 지니고 있는 성품일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쳐, 난 성녀, 넌 마녀로 나눌수 없듯이..마녀로 불리던 형숙이도 결국엔 수영을 위해 목숨을 버리듯이..다만, 사랑의 표현방식이 성녀와는 달랐던 것이 아닐까..결국, 성녀와 마녀는 우리들 속에 내재해 있는 두가지 마음이며, 결국 이 두가지 성품은 하나이면서도 둘이 될수 있는, 또한 둘이면서도 하나일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닐까..성녀가 마녀가 될수도, 마녀가 성녀가 될수도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