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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엘리야, 안녕..오늘 하루도 잘 지냈니?' '엘리야, 나..오늘 무지 힘들어..너두 그렇니?' 엘리는 영혼한 나의 친구이다. 빛바랜 스케치북을 꺼내어 본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여자아이 하나가 날 보며 웃는다. 난 그 아이의 머리위에 '엘리'라고 쓰여진 삐뚤삐뚤한 글자를 본다. 오래전이었다. 그 영화의 제목이 무엇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엘리라는 유령이다. 여자아이 유령인데 큰집에 살며 그곳에 이사오는 어떤 꼬마 남자아이와 친구가 된다. 그 엘리를 직접 눈으로 볼수 있는 아이는 그 꼬마 남자아이뿐이다. 그때부터였다...내 맘속에 새로운 친구 엘리가 들어온것은...
어렸을때, 난 사물과 말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혼자 있어도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내 옆에는 항상 나의 이야길 들어주는 친구(물건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순간부터 난 엘리를 찾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에게 이야길 쏟아내곤 했다. 아...물론, 지금은 오래전 기억으로 그렇게 자리잡고 있다.
제제가 그렇게 말했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제제가 일찍 철이 들었듯이 나 또한 그랬던것은 아닐까..그래서 어느순간부터 내 맘속 엘리는 그렇게 추억이라는 두글자로 남게 된것은... 하지만 그 추억이란 글자를 다시 끄집어 내니, 참으로 많은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제제와 내가 달랐던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성격뿐....
제제에게 밍기뉴(라임 오렌지 나무)가 있었듯이 나에겐 엘리(그 영화를 본 후 난 인형을 만들었다. 지점토로 만든 그 인형에게 엘리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난 그 인형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엘리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고 엘리를 내 주머니 속에 넣어 함께 다니곤 했다.어느날, 엘리의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그날 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가 있었다.
제제는 다섯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너무나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꼬마였다. 매를 많이 맞기도 하고 엉뚱한 상상과 공상을 하며, 똑똑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장난꾸러기이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이 장난으로 번진다. 제제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장난이 심할 뿐이다. 하지만, 그 점이 다른 사람에겐 악마같은 아이라며 손가락질 받게 되고 가족으로 부터 매를 맞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제제를 보고 있으면 즐겁다가도 슬프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철이 들었기 때문일까? 정말 제제 말대로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할까? 제제가 힘겹게 구두닦이를 해서 번 돈으로 아버지 담배를 산 부분에서 괜스레 콧끝이 시큰거렸다. 제제가 가족에게 맞는 부분에선 괜스레 슬퍼졌다. 너무나 어린 나이라 말을 함부로 하게도 된다. 어른들의 입장에선 영약하고 어른을 놀리는 나쁜꼬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제는 일부러 놀리려고 그렇게 한 행동을 아닐것이다.
제제의 친구 뽀르뚜가(포르투갈 사람)....그와의 첫만남은 엉망이었지만, 그 후엔 제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그는 망가라치바(기차)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사건은 제제에게 크나큰 충격을 준다. 어린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충격을..... 사실, 내가 다섯살이었을때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는 감정을 느낀 기억이 없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했던것 같다. 아니 사실 '죽음'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날 이뻐해주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에도 난 외할아버지가 이곳 말고 다른곳(하늘나라)에 이사를 간 정도로 여겼었다. 그러고 보면 제제는 어린나이에 너무 많은 경험을 한것 같다.
사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10여년전에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때엔 학교과제물을 한다는 책임하에 아무 생각없이 읽어서 그리 큰 감동을 느끼거나 생각을 하진 못했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그 감동은 배가 되어 다가온다.