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산도르 마라이' 라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 이 작가의 작품이 어떤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 작가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 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나에게는 그런 버릇이 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나, 낮선 책은 경계를 한다는 점이다. 나의 그런 경계가 책을 읽는 데에는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좋은 명약이 될 때도 있다. 경계의 눈으로 바라본 책이 나에게 만족감을 준다면, 일 순간 그 책에, 그 작가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작가의 매력에 취해 그의 작품들을 내것으로 받아들이고픈 욕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열정'의 내용은 단순하다. 어떻게 보면 너무 진보하기도 한 내용이라, 도대체 이런 내용이 어떤 감동을 주고 여운을 줄수 있을까 몇 번을 고민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그 고민이 부질없었다는 것을 느끼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 41년을 기다린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으며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다. 절친한 친구는 그의 아내를 사랑했으며, 그를 죽일 계획까지 벌였다. 그리고 그는 도망치듯 열대로 떠난다. 또한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떠난 친구를 41년간이나 기다렸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그는 콘라드를 41년간이나 기다린 것일까...많은 생각들과 고통, 그리고 삶에 대한 모든 것들...그 모든 것이 이 사건 하나로 엉망이 되었기 때문인가? 엉망된 삶을 콘라드에게 묻고자 하는걸까? 아니다...그는 다만 진실을 원할 뿐이다...

그 남자가 기다리는 진실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41년이란 시간 동안 그가 어떤 생각의 길을 따라왔는지 차분히 말하는 그 의 말을 들으면서 진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헨릭...그가 밝히고자 하는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무엇의 진실을 밝힌단 말인가... 마음속에서부터 잇다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열정>을 그저 단면적인 내용만 보다 보면, 삼류 소설의 뻔한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열정>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사랑과 우정, 배신, 고독, 삶, 기다림, 그리고 진실...이 모든 것을 여기, 저기에서 찾아 볼수 있다.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또한 진실을 알기 위해서 고독한 생을 살면서 41년을 기다린 헨리를 통해, 내 자신의 헨리를 들여다 보게 된다. 그건 도대체 무엇일까? 헨리의 고민이, 헨리의 독백이, 나의 문제처럼 가슴에 와 닿는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들은 진실이 두려워 약한자를 괴롭히려 한다. 사람들은 진실이 두려워 모든 것을 외면하려 한다.' 오래전 읽은 책의 말머리에 씌어 있던 말이다. 그때부터 난 이 진실이란 두 글자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진실 때문에 사람이 힘들어 질수도 있다는 것을 익히 알았다. 그렇지만, 헨리는 진실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외면하지 않았다. 그저 친한 벗으로부터 그 진실을 알고자 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헨리여, 당신이 듣고자 하는 그 진실을 과연 무엇입니까'

그렇다. 열정을 읽다 보면 그 '진실'이라는 두 글자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이야기의 스토리 보다 주인공의 고뇌가 더 마음에 와 닿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진실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천천히 흘러간다. 그와 동시에 내 마음속에서도 알수 없는 그 무언가가 천천히 스며든다. 마치 내 앞에 앉아서 헨리가 독백을 하는 듯한...아니, 독백이 아니라 외침이다. 가슴을 울리는 외침....

'우리의 마음 속에 무엇이 남아 있지?'라는 질문은 책 장을 덮은 순간에도, 가슴속에서 울려 펴진다. 과연 우리의 마음 속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내 마음속엔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